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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불안

by 산보행


연애의 정의

연애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고, 서로 좋아하며, 사귄다는 의미이다. 생각해보면, 현실의 연애의 과정이 사전적 정의에 그대로 담겨 연애의 3가지 조건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1.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서

2. 서로 좋아하고

3. 사귄다.


1. 성적인 매력에 이끌린다는 것

성적인 매력에 이끌린다는 것은 육체적 관계에 의해 이끌린다는 의미이다. 누군가에게 연애의 감정으로 이끌린다면 처음엔 무의식적으로라도 누구나 성적인 목적으로 끌린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을 넘어 어린아이까지 가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등의 스킨십을 하는 상상을 한다.


이러한 감정은 사랑과는 다른 것이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어떠한 존재에 대해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은 꼭 남녀만이 아니라, 자식과 부모, 선생과 제자, 친구와 친구, 유명인과 팬, 사람과 반려동물의 관계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한번도 보지 못한 이를 귀중히 여기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성적인 매력에 이끌린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라도 대상과의 스킨십, 더 나아가 번식의 본능에 의해 끌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애의 시작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다. 아무리 이성적 판단에 의해 상대를 고른다고 해도, 연애의 시작의 첫 느낌으로 설레고 끌리는 마음만큼은 자신을 속일 수 없다.




2. 서로 좋아한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나 대상이 마음에 들 만큼 흡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애란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마음에 들고 모자람 없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때가 연애의 불안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 상대방이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거나

- 내가 상대방에게 만족하지 못하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만족하지 못할까봐. 나로는 부족할까봐. 혹은 내가 상대방에 대해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할까봐. 그게 불안한 것이다. 만족이란 모자람이 없다고 느끼는 것인데, 상대방이 감정적으로든, 객관적인 조건으로든 나로는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할까봐 불안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인 간의 서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서로 만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사람이 서로에게 완벽할 수만 있을까? 저마다 부족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을 채우거나, 상대방에게 기대치와 조건 등을 조금만 낮추어 달라고 설득하고 합의에 이르러야 연애를 지속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욕심에 불과하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것은 그 시점에서만큼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는 시점이 아니라 과정에 의해 지속된다. 서로 좋아하는, 서로에게 만족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위한 노력과 타협의 과정이 필요하다.


3. 사귀다

사귄다는 것은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다는 것을 의미하고, 친하다는 것은 정이 두텁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서로 가까이 지내며 정을 쌓아가고 신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자주 보는 것이 신뢰를 형성하는 것에 유리할 수 있으나, 어떤 이들은 자주 보아도 신뢰를 형성하지 못하며, 어떤 이들은 자주 보지 못하지만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며 연애를 지속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얼마만큼 정을 쌓고, 신뢰를 주는지이다.


이때의 신뢰란 무엇일까? 연애를 결혼의 이전 단계로 본다면, 혼인의 의무를 정의한 민법 826조를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민법 826조 1항과 이에 대한 판례에 따르면, 부부는 1. 동거의무 2. 부양의무 3. 협조의무 4. 성적 성실의무(정조의무)의 4가지 의무가 있다.


연애에 있어 대개는 동거와 부양의무를 고려하진 않을테니, 주로 3. 협조의무 4. 성적 성실의무(정조의무)가 문제될 것이다. 따라서 연애에 있어 신뢰란 이러한 두 가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상대방에게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 그러한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더라도, 미디어 혹은 주변 지인들로부터 형성된 이야기들로 인해 상대방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자신이 그러한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지 않더라도(그러면 안되겠지만..?), 상대방이 자신을 신뢰할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전자에 해당하여 다툼이 발생할 것이다. 이때 재고해야 하는 점은 신뢰가 감정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평소 행실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연애의 과정

종합하자면, 연애란 1. 서로에게 이끌려서 2. 서로 만족하고 3.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애의 정의를 연인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순차적인 과정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연애를 지속하기 위한 3가지 요건이라고 생각된다. 상기 3가지 이유 중 한가지 요건이라도 빠진다면 그러한 연애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연애는 1번의 성적으로 이끌린다는 요건만을 만족하고 그에 그치기도 하며, 어떤 연애는 1,2번 요건을 만족하나 여러 상황에 의해 신뢰를 형성하는 3번의 과정을 갖지 못하여 연애가 끝나기도 한다. 권태기를 느끼는 연인들은 오히려 성적으로 이끌리는 1번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헤어지기도 한다.


나와 주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대부분 2번 요건의 서로 만족한다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연애가 끝났던 것 같다. 서로 좋아한다 즉, 서로 만족하다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구에게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차이를 행동뿐만 아니라 도덕, 경제, 정치, 종교, 생활습관 등등 여러 생각과 습관들까지 서로 합의가능한 영역으로 일치시켜야 한다. 그 수 많은 영역에서 잘 맞고, 잘 맞춰왔더라도 어느 한 지점에서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하면 연애는 그대로 끝이 난다.


이렇게 상대방과 다양한 영역에서 합의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사랑인 것 같다. 연애의 시작은 그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후엔 그 사람을 너무 소중하다고 느끼고, 아끼게 되어, 자신의 기준을 낮추거나 상대방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평소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실제로 만나는 사람과의 괴리가 생겨도, 주변 이들이 아무리 만류해도,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 연애를 지속한다. 그 사람의 실제 행동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으니까. 아무리 우리집 강아지가 카페트에 똥을 싸고, 휴지곽을 갈갈이 찢어놔도 우리 가족이 뭐라하지 못하듯이.....


불안형의 연애

기질적으로 불안형에서 시작하여 회피형까지 발전해버린 나는, 주로 상대방이 나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연애가 마무리됐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연애를 시작했더라도 금방 헤어지게 됐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판단을 할 때 상대방의 말과 행동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판단 이전에, 내가 나로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더라도, 심지어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한다고 의사표시를 직접적으로 하더라도 이내 관계를 끊어내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상대방에게, 장기적으로는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다.


이러한 마음의 기저에는 다음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하는 것 같다.


1.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만족하지 않는) 마음

2.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 나를 사랑하는(아끼는) 마음


즉,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나보다는 덜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먼저 상처를 주고 연애를 끝내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1. 내가 나를 좋아하도록 노력하고, 2. 내가 나를 사랑하는 정도 이상으로 상대방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고 연애를 지속할 수 있다. 상대방을 위해, 나를 위해서도 그래야만 한다.


어느덧 서른에 접어들은 지금, 우당탕탕 지나온 연애들은 모두 접어두고 차분하게 다음의 연애를 위해 준비해야겠다.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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