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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용 Sancho Jan 15. 2018

5개월 간, 세 가지 고민

언어적, (국가) 문화적, (회사) 문화적 차이로 인한 고민 이야기

'세 가지 소원'.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이승환 옹의 노래 중 하나다. 네덜란드로의 이주/이직 자체로 내 '소원' 중 몇 가지를 성취하였지만, 한국과의 먼 거리만큼 '차이'로 인해 몇 달간 고생도 좀 했다. 그 차이는 바로 언어적 차이, 국가/민족이 다름에 따른 문화적 차이, 그리고 이직으로 인한 회사 문화적 차이이다. 블로그 글을 쓰면서 '유럽의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멋진 Product manager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몇 개월 동안 '좌충우돌'했던 게 현실이었다. 


벌써 입사 후 5개월이 지났다. 5개월 간 나름 몇 가지 고생을 겪으면서 문제가 뭘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 그 고민들이 끝나진 않았지만, 혹시 해외로 이민/이직 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짧지만 내 경험담을 적어본다. 5개월 밖에 안된 상황에서 이 글을 적는 게 맞을까? (또) 고민하다가, 이 상황에서 내 마음을 적어보는 것이 독자 및 내 자신을 위해서 좋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고민이 있으면 일단 내 생각과 마음을 쭉 적어보고, 그 안에서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action plan을 세우는 스타일이다. 이 글을 어쩌면 나를 위한 글일 수도 있다.


* 사실 이 글에서 "고생"이라고 했지만 귀국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적은 아직 없었다. 다만 차이로 인해 혼자 좀 기분 나빠하고, 혼자 고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언어 > 국가/문화 > 회사/문화


첫 2개월은 '언어'로 인한 고생 좀 했다. 첫 블로그 글인 '영어, 오랜 숙제'에 좀 더 상세하게 적어놨는데, 처음에는 다양한 영어 억양이 잘 안 들렸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이 잘 열리지 않았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직원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억양이 정말 다양하다. 우리 팀만 해도 이집트, 헝가리, 러시아, 마케도니아, 아르헨티나, 스페인 그리고 한국 이렇게 7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우리 팀 외에 같이 업무하는 친구들까지 세면 아마 스무개 나라는 쉽게 넘을 것 같다. 상황이 이러하니, 처음부터 잘 들리면 그게 이상할 것 같다.


그 다음 2개월 정도는 '국가/민족이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또 다른 고생을 좀 했다. 이 얘기는 이 전에 쓴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고 극복하려면?' 글에 상세히 나와 있다. 요약하자면, 국가/민족이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문화적' 차이가 분명 존재하고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업무적인 관계 뿐 아니라 성과 측면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연말이 지났다. 연말을 보내고 4분기(Product owner로서 '내 팀'과 일한 공식적인 첫 분기) 회고를 하고, 2018년 새 계획을 세우면서 예상치 않게 세 번째 작은 슬럼프가 다가왔다. 정말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좀 당황했다. 그건 바로 '회사의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생긴 고민이었다.




사내 문화 차이


위에 '슬럼프'라는 단어를 처음 썼다. 이제 이직 5개월 차이고 아직도 적응하고 있는 상황에 '슬럼프'라는 표현이 맞지 않는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슬럼프'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어느 순간 '재미가 없네'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성과를 낸 것도 아니고 1, 2년 지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걸 느꼈기 때문이기에 '당황했다'. 이직 뿐 아니라 이민도 함께 하는 것이고, 이에 현 회사에서 최소 5년은 일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기에 더욱 당황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걸 느꼈다는 건 fact 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내 생각과 마음을 분석했다. 


벌써 내가 '재미 없다'고 느낀 건 아마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1.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2. 이전 직장에 비해 내가 맡은 Product의 범위가 작다. 

3. 작고 빠르게 테스트하고 A/B test로 그 결과를 결정하는 문화. 과학적/통계적이지만 너무 작게만 움직이다보니 재미가 없다.

4. 직장에 '친구'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 없다.


위 4가지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 


첫째, 내 자신에게 이전 직장에서의 퍼포먼스 및 속도를 기대했던 것 같다. 솔직히 이전 직장에서도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야 "이제 일 좀 하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좀 급했던 것 같다. 이곳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큰 이벤트 중 하나가 '이직'이라고 하던데, 이직과 함께 이민도 함께 했기에 스트레스는 더 컸고, 큰 스트레스만큼 성과에 대한 부담더 컸던 것 같다.


둘째, 이직한 회사의 조직 규모가 훨씬 컸기에 한 Product owner가 맡은 제품의 범위가 작았다. 물론 현 직장의 매출이 이전 직장보다 크긴 하지만, Product팀의 갯수가 이전보다 5배 정도는 많은 것 같다. 그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조단위 매출의 e-commerce 업체로서 기본 서비스 구조가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한 Product팀이 맡은 부분이 5배 작다는 것이다. 내가 책임지는 부분이 작아지는 게 마음 편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작아지는 것이고, 이는 'less 재미'로 이어진다. 이 작은 조직 관련된 부분은 아래 세 번째 이유와도 이어질 수 있다.


세번째 항목은 사실 내가 아직 적응을 덜한 부분일 수도 있다. 현 직장은 수많은 A/B test(쉽게 설명하자면, 웹사이트의 현재 버전을 50% 고객에게 보여주고, 새로 수정한 버전을 나머지 50% 고객에게 보여준 후, 반응이 좋은 버전을 선택해 100% 고객에게 보여주는 것)를 통해 웹사이트를 지속 개선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보통 이 테스트를 1~2주 정도 수행하고 통계적으로 우월한 버전을 선택하여 전체 웹사이트에 적용하게 되는데, 아무리 '통계적으로' 옳다고 해도 길게 봤을 때 맞는 방향인지는 확실치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작은 변화'를 지속 적용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문화 때문인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크게 움직이는 모습은 좀 찾기 힘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항목은 내 고민에서 가장 비중이 적은 부분이긴 한데, 뭔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회사에 아직 없는 부분도 less 재미에 한 몫 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커피 한 잔 하기보단 일하느라 바빴고, 5시~6시만 되면 퇴근하느라 교류가 좀 적었던 건 사실이다.(근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일찍 집에 간다) 그럼에도 한국적인 정이나 끈끈함을 좀 기대했던 것 같고, 이와 전혀 다른 환경으로 인해 '아쉬움'이 좀 있는 것 같다.


위에 언급했던 4가지 중 첫째, 넷째 항목은 사실 개인적인 부분이고, '조직 문화' 관련된 부분은 둘째, 셋째 항목이라 할 수 있겠다.



서두에서 얘기했지만 사실 Product owner(이 직무에 대해 궁금하시면 이 글 확인)로서 아직 비즈니스 성과를 내지도 못한 상황에서 어찌보면 '불만'만 얘기하는 것 같아, 아직도 좀 부끄럽다. 하지만 이는 해외 이직 뿐 아니라 국내 이직 시에도 마찬가지로 겪을 수 있는 부분이고, 나도 추후에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할 경우 고려해 봐야 할 사항들인 것 같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현 직장이 '글로벌 업체'이고, 해외에서 영어로 일한다는 부분이 멋있게만 보였다. 위에서 얘기한 세번째 항목(A/B test 위주 문화)도 한없이 긍정적으로 보였으나, 실제 일을 하다보니 부정적인 부분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IT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위의 둘째/셋째 항목은 공감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 내용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이것만 알아둬도 좋을 것 같다. 모든 회사는 고유의 조직문화가 있고, 이직 시에 이 조직문화의 Gap이 크다면 그만큼 연착륙하기 쉽지 않다는 것.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각오해야 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사실 이런 부분은 입사해서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모든 이직의 뒤에는 적응을 위한 고민과 노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회사만 옮긴 게 아니고, 완전히 다른 문화적 배경의 나라(유럽/네덜란드)로 이민도 함께 한 경우이기 때문에 그 간극이 정말 큰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와도 이 간극으로 인한 충격은 클 것이다. 다만 이 간극을 빠르게 좁혀 나가며 적응하는 '적응력/학습력'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업무를 하는 중에 있어 밀리지 않을 '자신감' 그리고 '자존감'이 정말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신뢰


5개월 간 여러가지 이유로 인한 여러가지 고민이 있었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여지껏 주요한 세 가지 고민만 얘기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다른 고민거리들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위 세 가지에 비해서는 비교적 minor한 고민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직장 생활에 한해서)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글은 어찌보면 내가 내 자신에게 쓰는 글일 수도 있다. 현 상황과 생각을 정리한 후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조직문화 관련된 부분(둘째, 셋째 이유)은 사실 받아들여 가는 게 답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섣불리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려 한다. 그리고 성과 관련된 부분도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지 않을까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내 성과가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자신을 믿고 하나하나 돌파해 간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내 자신을 믿는' 것이다. 


1) 어느 충격에도 바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2) 늘 그랬듯이 빨리 배울 것이라는,  3) 그리고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을 리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런 능력들이 내게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 "괜찮아, 늘 잘 해 왔잖아. 외국으로 이직했는데 처음부터 달리긴 힘들지. 천천히 가자. 시간이 지나면 빛이 날거야" 라는 믿음. 이런 믿음을 가지고 2018년을 시작해보려 한다. 



* 내 글들이 늘 그랬지만, 이번 글은 더더욱 나 자신의 일기 같은 글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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