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근원이자 든든한 버팀목. 더 깊이, 더 넓게
연말을 맞아 나의 30대의 마지막, 미국에서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Eventful 했던 나의 2022년을 돌아본다. 그 첫 번째 이야기 - 가정이다.
연말에 베프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묻더라.
" 친구: 애들 낳아보니 어때. 먹여 살릴 부담감+책임감 많이 들지 않아? 더 나은 사람이 되야겠다고 동기부여도 되고?"
" 산: 사실 난 둘 다 없는 건 아니지만 아주 큰 부분은 아니야. 평소엔 그런 생각은 별로 없고, 그냥 함께 살아가는 거 같아. 함께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실수하고 배우고 성장하고 뭐 그런 것들.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겠다 그런 생각보다, 그냥 기쁘고 그냥 징하고 그냥 돌아버릴 것 같은 때도 꽤 있고 (ㅎㅎ) 그냥 그대로의 감정이야. 없으면 너무 허전하고. 그다음의 뭐는 잘 없어. "
돌아보니 난 어느새 세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졌다. 어린아이 셋 키우는 게 숨이 턱턱 막히다가도 하루만 안 보면 너무 보고 싶은 마음. 전에는 그렇게 즐겁고 에너지를 주던 해외 출장이 그 맛을 잃고 전혀 즐겁지 않아 지는 걸 경험하는 것. 회사가 끝나도 웬만해선 일찍 집에 오고 싶고 어디 좋은 데를 보면 같이 놀러 가고 싶은 마음. 아빠가 되기 전 자유롭고 에너지 넘치고 거칠 것 없었던 청년 백산이 가끔 그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제 나는 아빠 백산이 되었다. 확실하게. 친구의 질문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됐다.
크리스마스 새벽에 눈을 떠보니 거실은 아직 어두웠다. 서울 고층 아파트의 해뜨기 전 여명, 한줄기 빛이 스며들고, 크리스마스트리 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들이 주인을 만나기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이 공간은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어른들의 웃음소리, 쿵쾅대는 소리와 싸우고 울고 또 웃는 복잡 다양한 소리와 움직임으로 꽉 채워질 터였다. 채워지기 전 고요함이 상쾌하다. 한 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올 한 해, 우리 가정의 가장 큰 변화는 뭐니 뭐니 해도 한국으로 이주한 것. 대륙을 건너 다섯 식구가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함께 했고 잘 대견하게도 정착해 줬다. 난 나대로 노력했고, 아내도 정말 애썼고, 아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해줬다 - 건강하고, 기뻐하고, 성장하고. 그래, 근 7년 만에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 "아바타 2"의 제이크 설리의 말처럼 우리 가족은 함께 올 한 해 잘 살아냈다. 내게 아빠라는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준 가족이 새삼 소중하고 감사하다.
"백가는 함께 했다. Baek stayed together"
아빠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어 (웃으며)
한국 온 지 얼마 안 돼서, 딸아이가 뭔가에 하도 엄마만 찾아서 "아빠는 왜 안돼"라고 물어보니, 딸이 무심코 웃으며 던진 말이다. 갑툭튀... 이 말 한마디가 내게 그토록 충격을 준건 이게 그 아이의 꾸밈없는 진심이었기에. 당황해서 "야, 아빠가 있어서 네가 지금 여기서 자고, 학교도 다니고, 그런 거지. 너 아빠 없으면 태어나지도 못했고 지금 하는 거 다 못해". 이렇게 즉석 답변을 늘어놓았지만 그건 말하는 내게도, 듣는 딸에게도 그저 공허한 소리로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자신의 아주 근본적인 자리와 아이덴티티에 대해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그건 생각 이상의 충격이었다. 내가 아빠로서 한 게 얼만데 라는 생각과 함께 분노, 방어기제가 작동되고, 이럴 거면 아예 삐뚤어져서 아빠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제대로 보여주겠다 이런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겠는가. 삐뚤어져봐야 내 손해고 내 업보만 커지는 거지. 오은영 박사님의 말처럼 아이들은 논쟁하고 화내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가르치는 대상일지다. 정작 내가 더 화나고 당황했던 건 내 안엔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학교도 듣고, 그렇게 늘 신앙생활도 하고,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도 해왔던 내게, 정작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었던 것.
그래서 없는 머리와 창의력을 짜내서 아래 4P를 만들었다. 짜잔.
Provide: 공급하는 사람 - 가족에게 필요한 육의 양식, 삶의 터전, 영의 양식/터전을 공급한다.
Protect: 보호하는 사람 - 가족을 외부의 위협과 좋지 않은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한다.
Play: 노는 사람 - 가족, 특히 아이와 신나게 논다. 아빠는 같이 노는 사람이고 재밌는 사람이다.
Prepare: 준비시키는 사람 - 가족의 독립을 준비시키는 사람. 새의 둥지에서 맘껏 날개 치며 날아도록.
그리고 아내와 함께 아이들에게 아빠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에 해줬다. 이 4P로. 듣는둥 마는둥 하는 아이들에겐 여전히 허공을 떠도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 마음속엔 남았고 내겐 더 명확해졌으니까.
결국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았던 것 같아. 나를 너무 사랑했어. 나의 편안함 이런 걸 포기하기 너무 어렵더라고. 내가 진정 살려면 내 안의 내가 더 죽어야겠어. 그러면서 할 수 있는걸 하나씩 해보려고.
연말에 부모님 찬스를 쓰고 정말 오래간만에 아내와 단둘이 데이트를 했다. 한국 와서 어떻냐고, 힘든 건 없냐고, 올해를 돌아보니 어떻냐고 묻는 질문에 아내가 한 대답이다. 올 한 해 이것저것 불안하기도 하고 애들한테 화도 많이 내고 때때로 좌절스러웠던 적도 많았는데, 결국 그건 스스로를 너무 사랑해서였다고. 아내만큼 자아가 강하지 않고 이타적인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 그녀의 영적 각성이 멋있었다.
돌아보면 아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아내가 에너지를 찾고 맘을 쓰기 시작하면 아이들도 나도 우리 부모님도, 주위사랑 하나하나 다 피어난다. 반면 아내가 힘에 겨워 손을 놔버리면 다 삐걱댄다. 어느새 나도 아이들도 다 소리 지르고 나자빠져 있다.
아내는 나와 너무 다르다. 난 도전하고 전진하는 게 아이덴티티라면 아내는 돌보고 가꾸는 게 아이덴티티이다. 아내는 주는 사람이고 듣는 사람이기에 사람들은 늘 아내를 찾는다. 워낙 아날로그의 사람이라 연락이 잘 안 된다는 게 함정(?)이지만 - 전화도 잘 안 받고, 핸드폰 쳐다보고 있을 때도 많지 않고 - 일단 연락이 되어 곁으로 오면 주위가 살아난다. 속도와 효율성, 성장이 전부였던 내게 느림의 미학, 진짜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꼭 빨리,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만은 않는다는 걸 삶으로 보여준 사람. 느리게 가고 어젠다 없이 희생하는 게 다반사지만 돌아놓고 보면 아내도 주위 사람도 다 전보다 활짝 피어나있다. 그게 참 신비로웠다.
그렇기에 나도 우리 아이들도, 우리 부모님도 누구나 아내를 필요로 하지만, 난 그녀의 쓰임이, 그녀의 손길이, 우리 가족을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것을 미리 보고 꿈꾼다. 내년은 마침 그녀가 오래 주경야독으로 준비한 상담과정 석사를 졸업하는 해이다. 그녀의 사랑과 마음과 보살핌, 그녀가 주는 위로에, 그녀만의 전문성이 더해져서, 아내가 더욱더 피어날 2023년을 꿈꾸며 응원한다.
가족이 떨어져 살려다 다시 근처에서 살려니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아들만 있는 우리 집 형제들은 별로 신경 안 써도, 여자들 입장에서 신경 쓰이는 것들). 아래는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본 거지만, 리스트업 하자면 끝도 없다.
조카와 우리 집 아들놈들이 투닥투닥 계속 다툰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제대로 잘 말리고 중재 안 하면 애들 싸움이 어른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조카는 밥 먹을 때 핸드폰을 보는 게 습관이 되어 우리 집 애들도 계속 핸드폰을 보여달라고 조른다.
연말연시에는 누구집에서 모일 것인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부데끼다 보면 서로 조심하고 배려해도 상처받고 기분상하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그런 시간과 과정 없이는 하나될수 없고 함께할 수 없고 같이 함으로써 누리는 기쁨과 추억도 없다. 가족끼리 사랑받고 사랑주는 것도 점점 줄어든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는 말이 있는데, 허다한 허물이 사랑을 덮게된다.
가족은 아날로그다. 가족은 날것이다. 가족이 가족으로서 기능할때, 그건 기쁨의 근원이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사랑이 꽃피는 공간이 된다. 하지만 가족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때, 그건 가장 깊은 아픔을 주고, 상처를 남긴다. 고통을, 지울수 없는 낙인을 남기기도 한다.
부딪히며 하나되는 가족도 보이고, 부딪히며 멀어지는 가족도 보인다. 이젠 부딪힐 일을 극도로 조심하는 사람들, 아날로그 가족보단 디지털상의 적당하고 부담없는 관계가 훨씬 편한 사람들. 세대갈등, 남녀갈등, 좌우갈등의 한가운데에서, 가족이 설 자리는 더 얕아지고 좁아지고 있다. 그게 내 피부로도 느껴진다.
가족이 더 깊이, 더 넓게 뻗어져 나갈수 있을까. 나의 역할은 무엇이고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우리가족부터 아내와 함께 가족이 더 깊고 더 넓게 뻗어져 나갈수 있도록 해보고싶다. 계속 부딪힐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놓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