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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Oct 01. 2021

별처럼 아름다운 순간들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7]

 

 얼마 전부터 5년 정도 사용한 노트북의 전원이 잘 켜지지 않았다. 화면이 멈춰서 넘어가지 않는 증상들이 나타나 애간장을 태운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도 중요한 문서를 작성해 두고 몇 시간 동안 화면이 켜지지 않아 등골에 진땀이 흘렀다. 이러다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자료를 언제 날리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유료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선 현재 사용하는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들을 클라우드에 업로드했다. 그동안 써왔던 글이며 업무자료,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등 중요한 자료들을 모두 옮겨놓았다. 그리고 이 노트북을 사용하기 이전에 외장하드에 담아두었던 자료들까지 모두 클라우드에 옮기기로 했다. 소장해야 할 자료들을 모두 한 곳으로 통합함으로써 관리하기에도 수월하고 더 이상 기기 이상의 문제로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자료를 모아 놓고 보니 꽤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었던 것은 연도별로, 월별로 찍은 사진들을 자동으로 정렬하여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어머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스무 살 무렵의 나를 만나게 될 줄이야!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으로 돌아가 2021년의 나를 만나러 오기까지의 시간 여행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이제 갓 화장을 시작하고 한창 예쁘게 꾸미고 싶었던 스무 살의 나는 스스로가 참 별로라고 생각했다. 서툰 화장 솜씨에 세련되게 잘 꾸미고 예쁘게 치장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런데 이제 보니 어른들이 자주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겠다. 10대, 20대엔 꾸미지 않아도 순수하고 풋풋한 모습 그 자체로도 충분히 예쁘다는 것을. 곱게 화장하고 멋을 부리지 않아도 청춘의 싱그러움이 자연 조명을 만들어 비추는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그때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이제야 발견한다. 한참 앳된 모습의 나와 눈 맞춤을 하며 ‘너도 참 예뻐!’라고 뒤늦게나마 진심 어린 인사도 건네어본다.      


  사진 속에는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졸업, 기념일, 가족행사 등 보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 뿐만 아니라 크고 굶직한 내 삶의 변곡점이 되어준 순간들까지….

사진 속에 담긴 한 컷 한 컷의 장면들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때의 풍경, 분위기, 냄새까지도 살아 숨 쉬어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 깊이 그대로 전해졌다.     


마음이 힘들 때 산에서 많은 위로를 받곤 했는데 이른 새벽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산길을 수놓은 하얀 발자국, 상실의 아픔을 겪은 후 노을 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내 뒷모습, 혼자서 떠난 유럽 여행에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자며 이름 모를 외국인 친구와 장난기 넘치게 찍은 사진까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사진은 말하고 있었다. 내가 느낀 수많은 행복과 기쁨, 아픔과 슬픔까지 모든 걸 품고서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 여기의 나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결국 지나고 보면 모든 순간이 별처럼 빛나는 시간이었고 내 마음에 아로새긴 그날의 추억들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게 15년의 세월을 훔쳐봤다. 스물의 나를 지나 서른일곱의 나와 마주하기까지 긴 세월을 짧은 필름의 영화로 빠르게 압축해 돌려본 듯하다. 그 각본 속 주인공은 바로 ‘나’였고 그 영화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단 한 명의 관객인 ‘나’를 만족시키기에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대감에 젖어 벌써부터 설레어온다.      


  50대 중년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지금의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는 지천명을 지날 때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모습으로, 많은 것을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한 중년이고 싶다. 그때도 서른 중반의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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