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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Jul 26. 2023

지, 운전자의 소양

지식의 쓰임, 지혜의 빛남

버스터 키튼의 영화 '제너럴'


 자동차관리법 제4장 
 제36조(자동차의 정비) 
 자동차사용자가 자동차를 정비하려는 경우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정비를 하여야 한다.
 제37조(점검 및 정비 명령 등) 
 ①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동차 소유자에게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점검ㆍ정비ㆍ검사 또는 원상복구를 명할 수 있다. 다만, 제2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원상복구 및 제43조 제1항 제4호에 따른 임시검사를, 제3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43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정기검사 또는 제43조의 2에 따른 종합검사를, 제4호 또는 제5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43조 제1항 제4호에 따른 임시검사를 각각 명하여야 한다. 
 1. 자동차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하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동차




 연료는 자동차가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불어넣습니다. 와이퍼, 백미러, 상향등은 뿌연 차창을 닦아주고, 후방을 볼 수 있게 하고, 어두운 도로에서도 운전대를 잡게 해 줍니다. 지(知)는 연료처럼 덕을 나아가게 하고, 지(智)는 도에 나아가는 것을 돕습니다. 지는 앎입니다. 앎이 있어야만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합니다. 마땅하고 못마땅한 일을 가려내고 실천하게 합니다. 지가 없다면 어질고 의로운 마음이 있더라도 감히 실천할 수 없습니다. 연료를 채우고 시야를 확보하는 일은 자동차에 탑재된 기능이라기보다는 운전자의 소양입니다. 인, 의, 예가 사람의 사회성이라면 지는 인간의 지성입니다. 사회성과 지성이 어우러져야만 지혜가 됩니다. 앎이 없다면 어질고 의롭더라도 슬기롭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는 지식을 얻게 합니다. 인, 의, 예와 함께 쓰인다면 지혜, 슬기가 됩니다. 강의 물이 범람하더라도 기름진 땅이 없다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외우기만 하고 쓸 줄을 모른다면 머리 안에서 썩히는 샘입니다. 높아서 오르기 두렵고, 멀어서 찾기 어렵다면 도와 아득하게 어긋납니다. 인의를 깨달아 예를 따라야만 도에 맞습니다. 지가 지나쳐서 삿된 길로 빠진다면 잔꾀만 늘고, 지가 모자라서 알지 못하면 어리석게 됩니다. 안다고 잘난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게 자랑도 아닙니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를 두텁게 해야 합니다. 지로써 도를 따른다면 내 차를 끔찍이 아끼는 차주의 노력처럼 마음을 기울여 덕을 가꿀 수 있습니다. 인의 힘이 닿는 테두리가 넓어지고, 의가 나아가는 쪽마다 도가 따르며, 하는 일마다 예에 맞습니다. 자동차 애호가의 노력에 힘입어 차가 최고의 성능을 내듯이 군자의 지는 큰덕을 빛나게 합니다.




위정 17, 

子曰 由아 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요 不知爲不知 是知也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由(子路)야. 자네에게 아는 것에 대해 말해주겠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일세.”

술이 27

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아 我無是也로라 多聞하여 擇其善者而從之하며 多見而識(지)之가 知之次也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치를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행동한 적이 있는가? 나는 그런 일이 없다. 많이 듣고서 그중에 선한 것을 가려서 따르며, 많이 보고서 기억해 두는 것이 아는 자의 다음은 될 수 있다.”


 지는 으스대기 쉽고 퍽 우쭐하게 합니다. 지식을 더할 나위 없이 쌓아서 전문가가 된다면 좋겠지만, 어중간하게 지식을 부풀려 겉멋만 든 엉터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군자는 메타인지(meta知)를 매우 잘합니다. 아는 걸 안다고 분명히 알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분명히 아는 앎이 메타인지입니다. 군자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뭇사람보다 더 알 수 있습니다. 내 앎을 정확히 알아야만 앎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지식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식 중 도덕을 돕는 정보를 많이 얻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값비싼 연료를 쓰고, 몇백짜리 와이퍼나 백미러를 단 자동차라도 운전자가 운전을 못한다면 들인 돈이 얼마든 의미 없습니다. 슬기롭게 알고 슬기로운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선진 11

季路問事鬼神한대 子曰 未能事人이면 焉能事鬼리오 敢問死하노이다 曰 未知生이면 焉知死리오

 季路(계로=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계로가 말하였다. “감히 죽음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 알겠는가?”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됩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삶이 먼저입니다. 군자에게는 쪼들리는 앎이 있고 느긋한 앎이 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살리고, 사람을 어떻게 잘 살도록 하냐가 먼저입니다. 죽은 뒤 걱정과 죽기 전 준비는 나중에 해도 됩니다. 어떻게 입고, 먹고, 자느냐 하는 문제에 힘써서 욕구를 채울 수도 있지만,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을지에 힘쓰는 게 먼저입니다. 의식주의 욕구는 살 수 있을 만큼만 풀어야 하고 더 나가면 너무한 게 되지만, 인의예지의 도덕은 너무할 게 없습니다. 머리를 써서 몸을 먼저 편하게 하고 싶기보다는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합니다.




위령공 7,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이면 失人이요 不可與言而與之言이면 失言이니 知(智)者는 不失人하며 亦不失言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 함께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요,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함께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 않으며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

요왈 3

子曰... 不知言 無以知人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군자는 슬기롭기에 '척하면 척'입니다. 중용에 맞게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언행을 보면 함께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바로 압니다. 몸에 익은 버릇과 입에 익은 말버릇을 보면 어질고 의로운지가 보입니다. 대화하면서 내가 먼저 말할 수 있도록 하고, 편한 주제를 꺼내주는 상대의 배려를 알지 못한다면 좋은 사람을 놓치게 됩니다. 매너 없이 말을 끓고, 자기 기분에 맞추고, 상스러운 말을 쓰는 사람과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습니다. 인의가 있고 예를 갖추더라도 지가 없다면 사람과 말을 잃을 수 있습니다. 




헌 문 39, 

子曰 賢者는 辟(避)世하고 其次는 辟地하고 其次는 辟色하고 其次는 辟言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賢者는 무도한 세상을 피하고, 그다음은 어지러운 나라를 피하고, 그다음은 군주의 얼굴빛을 보고 피하고, 그다음은 군주의 말을 들어보고서 피한다.”

공야장 20

子曰 甯武子邦有道則知(智)하고 邦無道則愚하니 其知는 可及也어니와 其愚는 不可及也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衛나라 대부 甯武子는 나라에 道가 있을 때는 지혜롭게 행동하였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우직하게 행동하였으니, 그의 지혜는 따라갈 수 있으나 그의 우직함은 따라갈 수 없다.”


 지는 부도덕하게 쓰이기 쉽습니다. 역사를 두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나라를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폭군 곁에는 언제나 머리 좋은 간신이 있었습니다. 자유와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를 따라다니던 정권의 나팔수 가운데 지식인이 아닌 사람이 드뭅니다. 유명한 스승 밑에서 배운 학자나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가 세상을 배신하기도 합니다. 지는 도덕을 거스르기 쉽습니다. 돈과 자리를 얻고 싶은 욕구를 건드려 일어나게 합니다. 욕구가 점점 커져 야욕이 되면서부터 지는 슬기가 아니라 잔꾀가 됩니다. 하이빔은 어두운 밤에 자동차의 앞길을 밝혀주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맞은편에서 오는 다른 운전자의 시야를 막아 큰 사고를 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군자는 내 지가 그르고 삿된 사람과 무리에 쓰일 수도 있기에, 도가 있는 곳에서는 슬기롭게 하고 도가 없는 곳에서는 어리석은 척합니다. 깜깜하더라도 웬만하면 전조등만 켜고 달립니다. 지는 도덕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바다 밑바닥으로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이루 하 32

 所惡於智者 爲其鑿也 如智者...

지혜로운 자를 미워하는 까닭은 끝없이 파고들기(鑿) 하기 때문이니...

 위령공 2

 子曰 賜也아 女以予爲多學而識(지)之者與아? 對曰 然하이다 非與잇가? 曰 非也라 予는 一以貫之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야, 자네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자라고 여기는가?” 자공子貢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나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고 있네(一以貫之).”


 밑도 끝도 없으면 착(鑿)입니다. 포클레인(Poclain, 기계 삽으로 땅을 파내는 차) 몰고 와서 하루종일 땅을 팝니다. 파고, 파고, 또 판다고 뭐가 나오나요? *지식은 원래 파도파도 계속 나오는 흙처럼 한계가 없습니다. 정보화시대에 이르러 지식의 양은 걷잡을 수 없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생겨납니다. 자동차의 연료바에 한계가 있듯이 사람도 평생 알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군자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어 봅니다. 서울에서 운전하나, 부산에서 운전하나, 광주에서 운전하나 방법이 다를 리가 없습니다. 군자는 서울에서 운전을 배워 일본, 중국, 미국에서도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운전의 개념과 원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앎은 좋아해도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밑도 끝도 없어지면 나중에 가서는 옆동네를 갈 적에도 운전을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지구에 있는 흙은 양이 정해져 있지만 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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