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건 얼마나 중요할까
만나고 싶은 사람한테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오지 않는다. 취직하고 싶은 직장에 지원도 하고 네트워킹도 하고 별의별걸 다했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제깍제깍 연락이 되던 친구와 연락할 때마다, 아 이 친구는 지금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연락하면 바로 답을 줄까 이런 거에 불안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바야흐로 30대 중후반이 되어 새로운 일거리를 찾다 보니, 나의 사회적 '레벨'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정말 레벨이 있는가. 난 레벨 몇인가. 사람들은, 사회는, 세상은 나를 몇 단계라고 보는가. 그리고 난 나를 어떻게 보는가.
1. 사회에는 분명 '레벨'은 있다.
1.1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만날 수 없는 사람: 만난다는 것, 만날 수 있다는 건, 쉽게 이야기해 내가 저 사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느냐이다. 사람이 가진 수많은 자원 중에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가 (특히나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시간' 이리라. 왜냐하면 돈이 생기고 대통령이 되거나 최고 기업의 대표가 된다고 해도 시간이 더 늘어나는 건 아니기에. 아니 오히려 더 바빠지고 줄어들 것이기에. 그래서 상대방의 시간을 요구할 때, 특히 상대가 내가 더 나의 interest를 위해 만나고 싶은, 뭔가 나에게 도움을 주거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친해지면 나중에 더 도움될 것 같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시간'과 '관심'을 요구하는 행위가 공짜 일리 없다. 저 사람이 나를 너무 좋아해서 그냥 도와주고 싶거나, 저 사람이 너무나 천성이 착해서 도와주는 걸 좋아하거나, 내가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도와주거나, 도움 주면서도 나에게 도움받고 싶은 게 있거나, 이 모든 것의 교집합 또는 mixture이거나, 이런 것들이 연결되어야 나를 만나주고 시간을 내주리라. 이건 분명 어디 네트워킹 자리에 가서 명함 교환하거나 사진 찍거나 페이스북에서 친구 신청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난 누구의 '시간'을 얻을 수 있는가. 내가 내 생각에 레벨 '7'의 사람의 시간을 편히 얻게 되고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이 자연스레 많아질 때, 난 자연스럽게 내가 이 정도 레벨이 되었음을 느낀다.
1.2.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 1.1번과 상당히 비슷한 맥락이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물론 친한 지인 중에 그때그때 사회적 레벨과는 좀 무관히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내가 돕기도 하고 하는 사이도 많지만, 특히나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대부분 내게는 별 바로 도움될 것은 안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도움 요청하는 사람 중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거의 pay it forward의 개념으로 도움이 오간다. 이럴 때 또 레벨을 느낀다.
1.3. 내가 할 수 있는 일, 들어갈 수 있는 직장과 할 수 없는 일, 들어갈 수 없는 직장: 미팅은 잠시의 '시간'을 교환한다면, 직장은 엄청 오랫동안의 '시간'을 교환한다. 난 이 회사에서 이 사람들에게 나의 능력과 '시간'을 바친다는, 회사는 그 대가로 내게 경제적인 다양한 '보상'을 제공한다는 계약을 맺는다. 당연히 여기서 중요한 건 나의 '능력과 시간'의 가치이고, 회사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줄 '보상'이 내게 갖는 가치이다. 내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직장은 그 회사의 '보상'이 내게 크다고 판단되는 곳이고, 난 직장에 지원할 때마다 난 이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고 나를 열심히 판다. 그리고 어떤 데에서 내게 연락이 오고 어떤 곳에서 나의 '능력과 시간'의 가치를 높이 쳐주고 낮게 쳐주는지에 따라서 난 나의 현 '레벨'을 가늠하게 된다.
1.4. 돈과의 관계: 돈이 란 건 참 재밌다. 사회적 지위 중 '직장' 또는 '하는 일'에서 나오는 레벨은 그 당시,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으로 보이냐에 연결되는 반면, '돈'은 그보다 훨씬 더 영속성이 높다. 직장처럼 잘릴 위험도 없고, 세대 간 승계까지 가능하다. 그래서 더 '개인'에 귀속되어 있다. 그리고 레벨 정하기가 너무 쉽다. 그냥 '얼마'있고 '어떤 것들을 살 수 있느냐'이다. 단 사회에 따라서 '돈'이 나의 사회적 '레벨'에 미치는 가중치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중국은 정말 돈이 신이고 돈이면 사회적 지위가 바로 결정된다고 알고 있다. 미국도 부자를 매우 높이는 사회다. 워런 버핏은 큰 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도, 대통령 같은 권한도 없지만 모두의 우상이고 누구도 만날 수 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라 벼락부자 이거나 부를 그냥 물려받은 사람이라면 좀 덜하겠지만 돈은 분명 '힘'이다. 한국사회는 훨씬 더 모순적이다.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히 상대방의 배경이나 사는 곳을 물어보고 하면서 저 사람의 '돈 레벨'을 가늠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2. 사회적 '레벨'업을 하려고 한다면 커리어는 언제나 힘들 수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분명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 어느 정도는 '객관적'이라고 까지 느껴지는 레벨이 분명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따로 쓰지는 않았지만 그게 돈을 더 버는 것이든, 좋은 학교를 나오는 것이든, 좋은 직장을 가서 직장과 성장하는 것이든, 레벨업은 분명히 있다.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레벨업과 개인적 관점에서의 레벨업은 분명 다를 수 있다.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해 잠시 가장 좋은 직장을 포기할 수도 있다. 시작한 회사가 망했지만 엄청난 근육이 성장하고 개인적인 배움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개인적인 레벨업은 있지만 사회적 레벨은 오히려 다운되는 경우들이다. 반면 큰 직장에 들어가서 사회적으로는 레벨이 저절로 몇 단계 상승했지만 개인적인 일의 능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이 사람의 '시간과 능력'의 가치는,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졌을 때 바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가 사회적 '레벨'업을 염두에 두고 살아갈 때 (물론 누구나 다 그렇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건 현재 레벨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정이다. 우린 곧잘, 아 저 정도만 가면, 나도 이런 직장만 있으면, 이런 학교만 들어가면, 이 정도 돈만 있으면, 별 걱정 안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 그럴까? https://thisweekinstartups.com/chamath-palihapitiya-launch-scale-2018/ 이 인터뷰를 보면 Facebook/Slack 등 굴지의 기업에 투자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Social Capital의 창업자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쳇바뀌 같은 쥐 달리기 (Rat race)에 힘들어했는지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고, 너무나 exciting 했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주위를 힘들게 했는지 이야기한다. 이제는 그 같은자리를 맴도는 햄스터 달리기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사회적 레벨업을 하려는 행동 자체를 디스카운트하려는 건 전혀 아니다. 그 누가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 본인의 레벨이 어느 단계이든 레벨업은 늘 있고, 그건 누구에게나 힘들다는 것이다. 엄청난 부자한테 '어느 정도의 돈이면 만족하겠어?'라고 질문하면 정답은 '조금 더'라고 한다. 그래. 우리는 특정 레벨을 원한다기보다 '레벨업'을 원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 레벨업이 내가 스스로 기준을 갖고 자기 페이스에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인정하는 '레벨업'을 찾기에. 그래서 더 똑똑한 선택을 하고 싶어 하고 경쟁에서 이기고 주위에서 인정받기 위해 기를 쓴다. 그건 누구에게나 힘든 과정이다.
3. 그런데, 사회적 '레벨'이 그렇게 중요한가?
중학교 때, 사춘기 때, 반에서 잘 나가던 애들 사이에 너무 끼고 싶었다. 전교에도 1진이 있고, 싸움 짱이 있고, 그 주위에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애들이 있었다. 서로 싸움으로든 뭘로 든 순위 매기기도 하고, 나름 보이지 않는 1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난 그중 한 명과 친하게 지냄으로써 사실상 1진은 아니지만 거기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도 누가 함부로 나를 때리거나 괴롭힐 수 없어서 너무 좋았다. 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나에겐 참 중요했다.
지나 보니, 그 당시엔 정말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던 그 '1진과 어울리는 게' 너무 부질없게 느껴진다. 물론 먹이사슬의 바닥에 있었다면 그 삶은 괴로웠으리라. 1진에 괴롭힘 당하고 따돌림당할 만큼 약하다면, 그건 분명 가볍게 넘길일은 아니다. 내가 거기 있었다면 심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고 학창 시절이 많이 불행했으리라. 하지만 그 먹이사슬 맨 밑바닥이 아니라면, 그냥 나는 나다운 학창 시절을 당당하게 보내면 그걸로 족하는 것이고, 오히려 먹이사슬 밑에 있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위해줬다면 더 뿌듯한 학창생활이었으리라.
이거랑 비슷한 게 아닐까? 나이 들어 성인이 되어서 사회에서 1진이 되고자 하는 나의 마음도. 물론, 진짜 아주 기본적인 생활이 너무 힘들거나, 일이 아무런 자아실현의 매게 가 되지 못하고 돈 버는 수단에 불과해지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생활이라면 그건 분명 레벨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이 사회적 레벨이 얼마나 과연 우리에게 중요할까. 우리는 우리의 삶 마지막에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볼 것인가. 학창 시절 그 1진 여부가 부질없었던 것처럼 그럴까.
사회적으로 많은 걸 이룬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룬 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난 사회적 기준의 리더들의 삶을 너무나 동경하고, 그런 사람들의 책을 늘 읽고 산다. 관심이 엄청 많다. 대통령, 기업가 할 것 없이. 이들의 삶의 열매들은 분명 풍성하고 아름다울 때가 많다. 아니 아름다움을 떠나서 분명 많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열린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기에.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레벨'을 사회에서 정의하는 순간, 그게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그건 어쩌면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학창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그 추억이 아련하지만 나의 미성숙함에 은근히 쑥스러워도 지듯이. 지금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나듯이. '그냥 거기 꼭 안 들어가고 너 스타일대로 살아도 돼. 넌 1진 안 들어가도 충분히 멋져. 넌 원래 싸움보다 다른 걸 잘하고, 멋진 옷 입고 멋진 척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야. 넌 너 페이스대로 더 답게 살면 돼. 그리고 저기 힘들어하는 친구들 외면하지 마. 너의 관심과 시간과 사랑을 필요로 할 거야.'
사회적 '레벨업'을 하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는 나에게 2019년 3월에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