그건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지요
창업은 원래 내 선택지에 있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아래 주요 이유들을 적어본다.
창업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느꼈기에. 창업은 원래 내 선택지에 있지 않았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초기 스타트업에서 지난 4년간 일하면서, 창업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몸소 보고 느끼고 겪고 체험하지 않았나. 초기 멤버로서 많은걸 짊어지고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내가 짊어지는 무게와 창업가가 짊어지는 무게는 감히 비교조차 불가능한 차이라는 걸 알고 느낄 수 있었다. 언론에서나 페이스북에는 늘 성공사례만 나오지만 그렇기에 창업은 내게 더욱더 '만만치 않은', 더욱더 '쉽지 않은' 결정으로 느껴졌다.
창업을 할만한 시기와 여건인가. 돈이 있는가. 가족의 서포트가 있는가. 기회비용이 얼마나 큰가. 중요한 문제다. 내 주위에 본 창업자들은 적어도 1~2년은 월급 한 푼 못 가져온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내가 이런 걸 버틸 수 있는가? 힘든 시기를 버텨나갈 만한 개인적인, 가정에서의, 재정적인 안전장치가 있는가. 20대 초중반의 잃을 것도 별로 없고 기회비용도 별로 높지 않은 시기도 아니었다. 지금 잘못하면 잘못 발을 내딛으면 다시는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도 현실적인 두려움이었다.
내가 과연 '창업자' 감인가 (Am I a founder material?). 전에 자신의 성향과 적성이 '창업자''경영자''임원' 중 어떤 것과 잘 맞는지 (Founder/CEO/Executive) 생각해보라는 조언이 와 닿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일하면서도 늘 생각했다. 삼국지로 따지면 내가 '유비, 조조, 손권'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을까. 그만큼 많은 사업을 품고 많은걸 책임지고 싶어 하는가. 아니면 그냥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내가 좋아하는걸 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난 '조운' 같은 충신이 되고 싶고 그게 제일 잘 맞는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 물론 나도 '리더'가 되고 싶고 책임지는 자리에 있고 싶다. 하지만 그게 꼭 비즈니스를 창업하는 건 아닐 수 있다고 느꼈다.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들, 내 아내나 내 주위 사람들도 '산아, 넌 돈 버는 것도 별 관심 없고, 눈치도 없고, 자기 비즈니스를 뭐든 참고 겪어가며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해줬다.
내가 무언가 시작하는 게, 꼭 비즈니스여야 하는가. 위의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진짜 관심 있는 분야, 내가 주인공 (?) 이 되고 싶은 분야, 내가 최종 책임자가 되어서 세상에서 없던 것을 만들고 싶은 분야는, 꼭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난 지식을 만들고, 공유하는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난 독서가 좋고 나눔이 좋은 사람이지,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특정 물건을 만드는 데에서는 별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었다. 나의 관심은 사람의 스토리에 있었지, 재화나 서비스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창업자로서 뭔가를 만드는 건 비즈니스가 아닐 수 있겠구나.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렸던 이유는 있다.
그건 내가 어떤 문제를 보고 풀고 싶은데, 세상에 어떤 니즈가 있음을 느끼는데, 어떤 비어있는 부분 (blank spot) 이 있음이 보이는데, 아무도 그걸 제대로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보여서였다. 이걸 하면 너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였다. 그리고 제대로 나의 모든 걸 다해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의 경험이나 네트워크, 나의 스킬 셋 들이 그걸 하기에 꽤 괜찮은 위치에 있다고 느껴서였다.
아이디어와 문제 인식인즉슨 이렇다. 간단히만 아래 소개한다. 자세한 건 이 슬라이드를 참조. (Full disclosure, 이 문제의식과 많은 아이디어는 내가 먼저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잘 아는 지인이 먼저 내게 제안하여 같이 고민했던 것들이다)
- 미션: Mobilize young Korean professional. 젊은 한국의 지식 프로페셔널들이 글로벌 지식 자본가가 될 수 있게 돕는다. (We Mobilize young Korean Professionals for future technology and business. We help young Korean professional to become the global knowledge capitalist of 21st century )
- 문제의식: 한국 사람은 우수하다. 해외에 나와보면 안다. 우리 민족이 우수하다는 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게. 똑똑하고 근면하고 근성이 있고 의지가 있고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그 에너지, 열정, 성공을 향한 목마름이 좋은 방향으로만 가면 누구도 한국인을 쉽게 막을 수 없다고 난 진정 믿는다. 단 문제는 그 에너지와 열정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거다. 다 공무원 준비하고 로스쿨 준비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목숨을 걸고 소셜 미디어에서 인생 다 살고 결과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부정적인 에너지와 거짓된 정보들에 오도되어 있다.
중요한 건 접점을 만드는 거다. 인생은 복잡하고 바야흐로 무한 변화와 무한 경쟁의 시대이다. 하루아침에 실리콘밸리의 천재 과학자를 만나서 핵미사일을 만들고 자율주행차를 만들고 알파고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인재, 자본, 기술과의 접점을 계속 넓혀서 한국 사회와 문명의 진보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기회를 우리 민족에게 줄 수 있을까? 한국 시장은 사이즈의 한계도 있고 정치적으로도 너무 복잡하여 (작금의 타다/택시 사태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한국인은 글로벌로 뻗어나가서, 세계의 자본, 기술, 인력과 더 많은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현존하는 설루션: 충분치 않다. 대기업들은 각자 글로벌 펀드나 오피스를 만들어 해결해보려 하지만 노력이 분산되어 있고 본인 기업 위주이다. VC 들은 투자가 본업이라 지식과 네트워크의 창공 활(창출, 공유, 활용) 에는 상당히 적극적이지 않고 한국어로 된 좋은 콘텐츠는 찾아보기 어렵다.
- 왜 지금인가? 이미 늦었다. 실제 태용의 실리콘밸리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좋은 콘텐츠를 원하는 니즈가 충분히 보인다.
- 그래서 뭘 하겠다고? 다양한 게 있겠지만 시작은 지식 콘텐츠를 집합하는 미디어/콘텐츠 회사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어떤 기회들이 있고 경제/비즈니스/사람 스토리를 아우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 직전에 독립신문을 만들었던 것처럼. 실제로 수많은 미디어 비즈니스가 구독/개인화된 모델로 탈바꿈하고 있고, 글로 벌리 성공 케이스는 계속 나오고 있지만 한국의 미디어/콘텐츠는 여전히 구시대적이며, 보수/진보의 헤게모니와 광고주와의 관계 등에 다양하게 얽혀서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이고, 무엇보다 글로벌 지식 자본가를 도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 있지 않다. 일단 콘텐츠/미디어로 구심점을 만들면 얼마든지 다른 비즈니스를 더 엮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론 하기 어려운 이유가 하고 싶은 이유에 비해 너무 컸기에 일단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 같이 논의하던 분과 사이드로 조금씩 해보고 그분이 이걸 하게 되면 가능한 범위에서 서포트하기로 했다. 그래, 일단 선택지 중 하나는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