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정리
오늘 학원 알바면접을 마치고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원장님은 주말 8시간반씩의 근무를 원하셨고, 난 주1일만 가능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원장님은 내 경력과 상황을 쭉 훑어보시고 학원면접은 이만하면 됐다고 하셨다. 이윽고 이력서를 내려놓으시더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고 하셨다. 이내 꺼낸 말씀의 내용은 매몰되어 살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것이 많다.
-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 다인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하면 일을 해야 보상이 나오는 구조 속에 매몰되어 살 수밖에 없다. -> 노후대비를 해야 하는 삶이다.
- 본인은 기획하는 사람이고, 여러 사업을 하고 있으며 학원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본인은 일하지 않아도 보상이 나오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 본인은 일을 하지 않으니 노후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세상엔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다.
- 본인이 무엇이 하고싶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아라. 정작 그러는 사람은 몇 안되고 대부분 매몰되어 살아갈 뿐이다.
약 1시간 동안 듣는 내내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고 화까지 나기 시작했다. 왜일까?
1. 면접을 명분으로 한 대화가 훈수로 이어져서.
2. 꼰대의 말처럼 느껴져서.
3. 나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말씀하셔서.
4. 반박할 수 없어서.
4가지 모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대화를 복기해봤을 때 4번이 가장 큰 이유라고 느껴졌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 아버지에 관한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30년 간 근무하시고 최근 정년퇴직하셨다. 최근에 아버지께서는 국민연금을 수령하기까지 약 4년 정도 남았는데 그전까지 알바도 구하기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원장님은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저씨였는데, 자신은 노후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있게 말씀하는 것이 아버지의 말씀과 대비되어 나에게 왠지모를 분노를 일게 했다.
그럼 나는 왜 화가 나는가?
아버지가 열심히 사시지 않았는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일들로 빚을 떠안았을때, 아버지는 퇴근 후 배달, 과외 등 투잡에서 쓰리잡까지 하시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대학 입학 후 거의 용돈 없이 식당, 카페, 상하차, 과외, 학원 등 안해본 알바가 없이 생활했으며, 대학은 대부분의 학기를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이후 나름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다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에 입학한 상태다. 돌이켜보면 이렇다할 공백없이 달려온 20대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원장님은 아버지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원장님은 아버지, 아니 우리에 대해 '매몰되어 사는 삶'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나와 아버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한 삶을 위해 매몰되어 살아왔는가? 그렇다. 현재도 매몰되어 살고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화를 낼 이유가 없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시점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원장님은 나에게 왜 저런 말을 했을까?
단순히 지나가는 면접자일 뿐이었을 것이다. 개중 내가 특이해보여서 그런 말씀을 하신것일까? 직장인 출신의 로스쿨생이 학원 알바를 하겠다는 것이 특이해보였을 수 있다.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전업 선생님들이었을테니까.
자신의 자식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대화 중 '자신이 물려주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말씀도 하셨으니까. 혹은 내가 안타까워서 그랬을 수 있다. 빼곡한 경력에 비해 알바자리에 지원하는 나의 상황이 초라해보였을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말을, 그렇게 바쁘고 소중한 시간을, 지나가는 학생일 뿐인 나에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진심으로 매몰되어 바쁘게만 살아가는 내가 이러한 삶을 버리고, 매몰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가길 바라신 걸까? 답답하게 이어가던 면접 속에 그냥 허심탄회하게 그런 말씀을 하시고 싶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 그가 한 말은 나에게 비수가 되어 내 머리와 가슴에 모두 꽂혔다. 메모장과 달력에 해야할 공부와 일정만 빼곡한 나는, 온통 그의 말들을 곱씹어 보며 사념에 빠지고, 무력함에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다.
좇다 vs 쫓다
무엇을 좇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게 쫓긴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리고 아버지는, 무엇을 좇으며 무엇에게 쫓기며 살아왔고, 살고있고, 살 것인가?
여기서 나는 무엇을 좇아야할까?
머리 속은 혼란스럽고 가슴은 얹힌 듯 불편하다. 누군가에게 토해내고 싶지만 이렇다할 누군가도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