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재 Aug 01. 2024

월산동 달뫼마을에 상상을 입히다(with 너의 이름은)


월산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광주 MBC 쪽을 향하다 보면 벽화로 옷을 입은 채 애드벌룬 가득 하늘로 날아오른 높은 계단을 만날 수 있다. 요즘은 찾기 힘든 구도심의 고층 계단. 그 밑자락에서 바라본 무수한 시간의 걸음들. 옛것에 대한 향수는 더욱 짙어만 간다.



월산동은 수박등에서 덕림산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 능선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월산(月山)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달뫼다. 덕림산이 달덩이처럼 둥글고 덕스러울 뿐 아니라 달맞이 하기 좋은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월산동은 70~80년대 주택가가 상당수 남아있다. 옛 풍경 너머로 펼쳐진 구불구불한 골목은 달팽이를 닮아 동(洞) 일부 지역을 지금도 달팽이 마을로 부르곤 한다. 정감 넘치는 도심 속 슬로시티인 셈이다.



2017년 11월 어느 날. 이 유서 깊고 복스러운 동네에 자리 잡은 회색빛 고층 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밝은 세상을 꿈꾸며 분주하게 상상의 나래를 입히고 있었다. KT&G 전남본부가 광주·전남지역 대학생들과 함께 '달뫼 마을 계단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을 이곳에서 펼친 것. KT&G 임직원과 회사가 함께 모은 사회공헌기금인 '상상펀드'가 후원금 역할을 담당했다. 이 프로젝트는 달팽이 마을에 알록달록한 벽화를 그려 쇠락해 가는 동네에 생기를 불어 넣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계단의 자태는 조금 남루해졌다. 하지만 여기저기 재개발 아파트 공사가 한참 이뤄지는 주변 상황에도 따스한 붓질의 온기만은 여전히 남아 찾는 이를 오롯이 반기고 있다.



내가 우연히 이 계단을 마주했을 때 떠오른 생각은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바로 한국과 일본 모두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장편영화 '너의 이름은' 속 계단 장면이다. 영화를 마무리 짓는 핵심 배경이자 실제 장소를 생생하게 작화에 담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간이다.



 '너의 이름은' 속 실제 계단은 시네마 현 운난시 신주쿠의 스가 신사 동쪽에 있다. 남녀 주인공인 타치바나 타키와 미야미즈 미츠하가 엔딩 부분에서 극적으로 만나 서로를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장소다. 그리움 가득 눈물을 흘리며 '너의 이름은!'을 외친 곳. 누군가는 영화의 감동을 따라 현해탄을 건너 성지 순례처럼 직접 찾아가 보는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내외 영화 속 계단을 모티브로 한 배경 중에는 가장 유명세를 치른 곳 중 하나일 것이다.



문득 달팽이 마을 계단을 우두커니 내려다보며 '너의 이름은' 속 영화 배경처럼 이곳에 또 다른 상상을 입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 아니면 만화의 애틋한 배경지로 이 계단을 활용해 보는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지자체와 주민들의 노력이 함께 한다면 제작자나 창작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인근에 위치해 무등산 조망과 야경으로 유명한 덕림사(德林寺)와 필문(Fill Moon) 카페를 연계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달팽이 마을 계단을 오른다. 가끔씩 그리움을 품고 찾아가는 길, 스치듯 돌아보며 자꾸만 누군가를 만날 것 같은 상념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거든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이거든 항상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먼 훗날 여기서 누군가 나를 찾는다면 정말로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린 이가 있었다고 이 계단이 전해주길 바란다. 홀로 내려오는 발걸음이라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나의 존재가 '너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불려지길 소원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 영화 리뷰]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