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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체스 Aug 05. 2021

뉴욕에서 커피 한 잔, 안 어때?

뉴욕이 커피의 도시가 아닌 이유. 그럼에도 한 잔?




'우동 먹으러 일본에 갈까?'라든가, '카오산로드의 40바트(=1,400원) 짜리 팟타이 먹으러 태국 가야겠어' 같은 말을 농담 삼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 적어도 나한테는 농담처럼 들리는데, 누군가에겐 농담이 아니기도 하단 생각을 하면 식은땀이 난다. ('스시 먹고 싶어서 어제 일본 갔다 왔다'라는 말을 내게 불쑥 던진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그만큼 그 음식이 먹고 싶다, 현지에서 먹으면 더 맛있다는 얘기를 과장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역을 상징하는 음식이 있다는 의미기도 하고, 반대로 그 음식을 상징하는 지역도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영국 = 피시앤칩스, 상하이=샤오룽바오, 이탈리아 = 피자, 스페인 안달루시아 = 타파스, 뭐 이런 식.


이 녹색 철제 의자와 탁자를 나는 너무 사랑한다. 이것을 보면 타임스퀘어와 브라이언트 파크가 바로 떠오른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뉴욕은 어떨까? 뉴욕을 상징하는 음식? 그 음식이라면 단연 뉴욕이지, 하는. 스테이크? 길거리 핫도그? 도넛? 피자? 뾰족한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커피는 어떨까? 그럴싸한가?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도회적인 도시, 도시를 상징하는 도시이고, 유행하는 모든 것들의 실재적 고향이다. 따라서 카페 문화가 발달했을 거라는 생각은 당연한 수순. 스타벅스 컵을 들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뉴요커들의 익숙한 이미지도 한몫을 한다. 그리고 뉴욕은 베이글의 도시이니까 커피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베이글에 콜라를 마시는 것,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에스프레소 한 잔 때리러 뉴욕이나 갈까?'라는 표현도 나올 법 하지만, 이건 일단 틀려먹었다. 농담으로도 못 쓴다. 왜냐면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의 커피니까. 그리고 '에스프레소 한 잔 때리러 밀라노나 갈까?'라고 하면 좀 더 정확한 용례가 되겠다. 에스프레소는 약 200년 전 밀라노에서 개발되었다.


한국인은 이제 '커피의 민족', '카페의 민족'이 되어버려서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그 지역의 '관광지'를 찾아보고, 그리고 끼니를 해결한 '식당'을 알아보고, 그리고 '카페'를 리스트업 한다. 아니, 아예 '카페' 자체를 '관광지'의 범주 안에 집어넣고 '카페를 포함한 관광지'를 찾아놓고, 그 동선 상에서 '식당'을 알아보기도 한다. 아니라고? 당신이 만약 최근 몇 년 사이에 제주도를 간 적이 있다면, 제주 여행 준비를 하면서 '카페 어디 가지?' 찾아본 적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나? 단연코 아니라고 믿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커피의 민족', '카페의 민족'이니까. 그런 고로 뉴욕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카페를 갈까 환상을 품는 것이 당연하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뉴욕은 카페의 도시가 아니다. 기대를 접어두는 게 좋다.



미국에서 커피는 동부보다는 서부가 더 발달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 뉴욕에 갈 때마다 만족스러운 카페를 못 찾은 개인적 경험도 있고, '뉴욕에는 갈 만한 카페 없어요'라는 뉴욕 지인의 이야기도 내 주장에 큰 힘을 실어주지만, 좀 더 객관적인 근거도 있다. 미국에는 3대 커피라 불리는 세 개의 카페 브랜드가 있다. 바로 블루보틀, 스텀프타운, 인텔리젠시아. 당연히 스페셜티 커피의 영역이다. 스타벅스는?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스타벅스는 베이커리계의 파리바게뜨 같은 지위에 있다고나 할까, 그러니 잠시 스벅은 잊자. (SPC 관계자분이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기분 나빠하실까 걱정됩니다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지금 우리는 스페셜티 커피 얘기를 하고 있다구요)


우선 '인텔리젠시아'는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 동부와 서부 커피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시카고는 중부니까 일단 동부:서부의 스코어는 0:0. '스텀프타운'은 미국에서 가장 힙하다는 도시, 그리고 킨포크 그 자체라 불리는 포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시애틀 바로 아래 오레건주에 있다. 1:0. 블루보틀은 실리콘밸리의 너드들에게 커피를 공급하며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는 만큼 샌프란시스코 어딘가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절반쯤 맞다. 샌프란시스코의 샌프란시스코만 맞은편 도시인 오클랜드다. 스코어는 2:0. 여기에 우리의 파리바게뜨군을, 스타벅스까지 참전시키면 3:0으로 서부의 승리. (아시다시피 스벅은 시애틀에 적을 두고 있다) 게다가 블루보틀과 함께 실리콘밸리 커피 3대장에 들어가는 필즈커피와 피츠커피가 서쪽 덕아웃에서 대기하며 노려보고 있다. 이쯤 되면 콜드 게임만 선언되지 않았지 참패를 면했다고 보기 어렵다.


샌프란시스코 '필즈 커피'의 아이스드 민트 모히또 라떼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에 맛난 커피가 없다고? 리얼 참 트루?


재즈와 뮤지컬의 도시, 빈티지 구제의류샵과 중고책방을 누비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버리는 도시, 스타벅스가 건물마다 자리한 도시. 우리의 뉴욕이가... 커피가 이 따위라고.. 흑흑... 그렇다고 걱정은 마시라. '커피라면 뉴욕이죠'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뉴욕에도 좋은 카페들이 그득하다. 다만 대형 브랜드로 성장하지 않을 뿐이다. 특히 최근 5~6년 사이에 힙한 카페가 우후죽순 생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은 내가 그전에 그런 카페들을 가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드래프트 라떼라는 시그너처 음료를 가지고 있는 '라 콜롬브'. 내게 꼬르따도를 알려준 윌리엄스버그의 카페 '데보시옹', 추운 크리스마스 오전에 거의 유일하게 문을 열어 따뜻한 온기를 나눠준(커피를 팔았단 얘깁니다) '띵크커피', 의자는 불편하고 멋도 뭣도 없었지만 커피맛 하나만큼은 끝내줬던 '컬쳐 에스프레소', 내게는 모두 뉴욕과 커피를 연결시켜주는 좋은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2년에 한 번꼴로 뉴욕 여행을 떠났는데 코로나 덕택에 뉴욕과 한참 동안 멀어졌다. 다음 방문 때는 좀 더 성의 있게 카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을 마음 한가득 애정으로 품으려면 커피도 어떤 식으로든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트 패킹 디스트릭트의 '라 콜롬브'


요즘 뉴욕의 가장 힙합 동네는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다. 카페 '데보시옹'


센트럴파크의 남쪽 경계인 웨스트 59번가와 콜롬버스 서클이 내려다보이는 아시에떼


p.s. 그러면 커피는 어디가 가장 맛있나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법 한데, 당연히 이탈리아다. 아니, 이탈리아가 아니라면 어디란 말입니까. 맛있다는 카페를 찾아갈 필요도 없이 허름한 가게 아무 데나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바에 기댄 채 원샷으로 마시고 1유로짜리 동전 하나를 던져주고 나올 때의 쾌감은, 아, 참말이지 상상만 해도 혀가 알싸하게 아려온다. 이런 경험을 뉴욕에서 시도했다간 진짜 '쓴'맛본다고요.



뉴욕에서 지점이 비교적 많은 H&H 베이글. 오른쪽은 Baz 베이글.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둘다 맛있다. 물론 베이글이.


#뉴욕 #커피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인텔리젠시아 #꼬르따도 #에스프레소 #베이글 #라콜롬브 #스텀프타운



알그몰그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 우리는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와 라떼가 가장 친숙하다. 그러는 가운데 다양(하다고 하지만 구분하기 쉽지 않은)한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롱 블랙'(long black). 에스프레소를 멈추지 않고 계속 추출하면 양 많은 연한 에스프레소 혹은 좀 더 찌인한 아메리카가 되는데 이게 길게(오래) 추출했다고 해서 롱 블랙이다. 호주 출신. 요즘 커피 전문점에서 많이 보이는 플랫 화이트(flat white)도 호주 출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드니야말로 뉴욕의 윗등급의 커피 도시가 아닌가 싶다. 폴 바셋도 호주의 바리스타지 않나. 그리고 꼬르따도(cortado)는 스페인 출신인데,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1:1로 섞어 진한 라떼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페인에서 중남미로 그리고 다시 북미로 점차 퍼지더니 우리나라에서도 꼬르따도를 메뉴에 내놓는 곳이 있다.


- 베이글(Bagel): 우리에게는 뉴욕에서 아침 식사로 먹는 빵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등장한 김에. 2천 년 전부터 유대인들의 아침식사로 먹었던 빵이고, 유대인들 문화가 뉴욕에 퍼지면서 뉴욕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심지어 풀턴수산시장에서 새벽부터 일하는 한인 분들의 아침식사도 베이글과 커피였다) 딱 하나만 알면 된다. 베이글은 일단 한번 삶은 다음에 오븐에 굽는다. '삶는다.’ 이것이 베이글이 마냥 부풀어 오른 밀도 낮은 빵이 아니라 특유의 질깃질깃한 식감을 가지는 쫀쫀한 빵이 된 이유다.


- 이탈리아 스타벅스: 에스프레소 원조국으로서 이탈리아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러니까 '스타벅스 따위 흥!'이라는 마음이 이탈리아인들 마음에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스타벅스 1호점이 이대 앞에서 1999년에 오픈했는데, 이탈리아 스타벅스 1호점은 그보다 19년이나 늦은, 비교적 최근인 2018년의 일이다. '우리는 스타벅스 커피 따위 마시지 않아요. 미 디스삐아체 아메리카노~'라며 스타벅스는 오픈하자 망할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웬걸, 대박이 터졌다. 비슷한 사례가 아르헨티나에 있는데, 아르헨티나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고, 마떼라는 차를 즐겨 마신다. 늘 컵과 스테인리스 빨대를 가지고 다니며 마떼를 쪽쪽 빨아 마신다. 그것도 한 잔을 여럿이서 나눠서 쪽쪽 빨아 마신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스타벅스가 아르헨티나에 진출했지만, 쫄딱 망하고 철수했고, 이후 다시 공략 후 성공했단 후문이 있다.


- 마지막으로 필즈커피 광고.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가 사랑한다는 필즈커피. 혹시나 SF 지역 여행을 한다면 필즈커피의 민트 모히또 라떼를 꼭 드셔 보세요. 이거 마시고 귀국해서 민트 사다가 빻고 찧고 하면서 그 맛을 내보려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성공했다면, 카페를 창업했을지도 몰라요


맨해튼의 힙 성지가 된 에이스호텔. 그 1층에 자리잡은 스텀프타운 카페


카페를 열심히 찾아다니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뉴욕에서는 계속 커피를 마시게 됩니다


첼시의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뉴욕을 방문한다면 커피 호불호를 불문하고 꼭 방문하세요. 관광지로서도 의미 있습니다. 굉장해요 굉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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