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정 Oct 15. 2021

슬픔과 이별하는 방법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 칼럼 8]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늘 응원하는 동생이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는 얼굴 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도 잊지 않고 안부를 묻고 챙길 정도로 서로를 살뜰히 생각하는 사이다. 언제나 반갑기만 한 동생의 연락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만큼은 느낌이 달랐다. 역시,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부친의 부고 소식을 알리는 문자.      


지난 7월,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 확산에 대한 엄중함 때문에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했고, 장례식장 방문은 친족으로 제한되었다. 그녀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고 고인을 보내는 길에 직접 인사를 올리고 싶었지만 멀리서 마음으로나마 명복을 빌어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와의 이별을 경험하기엔 아직은 이른 20대 중반의 그녀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얼마나 힘이 들까. 그런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고 먹먹했다. 자연스럽게 기억의 저편에서 스무 살의 나를 건져 올렸다.      


  대학 입학을 며칠 앞둔 2월의 추운 겨울날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쓰러지셨다.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두어 달을 병원에서 지내시다가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그 당시의 나는 어땠을까.


사실 슬픔보다는 아버지의 부재가 믿기지 않았다. 이것이 진짜 현실인건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은 채로 몇 개월을 보낸 듯하다. 몇 달이 지난 후 꿈에서 만난 아버지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빠, 죽은 거 아니지? 진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라고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그렇게 수십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꿈이었단 걸 알게 되자 베개에 얼굴을 묻고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무의식 속에서는 내가 아직 아빠를 보내지 못했단 걸, 아빠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자각하게 된 날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뒤늦게 아빠를 잃은 내 안의 슬픔과 똑바로 직면했고, 그 슬픔을 떠나보내기까지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의 그 어떤 슬픔보다 가족과의 이별만큼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이 또 있을까. 특히 언제나 나를 든든하게 받쳐줄 거라고 믿었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이러한 상실의 아픔을 달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거대한 산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듯한 그 황망한 마음 앞에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도 겪어봤으니 네 마음을 알고 있다는 말도 쉽게 할 수가 없다. 슬픔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이기에 아무리 내가 같은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그 슬픔의 무게마저 같을 수 없을 테니.


그녀와 아버지 사이의 시간의 밀도와 애착 관계를 모르기에 무어라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어설픈 위로나 진부한 말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기에 단지 아파하는 너의 곁엔 항상 내가 있다는 것을,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뿐….


나 또한 당시 누군가의 어떠한 말 보다도 내 옆에서 나의 슬픔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존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러한 슬픔과 빨리 이별하는 방법이 있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한 특별한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아파하는 것 밖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하기에 슬픔이라는 감정은 빨리 떠나보내야 할 나쁜 감정이 아니라 이 시기에 느낄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그러니 내 슬픔을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내가 정말 괜찮아질 때까지.


지켜보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빨리 일상으로 회복하기를 바랄 테지만 살면서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어왔다 한들 가족과의 이별은 처음 맞는 고통이자 새로운 슬픔이지 않은가. 전적으로 이는 지금 이 슬픔을 겪고 있는 자의 몫이기에 나 자신이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아파한 후에야 자연스럽게 떠나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슬픔과 건강하게 이별하기 위해서는 이 슬픔을 외면하거나 부정해서도, 서둘러 없애려 해서도 안 된다. 내가 나의 감정을 충분히 보살펴주고 다독여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만이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지 않고 건강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많이 힘들고 혼란스러울 그녀가 기꺼이 아프고 기꺼이 슬퍼했으면 좋겠다.      


  몇 달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나는 담담하게 그녀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대신 그녀의 집으로 초대해달라고 했다. 별거 없는 어설픈 밥상이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하얀 쌀밥과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김치찌개, 그리고 계란말이와 진미채 볶음을 만들어 따뜻한 밥 한 끼 나누고 싶다. 소답게. 여느 때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별처럼 아름다운 순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