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의 미국삶을 정리하고 한국온 세 아이 아빠의 생각
한국이 좋아 미국이 좋아?
한국 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이다. 과거의 나를 비롯해, 어느 누구에겐 미국삶이 꿈과 동경의 대상이기에, 특히나 자식 키우는 부모들에겐 영어와 교육환경에서 미국이 갖는 강점이 있기에, 또 미국 살면서 언젠가 한국 귀국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런 질문 들을 여기저기서 받아왔다. 나 또한 미국에서 언젠가 한국을 갈까 갈 수는 있을까 막연히 상상했을 때에 많이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 가장 먼저 피부로 느껴지는 물가차이는 외식값이다. 거의 반값 수준이다. 미국은 택스와 팁을 붙이면 음식가격의 약 130-140%가 실제 음식가격으로 보면 된다. 환율까지 있으니, 달러로 보통 $20씩 하는 음식가격은 한화로 거의 삼만 오천 원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에선 어디 가서 먹었다 하면 인당 $20 나오는 건 기본이었는데, 한국은 인당 2만 원 수준에서 대부분 해결이 되니 딱 반값 느낌이다. 거기다 같은 가격의 음식 퀄리티가 워낙 차이가 나니, 실제로 체험 물가는 반값이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4인가족 친구집이랑 우리 집 (5인) 같이 아이들 데리고 거의 가장 저렴한 음식 중 하나인 베트남 쌀국수 먹으면 한화로 약 23만 원 정도를 결제하게 된다. 반면 한국에선 십만 원 남짓이면 더 좋은 퀄리티의 베트남 쌀국수나 밥을 먹을 수 있다. 여기서 오는 심리적인 여유와 만족감이 상당하다.
외식비뿐 아니다. 아이들 교육도 훨씬 저렴하고 편리하다. 일단 어린이집 비용이 미국은 아무리 파트타임으로 보내도 인당 백만 원은 기본이고 이백만 원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데 한국은 공짜다. 아이들 등교/하교를 늘 차로 데리러 와야 하는 부담도 사라졌다. 애들 태권도를 하나 시키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일주일 이틀/사흘 가는데 이십만 원은 넘고 라이드를 줘야 하지만 한국은 집 앞 태권도/피아노에 매일 가고 십오만 원 이하면 된다. 아이들 교육이 훨씬 편해지고 저렴해졌다.
장보기와 배달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고기 등 고깃값은 더 비싸지만 전반적으로 워낙에 저렴하고 좋은 질의 제품이 다양하다. 또 쿠팡에서 주문하면 다음날 바로 오고 리턴도 공짜니 직접 장 보러 갈 필요도 없다. 배달음식의 양과 질, 속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한국 관공서/공공서비스의 우수함. 이건 진짜 미국 가서 살아보면 안다. 한국은 이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파트 살면서 오는 수많은 편리함들을 포함해 한국의 은행/공공 서비스의 편안함은 한국 밖에서 살아보면 확실히 알게 되는 한국의 강점이다.
한국 와서 몸이 확실히 많이 건강해졌다. 항상 춥고 손발이 찼는데 한국 와서 열도 많이 생기고 몸도 더 가볍다. 일단 먹는 게 미국에 비해 건강해졌다.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느라 그것도 운동이 되고, 아파트 지하에 있는 접근성이 너무 뛰어나고, 회사 바로 앞에 있는 라이트-크로스핏 gym F45도 체험해 봤는데 너무 좋더라. 그리고 일요일 새벽 6시에 하는 조기축구를 빼놀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나마 공 차는 게 너무 큰 즐거움이다.
또 한국은 병원 접근성이 워낙 좋아서 건강검진도 더 받게 되고 사소한 잔병이나 치과치료 같은 것도 훨씬 하기 편하다. 벌써 한국 와서 사진 찍어보고 거북목에 충격받아서 자세 교정을 노력 중에 있다. 한국이 적어도 내게는 미국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준다.
한국 와서 가장 감하고 기쁜 것 중 하나는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걸 보는 것. 근처에서 손주손녀 재롱도 더 자주 보고, 얼마 전에는 친척들 모임도 한번 하고, 가족 여행도 더 자주 하고, 형네 가게도 한 번씩 가고, 이런 것들이 참 큰 감사거리이다. 이제 어머니도 칠순이고 아버지는 5년만 지나면 여든이신데, 부모님이 더 연로하시기 전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많이 감사하다.
또 하나, 함께 자란 친한 친구들, 선후배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게 큰 기쁨이다. 후배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동아리 후배를 다 같이 봤는데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
마지막은 이거다. 사회문제에 공감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것. 한국에 오니 사회의 수많은 문제가 곧 내 문제로 다가온다. 자영업자의 문제는 우리 형의 문제, 저출산 문제는 주위에 가득하고, 부동산/주식 급등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것도 주위에 가득하다. 대학생들의 사회진출/취업문제는 내 후배들 문제, 40대들의 진로고민은 내 문제이자 내 친구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는데 동참하고 기여하고 싶으리라. 미국에 있을 땐 미국이란 사회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게, 내가 공감하고 교감하며 함께해 볼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아서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사회문제가 곧 내 문제처럼 느껴지고, 같이 공감하고 고민해 볼 여지가 너무나 많다. 그게 나를 숨 쉬게 한다.
한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형에게 요즘 대학생들이 어떻냐고 여쭤보니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우리 때보다 학습능력, 성취도는 훨씬 뛰어나. 영어도 다들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단 문제해결능력은 더 떨어졌어. 객관식은 더 강해졌지만 주관식은 더 약해진 느낌이랄까. 아 그리고 취업은 정말 쉽지 않아. 많이 어려워졌어.
한국 교육의 장단점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코멘트라고 생각했다. 아 우리 때보다 오히려 더 심해졌구나.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고 진취적으로 풀어나가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하는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더 약해졌구나. 그리고 대학생 취업 환경은 더 어려워졌구나.
실제로 미국에선 어느 정도 대학에 나와도 어떻게든 각자 취업해서 30 정도면 직업도 다 가지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립도 이루고 또 결혼도 하고 이런 모습을 많이 접하지만, 한국에선 30이 됐을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며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아직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접한다. 군대 다녀와서 취직 준비하다가 무슨 시험준비라도 하면 금방 되는 게 나이 30이다. 그만큼 이 땅이 미국에 비해 젊은이들에게 더 기회가 적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초등교육의 경우는 이런 문제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초등교육의 질이 미국보다 더 낫게 느껴진다. 중고등학교로 가면서 입시 구도와 함께 구시대적 암기위주/객관식 위주의 교육,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사교육과 선행학습 이런 것들이 나 때보다 더 심해졌다는 게 과연 한국에서 아이들을 중고등학교를 보내는 게 (약 오 년 후의 이야기) 맞을까 이런 생각을 벌써부터 들게 만든다.
미국은 모든 것이 널찍널찍했다. 어딜 가도 높은 빌딩도 없고 (우리가 큰 도시에 안 살아서 그런 면도 있지만), 주차하기도 편하고, 어디들 가도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넘친다. 교회만 해도 너무 느낌이 다르다. 주차도 편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았다. 집 앞 단지와 공터도 아이들에겐 놀이터였다 - 늘 동네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며 놀았다. 주말에 산으로 바다로 한두 시간이면 다서 아이들 풀어놓고 놀 수도 있었다.
반면 한국은 어딜 가도 공간이 부족하고 사람도 많고 주차도 비좁다. 키즈카페는 가격뿐 아니라 인공미가 넘쳐서 편리하지만 질리는 부분이 있고, 집 앞 놀이터는 훨씬 작아졌고 날씨도 추워서 잘 놀리게 되지 않는다. 자연으로 가서 애들을 놀리는 것도 또 다양한 옵션이 있지만 미국에 비해선 확실히 부족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한국에 와서 뭔가 더 바빠졌다. 더 편리해진 게 50% 라면 더 바빠진 게 70-80% 는 돼서 net으로 보면 더 바빠진 거 같다. 아이들도 학교를 더 일찍 가고 학교 진도도 더 빨라서 은근히 숙제 부담이 있다. 나도 일도 그렇고 만날 사람도 더 생기면서 바빠졌고, 출퇴근 시에 전에는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들었다면 이제는 유튜브를 통한 일방적 지식 습득, 혹은 그냥 gossip성 콘텐츠 소비가 더 늘었다. 여유가 생긴 건 아내가 유일할 수도 =)
확실히 이 부분은 워낙에 잘 알고 경계하는 부분이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한국은 워낙에 재밌는 옵션도 많고 바쁘게 돌아가기에 쉼과 성찰이 쉽지만은 않다.
앞으로의 커리어 차원에서 보자면 미국은 확실히 글로벌 커리어를 쌓아가고, 또 글로벌 사업을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인이 글로벌 사업을 해보는 것이 꿈이고 특히나 테크 쪽 커리어를 가져간다면 미국에서 갖는 기회나 쌓는 경험은 분명 한국에서 쌓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반면 한국에선 더 주도적으로 일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국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리더십의 기회들이 한국에선 더 주어질 수 있다. 그리고 글로벌 사업도 동남아 등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 커리어 차원에선 일장 일단이 있고 본인의 선호와 하기 나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아이들도 아내도 한국에 잘 적응해 주었고 난 확실히 삶의 만족도가 많이 높아졌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은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