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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과 불안

by 산보행

불안

-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어째서인지 요즘 나는 불안감을 자주 느낀다.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지금 느끼는 불안은 이전과는 꽤나 다른 느낌이다. 이전에 느끼던 불안은 주로 진로에 대한 불안이었으며 막연하게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내 상쇄되곤 했다.




하지만 요즘 느끼는 불안은 이전의 불안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요즘 느끼는 불안은 꽤나 구체적인 것이어서 오만가지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죽음에 대한 불안이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지인들의 죽음부터 스마트폰, 티비로 흘러나오는 각종 사건사고에 의한 죽음까지, 막연했던 불안감은 구체화되어 이내 내 머리를 잠식시키고 심장, 손끝, 발끝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차, 엘레베이터, 낯선 사람들 등 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생산되는 나의 죽음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곧바로 신체반응으로 이어진다. 내 몸 안의 내장기관들은 신진대사가 촉진되지만, 신체기관인 손과 발은 굳어 움직일 수 없는 모순된 몸덩어리가 된다.





이러한 불안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유치원에 다녔을 무렵, 부모님에게 죽음에 대해 물었을 때, 죽고 나면 무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답변을 듣고 나의 불안이 시작됐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자기 전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떠오르면 부모님 방문을 두드리고 같이 잠에 들곤 했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사후세계에 대한 고찰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혹자는 죽으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텐데 무엇이 두렵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난 어렸을 적부터 내가 나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 즉, 자아를 잃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아파도, 슬퍼도, 불행해도, '나'이고 싶다.




메멘토 모리

-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격언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할 수 있다.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삶의 시간이, 주변의 지인들이 영원하지 않고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다시금 자각하게 한다. 익숙하고 당연했던 것들이, 새삼 낯설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필멸자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필연적인 죽음을 두려워하며 불안에 떨며 유한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보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모든 자유를 뺏기고 목숨만을 겨우 연명하고 있던 주인공은 모든 것을 억압해도 삶에 대한 태도만큼은 우리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필멸자의 존재로서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레이스를 시작한 우리들은 죽음의 존재여부를 바꿀 수는 없을지언정(아마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우리의 자유에 맡겨진 것이다.


현대인들 특히, 한국인들은 어느정도의 패턴이 있고 예측가능한 삶 속에서 당연하게도 내일이 올 것처럼, 이러한 생활이 지속가능할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터무니없게도 하루하루 당장의 죽음에 불안에 떠는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입학해 3년 뒤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죽음이 찾아온다면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을 그만둘 것인가? 미루었던 행복을 찾아서 떠날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 죽음의 존재를 곁에 두고 다니는 지금, 눈 뜨는 아침과 눈을 감는 저녁까지 난 유한한 시간에 내가 선택한 활동을 집중해서 하면 그뿐이다.


죽음은 여전히 두렵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존재이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조건과 상황들이 명확히 보이고,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보인다.


1인칭이었던 시점이 3인칭으로 변하는 느낌이랄까..?


누구에게나 죽음은 곁에 있다는 것. 차갑게만 들리는 뉴스의 다른 이들의 이름이 내 주변, 혹은 나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것.



우리 모두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받아들이고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태도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불안하기만한 하루였지만, 마음도 한결 나아졌으니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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