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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Baek 백산 Jan 23. 2023

한국이 좋아요 미국이 좋아요

십여 년의 미국삶을 정리하고 한국온 세 아이 아빠의 생각

한국이 좋아 미국이 좋아?

한국 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이다. 과거의 나를 비롯해, 어느 누구에겐 미국삶이 꿈과 동경의 대상이기에, 특히나 자식 키우는 부모들에겐 영어와 교육환경에서 미국이 갖는 강점이 있기에, 또 미국 살면서 언젠가 한국 귀국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런 질문 들을 여기저기서 받아왔다. 나 또한 미국에서 언젠가 한국을 갈까 갈 수는 있을까 막연히 상상했을 때에 많이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1. 한국이 좋은 부분


싸고 편리한 삶: 삶의 질이 높아지다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 가장 먼저 피부로 느껴지는 물가차이는 외식값이다. 거의 반값 수준이다. 미국은 택스와 팁을 붙이면 음식가격의 약 130-140%가 실제 음식가격으로 보면 된다. 환율까지 있으니, 달러로 보통 $20씩 하는 음식가격은 한화로 거의 삼만 오천 원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에선 어디 가서 먹었다 하면 인당 $20 나오는 건 기본이었는데, 한국은 인당 2만 원 수준에서 대부분 해결이 되니 딱 반값 느낌이다. 거기다 같은 가격의 음식 퀄리티가 워낙 차이가 나니, 실제로 체험 물가는 반값이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4인가족 친구집이랑 우리 집 (5인) 같이 아이들 데리고 거의 가장 저렴한 음식 중 하나인 베트남 쌀국수 먹으면 한화로 약 23만 원 정도를 결제하게 된다. 반면 한국에선 십만 원 남짓이면 더 좋은 퀄리티의 베트남 쌀국수나 밥을 먹을 수 있다. 여기서 오는 심리적인 여유와 만족감이 상당하다.


외식비뿐 아니다. 아이들 교육도 훨씬 저렴하고 편리하다. 일단 어린이집 비용이 미국은 아무리 파트타임으로 보내도 인당 백만 원은 기본이고 이백만 원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데 한국은 공짜다. 아이들 등교/하교를 늘 차로 데리러 와야 하는 부담도 사라졌다. 애들 태권도를 하나 시키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일주일 이틀/사흘 가는데 이십만 원은 넘고 라이드를 줘야 하지만 한국은 집 앞 태권도/피아노에 매일 가고 십오만 원 이하면 된다. 아이들 교육이 훨씬 편해지고 저렴해졌다.


장보기와 배달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고기 등 고깃값은 더 비싸지만 전반적으로 워낙에 저렴하고 좋은 질의 제품이 다양하다. 또 쿠팡에서 주문하면 다음날 바로 오고 리턴도 공짜니 직접 장 보러 갈 필요도 없다. 배달음식의 양과 질, 속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한국 관공서/공공서비스의 우수함. 이건 진짜 미국 가서 살아보면 안다. 한국은 이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파트 살면서 오는 수많은 편리함들을 포함해 한국의 은행/공공 서비스의 편안함은 한국 밖에서 살아보면 확실히 알게 되는 한국의 강점이다.


건강: 잘 먹고 운동하고 건강검진도 하고

한국 와서 몸이 확실히 많이 건강해졌다. 항상 춥고 손발이 찼는데 한국 와서 열도 많이 생기고 몸도 더 가볍다. 일단 먹는 게 미국에 비해 건강해졌다.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느라 그것도 운동이 되고, 아파트 지하에 있는 접근성이 너무 뛰어나고, 회사 바로 앞에 있는 라이트-크로스핏 gym F45도 체험해 봤는데 너무 좋더라. 그리고 일요일 새벽 6시에 하는 조기축구를 빼놀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나마 공 차는 게 너무 큰 즐거움이다.


또 한국은 병원 접근성이 워낙 좋아서 건강검진도 더 받게 되고 사소한 잔병이나 치과치료 같은 것도 훨씬 하기 편하다. 벌써 한국 와서 사진 찍어보고 거북목에 충격받아서 자세 교정을 노력 중에 있다. 한국이 적어도 내게는 미국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준다.


가족과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한국 와서 가장 감하고 기쁜 것 중 하나는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걸 보는 것. 근처에서 손주손녀 재롱도 더 자주 보고, 얼마 전에는 친척들 모임도 한번 하고, 가족 여행도 더 자주 하고, 형네 가게도 한 번씩 가고, 이런 것들이 참 큰 감사거리이다. 이제 어머니도 칠순이고 아버지는 5년만 지나면 여든이신데, 부모님이 더 연로하시기 전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많이 감사하다.


또 하나, 함께 자란 친한 친구들, 선후배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게 큰 기쁨이다. 후배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동아리 후배를 다 같이 봤는데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서 같이 공감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것

마지막은 이거다. 사회문제에 공감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것. 한국에 오니 사회의 수많은 문제가 곧 내 문제로 다가온다. 자영업자의 문제는 우리 형의 문제, 저출산 문제는 주위에 가득하고, 부동산/주식 급등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것도 주위에 가득하다. 대학생들의 사회진출/취업문제는 내 후배들 문제, 40대들의 진로고민은 내 문제이자 내 친구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는데 동참하고 기여하고 싶으리라. 미국에 있을 땐 미국이란 사회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게, 내가 공감하고 교감하며 함께해 볼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아서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사회문제가 곧 내 문제처럼 느껴지고, 같이 공감하고 고민해 볼 여지가 너무나 많다. 그게 나를 숨 쉬게 한다.


2. 미국이 좋은 부분


자녀 교육과 앞으로의 기회들

한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형에게 요즘 대학생들이 어떻냐고 여쭤보니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우리 때보다 학습능력, 성취도는 훨씬 뛰어나. 영어도 다들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단 문제해결능력은 더 떨어졌어. 객관식은 더 강해졌지만 주관식은 더 약해진 느낌이랄까. 아 그리고 취업은 정말 쉽지 않아. 많이 어려워졌어.

한국 교육의 장단점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코멘트라고 생각했다. 아 우리 때보다 오히려 더 심해졌구나.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고 진취적으로 풀어나가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하는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더 약해졌구나. 그리고 대학생 취업 환경은 더 어려워졌구나.


실제로 미국에선 어느 정도 대학에 나와도 어떻게든 각자 취업해서 30 정도면 직업도 다 가지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립도 이루고 또 결혼도 하고 이런 모습을 많이 접하지만, 한국에선 30이 됐을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며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아직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접한다. 군대 다녀와서 취직 준비하다가 무슨 시험준비라도 하면 금방 되는 게 나이 30이다. 그만큼 이 땅이 미국에 비해 젊은이들에게 더 기회가 적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초등교육의 경우는 이런 문제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초등교육의 질이 미국보다 더 낫게 느껴진다. 중고등학교로 가면서 입시 구도와 함께 구시대적 암기위주/객관식 위주의 교육,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사교육과 선행학습 이런 것들이 나 때보다 더 심해졌다는 게 과연 한국에서 아이들을 중고등학교를 보내는 게 (약 오 년 후의 이야기) 맞을까 이런 생각을 벌써부터 들게 만든다.


자연, 그리고 공간에서 나오는 여유

미국은 모든 것이 널찍널찍했다. 어딜 가도 높은 빌딩도 없고 (우리가 큰 도시에 안 살아서 그런 면도 있지만), 주차하기도 편하고, 어디들 가도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넘친다. 교회만 해도 너무 느낌이 다르다. 주차도 편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았다. 집 앞 단지와 공터도 아이들에겐 놀이터였다 - 늘 동네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며 놀았다. 주말에 산으로 바다로 한두 시간이면 다서 아이들 풀어놓고 놀 수도 있었다.


반면 한국은 어딜 가도 공간이 부족하고 사람도 많고 주차도 비좁다. 키즈카페는 가격뿐 아니라 인공미가 넘쳐서 편리하지만 질리는 부분이 있고, 집 앞 놀이터는 훨씬 작아졌고 날씨도 추워서 잘 놀리게 되지 않는다. 자연으로 가서 애들을 놀리는 것도 또 다양한 옵션이 있지만 미국에 비해선 확실히 부족하게 느껴진다.


바쁘고 쉼과 성찰을 어렵게 하는 사회분위기

확실히 한국에 와서 뭔가 더 바빠졌다. 더 편리해진 게 50% 라면 더 바빠진 게 70-80% 는 돼서 net으로 보면 더 바빠진 거 같다. 아이들도 학교를 더 일찍 가고 학교 진도도 더 빨라서 은근히 숙제 부담이 있다. 나도 일도 그렇고 만날 사람도 더 생기면서 바빠졌고, 출퇴근 시에 전에는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들었다면 이제는 유튜브를 통한 일방적 지식 습득, 혹은 그냥 gossip성 콘텐츠 소비가 더 늘었다. 여유가 생긴 건 아내가 유일할 수도 =)


확실히 이 부분은 워낙에 잘 알고 경계하는 부분이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한국은 워낙에 재밌는 옵션도 많고 바쁘게 돌아가기에 쉼과 성찰이 쉽지만은 않다.


3. 우열을 가리기 힘든 부분


커리어의 기회

앞으로의 커리어 차원에서 보자면 미국은 확실히 글로벌 커리어를 쌓아가고, 또 글로벌 사업을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인이 글로벌 사업을 해보는 것이 꿈이고 특히나 테크 쪽 커리어를 가져간다면 미국에서 갖는 기회나 쌓는 경험은 분명 한국에서 쌓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반면 한국에선 더 주도적으로 일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국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리더십의 기회들이 한국에선 더 주어질 수 있다. 그리고 글로벌 사업도 동남아 등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 커리어 차원에선 일장 일단이 있고 본인의 선호와 하기 나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총평


감사하게도 아이들도 아내도 한국에 잘 적응해 주었고 난 확실히 삶의 만족도가 많이 높아졌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은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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