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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Baek 백산 Mar 04. 2023

줄넘기 학원, 서울 집 한 채, 그리고 마흔

마흔의 서울살이를 하는 집 한 채 없는 가장의 소회

줄넘기 학원

산아 너 줄넘기 학원이라고 알아? 한국 학원, 교육이 얼마나 장난 아닌지 이거 한번 들어봐. 초등학교에 가서 처음 아이들이 겪게 되는 테스트가 줄넘기야.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통해서 통과냐 실패냐를 나누지. 그걸 준비하는 학원이야. 이걸 왜 하냐고? 첫째는 초등학교 첫 시작에 애들이 자신감 가질 수 있게 실패의 경험을 제거하려는 한국식 치맛바람이 하나고, 둘째는 남들이 너무 많이 해서 그래. 생각해 봐 - 모두가 준비를 안 하고 와서 줄넘기를 하면 우리 애의 실력에 따라서 통과를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고 못하면 더 연습해서 하면 되지. 하지만 모두가 준비를 해왔는데 우리 애만 안 해와서 우리 애만 떨어진다면? 이게 극단적인 죄수의 딜레마 같은 거야. 남들이 다 하니까 안 하기가 어려운 거라고. 그래서 유치원생 대상 줄넘기 학원까지 나오는 게 한국 교육의 현실이야."


지인과의 술자리 대화에서 거의 웃어넘긴 이야기였다. 웃프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해도 갔다. 모두가 준비해 온다면 나는 피할 수 있을까.


서울 집 한 채와 실리콘밸리 집 한 채

몇 년 전부터 이런 말이 오가는 것을 봤다 - 평생 일해도 서울 집 한 채 장만할 수 없다. 서울 집, 서울 집, 서울 집... 많은 것이 압축된 하나의 키워드가 된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면 당연지 주어지거나 달성 가능해야 하는 결과/목표 같기도 하고, 빈부격차와 계층 간 이동성 축소를 보여주는 축소판 같기도 하고.  


미국에 살 때도, 집 한 채 장만은 많은 이들에게 꿈이고, 중산층의 목표이고, 가정과 사회의 근간이고, 정치/경제의 인정성과 건강을 나타내주는 지표였던 건 맞다. 실리콘밸리의 엄청난 집값이 늘 세간의 관심사기도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보듯이 부동산 시장 과열과 버블은 비단 한국과 서울집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하지만 뭔가 다르다. 실리콘밸리 집 한 채와 서울 집 한 채의 무게는. 당장 내 피부로 느껴진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살 때도 내 집마련을 꿈꿔보지 않은 건 아니다. 종잣돈이 모이지 않고 부동산 경기는 계속 올라서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 온 지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내 피부로 느껴지는 서울집에 대한 무게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밖에서 보기엔 "서울집" 열풍과 키워드가 너무 심한 것처럼 보였지만, 와서 살아보니 어느새 이 키워드가 내 삶에 스며들어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미국 살면서 너무 부동산 부동산에 목매던 내 한국 친구/지인들을 은근히 안타까워했던 나 자신을 비웃기나 하듯이, 이제는 남들 다 있는 집 한 채 너는 왜 없냐는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꽤나 묵직하고 꽤나 강하게.


왜일까. 왜 서울 집 한 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욕망, 무게가 실리콘밸리 집 한 채보다 높을까. 간단히 생각을 정리해 봤다.    


재테크로서의 집: 한국 >> 미국

실리콘밸리 집값이 워낙 올라서 분명 실리콘밸리에서도 집이 재테크로서 기능하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부의 추월차선은 부동산 보단 테크이다. 여전히 미국에선 자산, 특히 집을 통한 재테크 보단 커리어/일/주식 투자 등을 통한 부의 추월차선이 존재하고 또 더 탄탄하게 알려져 있다고 보인다. 모기지/재산세 등이 꽤 크고 전세제도 같은 게 없어서 한국에 비해 레버리지도 제한적이다.


부의 징표/보여주기/스스로의 만족으로서의 집: 한국 >>> 미국

한국은 자신이 어디 사는지 본인도 엄청나게 관심이 많고 주위에서도 관심이 많다. 중고등학생이 인스타그램 핸들에 아파트 이름을 적을 정도라니. 미국 및 일반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은 한국이 독보적이다.

꼭 남한테 보여주고 싶고 과시욕구가 주된 이유라기 보단 이쯤은 해야할 것 같은 불안감/내재된 자의식이 더 크다고 본다. 스카이가 아니다라도 in seoul 대학른 가야 할 것 같고, 어느정도 직장은 잡아야 할 것 같은 심리의 연장선.

미국은 남 사는 것에 크게 신경도 안쓸뿐더러 그런 정보들도 제한적이다. 유투브만 키면 부동산 정보가 넘치고 밥먹고 술먹을때 늘 부동산 재테크 이야기하는 한국과는 천지차이


실거주 니즈로서의 집: 한국 = 미국

 서울에 모든 게 몰려 있어서 서울 거주 니즈가 높은 건 맞지만, 그건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다. 대중교통은 한국이 훨씬 잘되어 있다. 미국도 출퇴근 한두 시간씩 하는 사람들 꽤 있고 최근엔 재택도 많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땅덩이가 넓다. 하지만 한국은 아파트가 있다 - 여기저기 올라가서 빼곡 빼곡 살고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면 서울 근교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국 전체와 비교하면 모를까 실리콘밸리만 놓고 보면 실거주 니즈는 서울과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종합하자면 서울 집이 이다지도 사회의 욕망과 갈등이 점철된 키워드가 된 것에는 실거주 니즈보단 부의 징표/남과 비교하는 한국적 특성과 타 재테크 수단이 마땅치 않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부동산 불패가 증명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던데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본다. 서울 웬만한 30평 아파트 한채 팔면 미국 플로리다에 가서 100평짜리 방 네 개 있는 이층 집을 소유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현재를 사는 나에게, 우리에게 여전히 서울집 한 채는 놓칠 수 없는 키워드이다. 그렇게 다가온다.  


줄넘기학원과 서울집 한 채

다시 줄넘기 학원 이야기로 돌아가자. 얼마만큼의 이 서울집 열풍, 부동산 열풍이 줄넘기 학원과 같은 현상 때문인가. 나이만 30-40 더 먹었지 사실은 우리는 우리 애들에게 줄넘기 학원 보내는 것처럼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다들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게 아닐까. 줄넘기를 잘하는 건 좋은 거고 중요할 수도 있다. 단 자기 페이스대로 연습해서 하면 되고, 만약 줄넘기가 적상이 아니라면 다른 거 하면 된다. 문제는 모두가 줄넘기를 이야기하며 모두가 이거에 최대한 노력하여 이미 준비해 왔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면? 본연의 줄넘기 시험/연습의 가치는 온 데 간 데 없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쟁하는 게 본질이 돼버린다. 서울집이 실거주 니즈가 아니라 "재테크의 수단", "부의 징표/남과의 비교-경쟁의 키워드"가 되었다면 그건 똑같은 본말 전도가 아닐까.


아래 슈카월드 형이 대한민국은 왜 행복하지 않은가 라는 영상을 올렸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기도 하다. 아파트에 목숨 거는 사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사회. 항상 상대경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기에 소수만 행복하고 소수만 성공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 모두가 바쁘고 노력하지만 대다수가 힘든 사회.  


https://www.youtube.com/watch?v=vFRbuRWkVTM


마흔의 서울살이

서울/한국이 가진 엄청난 힘의 소용돌이 - 그건 끊임없이 나와 남을 비교하게 하고, 수없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기 페이스를 지키기 어렵기 만든다. 그건 나를 불안하게 하고 집단 불안으로 몰아간다. 죄수의 딜레마를 만든다. 알고 있어도 별수가 없다. 나만 움직이지 않으면 나만 손해 보거나 뒤쳐지거나 다음 기회가 없을 수 있으니까. 혼자서 뭘 어떻게 하기엔 사회의 힘이 너무 크다. 소용돌이처럼.


여기에 마흔이란 나이가 더해진다. 혹자는 불혹 이라고도 했지만 과연 그럴까. 전처럼 몸이 자유롭지 않다. 연로해 가시는 부모님, 커가는 자녀들, 몇 번 남지 않은 것 같은 커리어의 기회들, 여기에 다른 것들을 더하면 운신의 훨씬 좁게 느껴질 수 있는 나이고 많이 불안해질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서울살이라는 무게 위에 마흔의 무게가 더해지자 "아 맞다. 한국 만만치 않았지"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산아, 너 40대 어떻게 살래. 이 만만치 않은 한국/서울살이에 마흔의 무게에 눌려가며, 너도 똑같이 줄넘기 학원 다니고 남들보다 줄넘기 잘하는 모습 보여주면서 (그러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래? 이에 대해선 다음 글에 나눠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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