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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Jul 26. 2023

교학, 주유소와 카센터(2)

살기 위한 공부와 살리기 위한 교학

영화 '미녀 삼총사 : 맥시멈 스피드'




위정 15, 

15. 子曰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1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위령공 30, 

30. 子曰 吾嘗終日不食하며 終夜不寢하여 以思호니 無益이라 不如學也로라

3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서 생각하였으나 유익함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못하였다.”

양화 8

8. 子曰 由也 女聞六言六蔽矣乎...

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자네는 육안六言과 육폐六蔽에 대해 들었는가?...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폐단이 있게 된다."


 마음이 있어서 생각이 생기고, 생각이 있어야 말이나 행동으로 옮겨갑니다. 마음은 덕이고 말과 행동은 도입니다. 덕과 도 사이를 잇는 다리가 생각이라면, 교학은 다리가 끊어지거나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키는 못이나 밧줄입니다. 교학은 생각을 살찌우고 윤이 나도록 합니다. 교학이 없다면 삿되고 그릇된 생각이 피어나 덕을 무도와 비도로 이어지게 합니다. 군자는 교학의 못과 밧줄로 생각을 잘 고정합니다. 정신줄을 잘 붙잡고 있습니다. 어진 마음이 호구 잡히지 않게, 슬기로움이 우쭐해지지 않게, 미더움이 쪼잔해지지 않게, 올곧음이 까발리는 짓이 안 되게, 씩씩함이 어리석어지지 않게, 굳센 뜻이 억지가 되지 않게 합니다. 언제라도 사람이 지나다닌다면 다리가 흔들려 고정시킨 못과 밧줄이 뽑히거나 느슨해질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군자는 교학을 가까이하고 몇 번이든 다시 박고 묶습니다.




양화 3

3. 子曰 唯上知(智)與下愚는 不移니라

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인 상지上智와 가장 어리석은 자인 하우下愚는 변화되지 않는다.”


 교학은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에 배워서 바뀌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만, 단 두가지 무리만이 바뀌지 않습니다. 상지(上智)와 하우(下愚)입니다. 상지는 '가장 슬기로운 사람', 하우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배울게 없는 사람'과 '가르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배울게 없는 사람은 성인군자보다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미 덕을 알고 도에 나아가 힘이 닿는대로 실천을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빠짐없이 선하고 악에 보태지 않으니 가르칠 게 없습니다. 또 '가르칠 게 없는 사람'은 소인보다도 변변찮은 사람입니다. 덕을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고 부덕하고 무도한 짓에 삶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배우려는 뜻이 없고 억지를 꺾을 수 없어서 배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불행하게도, 아니면 다행히도 여러분은 상지도 아니고 하우도 아닙니다. 상지와 하지란 얼토당토 않게 우리와 멉니다. "어지간히 똑똑하지 않고서는 배워야하고, 어지간히 멍청하지 않고서는 바뀔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고칠 점이 있고 배울 점이 있기에 나날이 배우고 나아질 수 있기에 교학이 있습니다.




공야장 26, 

26. 子曰 已矣乎라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로라

2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아직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속으로 自責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술이 30, 

... 子曰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다행이다. 진실로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아는구나!”

자한 23, 

23. 子曰 法語之言은 能無從乎아 改之爲貴니라 巽與之言은 能無說(열)乎아 繹之爲貴니라 說而不繹하며 從而不改면 吾末如之何也已矣니라

2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르게 해주는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실제로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완곡하게 해주는 말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말의 은미한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뻐하기만 하고 그 말의 은미한 뜻을 찾지 못하며, 따르기만 하고 잘못을 실제로 고치지 못하면 그런 사람은 어찌할 수가 없다.”

위령공 20

20. 子曰 君子는 求諸己요 小人은 求諸人이니라

2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반성反省하여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한소리 들어버리면 토리지거나 삐치고 싶은게 사람 마음입니다. 비록 맞는 말이라도 듣고 싶지 않아집니다. 우리와 달리 군자는 피드백을 받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내 잘못을 집어준다면 "오히려 좋아", "알려줘서 고마워"라며 기뻐합니다. 한때의 부끄러움이 언젠가는 나를 욕보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내가 찾지 못한 허물을 대신 찾아준 상대를 고맙게 여겨야합니다. 


 교학은 글러먹은 생각을 덕으로 고치고, 삿된 말과 행동을 도로 고칩니다. 백미러가 비틀어지거나 깨졌을 때, 딱히 운전하기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방치하다가는 위험한 순간에 더큰사고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엔진에서 가끔 이상한 소리가 난다든지, 핸들이 잘 안 돌아간다던지, 문고리가 뻑뻑해서 세게 밀어야 열린다든지 하는 신호를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남이 나에게 말해주는 신호에서 눈을 돌리고 멋대로 굴다가는 꼭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술이 19, 

19. 子曰 我非生而知之者라 好古敏以求之者也로라

1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면서부터 道를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사람이다.”

위정 11

11. 子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잊지 않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교학은 자동차에 연료를 넣는 것과 비슷합니다. 연료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먼 옛날 지구를 지배하고 호령하던 공룡, 매머드가 죽고 퇴적되면 오랜 세월에 걸쳐 열과 압력을 받아 석유가 됩니다. 석유를 증류하면 자동차가 도로에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연료로 거듭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덕교학은 공자라는 공룡과 맹자라는 매머드가 만든 석유입니다. 공자와 맹자의 뜻을 이어나가는 수많은 군자가 그들의 위로 쌓이고 쌓여 열과 압력을 가한 끝에 지금의 교학이 완성된 셈입니다. 공자와 맹자가 없었다면, 그들의 뜻을 잇는 사람이 없이 유교가 단절되었다면 어떻게 지금 도덕이 있겠습니까? 공자와 맹자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석가모니, 무함마드 등 세상을 떠받치는 도덕을 배우기 위해서는 성서, 불경, 쿠란 등의 고전에서 배워야 합니다. 옛것이 아니고서야 어디에서 도덕을 배우겠습니까?




술이 7, 

7. 子曰 自行束脩以上은 吾未嘗無誨焉이로라

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脯 한 묶음 이상을 禮物로 가지고 와서 배우기를 청한 자에게는 내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위령공 38, 

38. 子曰 有敎면 無類니라

3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침에는 부류가 없다.”

자한 7, 

7. 子曰 吾有知乎哉아 無知也로라 有鄙夫問於我호되 空空如也라도 我叩其兩端而竭焉하노라

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다만 비천한 사람이 나에게 물으면 그가 아무리 무식하다 하더라도 나는 내 밑천까지 다 말해준다.”

자로 9, 

9. 子適衛하실새 冉有僕이러니 子曰 庶矣哉라 冉有曰 旣庶矣어든 又何加焉이리 잇고 曰 富之니라 曰 旣富矣어든 又何加焉이리 잇고 曰 敎之니라

9. 공자께서 위나라에 가실 때 염유冉有가 수레를 몰았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많구나!” 염유가 여쭈었다. “이미 백성들이 많아진 뒤에는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부유富裕하게 해야 하네.” “이미 부유해진 뒤에는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가르쳐야 하네.”

술이 8

8. 子曰 不憤이어든 不啓하며 不悱(비)어든 不發호되 擧一隅에 不以三隅反이어든 則不復(부)也니라

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스스로 알려고 애쓰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고, 표현하지 못해 답답해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으며, 한 귀퉁이를 들어 보였을 때 배우는 자가 이것으로 남은 세 귀퉁이를 유추하여 反證하지 못하면 더 이상 가르쳐주지 않는다.”


 교학에는 종류가 없고, 부류가 없습니다. 교학은 도덕만을 가르치고 모든 사람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학은 공평(平), 평등(平等)하지 않습니다. 형평(平)됩니다. 배우지 못해서 분해하는 사람과 딱히 배우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쌀쌀한 사람도 똑같이 군자가 될 수 있다면 공평, 평등이지 형평이 아닙니다. 의지와 노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가르치되 설렁설렁 하는둥 마는둥 한다면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지 않더라도 배우고 싶어 안달난 사람은 마땅히 가르쳐야하고,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온힘을 다하려 들지 않는다면 가르치지 않아야 합니다. 차별을 두지 않는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부류가 생기게 됩니다. 때문에 공평과 평등은 형평에 견주면 치우쳐 보입니다.




태백 17

17. 子曰 學如不及이요 猶恐失之니라

1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움은 따라가지 못할 듯이 부지런히 해야 하고, 얻은 것을 잃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자장 6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자하가 말했다. “널리 배우고, 뜻을 두텁게 하고, 간절하게 묻고, 가깝게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교학에는 뼈저리게 바라야 합니다. 마치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얻지 못할 듯, 이미 얻었더라도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것처럼 지켜야 합니다. 도덕은 입고, 먹고, 자는 일보다 다그칠 일입니다. 운동하기 귀찮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지만, 오늘부터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운동하지 않으면 그다음날 바로 죽게 된다고 하면 어떨까요? 오늘 당장 헬스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사람으로서의 삶과 죽음은 도덕에 달려있습니다. 도덕을 배우지 않으면 살아도 죽은 사람이며, 도덕을 배웠다면 죽어도 산 사람입니다. 욕구만 채우간간히 사는 삶이라면 금수와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죽었습니다.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는 삶은 죽더라도 사람들 마음속에 줄곧 살아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삶과 죽음은 도덕에 달려있습니다. 이런데 사람이 교학에 매달리지 않으며 다그치지 않을 수 있나요?




태백 12, 

子曰 三年學에 不至於穀을 不易得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3년을 배우고도 녹봉에 뜻을 두지 않는 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헌문 25, 

子曰 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을 한다.”


 나를 위한 학문(爲己之學, 위기지학)은 도덕을 위한 교학이며 남을 위한 학문(爲人之學, 위인지학)은 욕구를 위한 공부입니다. 위기지학은 내가 가지고 있는 덕을 키우고 어질게, 의롭게 하며 예를 갖추고 앎을 넓히지만, 위인지학은 그저 누구 및으로 들어가 돈과 자리를 얻기 위한 도구로 쓰입니다. 


 위인지학은 남을 위한 학문이라고 해도 남을 위하지 않습니다. 욕구를 위한 공부는 단지 사장님이 나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붙어있을 뿐, 월급이 밀리면 바로 그만두고 다른 회사를 찾습니다. 말만 남을 위하지 속으로는 나를 위합니다. 위기지학은 나를 위한 학문이라고 해도 진짜 나만을 위하지 않습니다. 도덕을 위한 교학은 부모님과 스승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집안이 기울고 벌이가 시원찮더라도 떠나지 않습니다. 오랜 친구를 배신하지 않고, 받은 만큼 갚습니다. 오로지 사람을 위합니다. 


 맞습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위인지학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위기지학을 버려서도 안 됩니다. 먹고 살기 위한 공부도 해야하지만 사람답게 살아야합니다. 남을 위해서만 산다면 굶어 죽겠지만 내 잇속만 채우려고 벌기만 하면 곁에 남는 사람이 없을겁니다. 교학은 도덕의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욕구를 위한 공부를 교학으로 덧씌우고, 도덕을 위한 교학을 거짓으로 부르짖는다면 교학은 교학이 아니게됩니다.




자장 7, 

子夏曰 百工 居肆 以成其事 君子學 以致其道

자하가 말하였다. “온갖 공인들은 공장에 있으면서 자기 일을 이루고, 군자는 배워서 그 도를 이룬다.”

헌문 24, 

子曰 君子 上達 小人 下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은 아래로 통달한다.”


 공장에서 고철덩어리가 어엿한 자동차로 거듭나는 과정은 마치 보잘것없던 사람이 배워서 군자로 거듭나는 모습 같습니다. 자동차는 뼈대가 잡히고, 조립되고, 코팅되고, 기계부품을 얹고, 검수에 들어가 제조가 완성됩니다. 따로따로는 쓸데없던 부품들이 공정을 거쳐 자동차가 되듯, 사람도 소인에서부터 배워 군자까지 다다릅니다. 우리나라 울산에 있는 자동차 공장의 자동차들이 각지로 팔려가 전세계 도로에서 달리는 것처럼, 교학으로 키운 내 지는 쭉쭉 뻗어나갑니다. 인이 우리나라의 복지를 돕고, 의가 아시아의 평화를 이루며, 예는 세계 윤리가 됩니다. 우리끼리의 소소한 필부(匹夫, 한 사람)의 도는 어디를 가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천하의 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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