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있는 기업에 취업을 했을 때 주위에서 많이 궁금해했던 게 내 영어 구사 능력이었다. 특히 개발자가 아닌 개발팀의 비즈니스 담당자(Product Owner)로 취업을 했기에 더욱 그랬을 것 같다. 이에 영어이야기 첫 글을 써보고자 한다.
영어 실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객관적인 ‘점수’로만 얘기해보면 아래와 같다.
TOEIC 955, TOEFL 90, IELTS 7.5~8.0, OPIC Advanced
입사를 위해, 승진을 위해,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유학도 잠시 고민/추진해보고, 캐나다 이민도 준비해보면서 다양한 영어 시험을 경험해본 것 같다. 어렸을 적(만 6살)에 미국에서 2년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솔직히 중학교부터 영어 ‘시험’들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점수’는 잘 나왔던 것 같다.
다만 이건 ‘점수’ 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내 영어 실력에 만족하지 않는다. 특히 업무에 적응하고 있는 지금 매일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사실이다. 일상 회화는 무리없이 할 수 있으나 뉘앙스를 충분히 전달하진 못하고, 회사 미팅 중에 의견을 내세우거나 보고를 할 때 논리 정연하게 얘기하는 능력은 많이 떨어진다. 한국에서도 회사에서 영어로 일할 일들이 종종 있었으나 요즘처럼 하루 종일 영어로 일하는 경우는 (해외 출장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현재 내 뇌가 영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주위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처음에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잠깐 미국에서 살기는 했었으나 귀국 후 15년간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그 2년의 기간 동안 영어 듣기와 발음에 대한 감은 몸이 흡수를 했기에, 그 ‘빨’로 중/고등학교 내내 버텼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열심히 놀다가 제대를 하니, 내게 남은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항상 ‘난 미국에서 살았어’라고 생각하며 콧대가 높았는데, 15년이 지난 후에 영어 ‘회화’를 해보려니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소심한 성격은 아니라 외국인 친구를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었으나, ‘말하기’ 능력에 있어서 나는 내가 항상 생각했던/내가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제대 후 대학 3, 4 학년 내내 노트에 모르는 단어를 정리하고, 영어 신문(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을 종종 읽고, 매주말에 신촌/이대에 있는 영어 토론 모임에 출석하며 영어를 말할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전공이 공학인지라 영어에 파묻혀 살진 않았지만, 영어가 재밌었고, 이에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영어를 읽거나/말하곤 했다. 그 덕분인지 따로 공부를 안했음에도 대학 입학 때 600점 중반이었던 TOEIC 점수가 4학년 때는 890점까지 올라갔었던 것 같다.
그러다 대기업(휴대폰 제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으나, 적성에 맞지 않는 개발직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며 비즈니스 쪽으로의 기회를 찾게 되었고, 다행히 여러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인도에 개발연구소를 세울 때 초기 셋팅을 하러 가서 몇 달간 인도인 엔지니어들 교육을 시키기도 했고, 첫 직장의 마지막 2년은 중남미 해외영업부서에서 일을 하며 거래처 미팅/내부 법인 트레이닝에서 제품 발표도 많이 하고, 여러 중남미 동료들과 직접 대화/컨퍼런스 콜/이메일 등을 통해 영어로 커뮤니케이션 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Toastmasters라는 영어 토론 모임에서 다년간 운영진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미팅을 이끄는 법을 체득할 수 있었고, 업무와 다른 다른 주제의 발표도 많이 해 볼 수 있었다. 이 즈음에 주위에서 잘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서인지 자신감과 함께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던 때이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두번째 직장은 특이하게 Director급 이상, 특히 임원급 대부분이 미국인이거나 미국에서 일하던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보고’ 시에는 영어로 미팅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사내 문서도 되도록 영어로 작성을 했다. 특히 이메일이 아닌 장문의 문서를 영어로 작성하는 경험을 해봤던 게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의 문서를 참조하면서 어떻게 글을 써야 할 지, 내가 부족한 게 뭔지 계속 배워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lean startup, Product management 관련된 개념, 일하는 법, 용어 등을 배울 수 있었고, 현재의 직장으로 이직을 할 수 있는 bridge가 되어 주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히 공부해라. 개인적으로 ‘하루 30분 공부’ 이런 건 못한다. 하지만 틈틈이 듣고, 읽고, 외우고 하면 일년 후에 조금은 나아진 자신을 볼 수 있다. (영어 신문 타이틀만 훑기, 미드 영어자막으로 보기, 좀 오래 걸려도 책 원서로 읽기 등)
기회를 만들어라. 못한다고 두렵다고 미루면 평생 못한다. 영어를 좀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부서로 이동하고, 모임에 참여하고/이끌고, 남 앞에서 발표도 해보는 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틀'을 좀 더 넓혀 나가야 한다.
부처님 말씀 같으나, 나는 위 두 가지를 15년 넘게 실천해오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단어장에 모르는 단어/표현을 정리하는 것은 계속 했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 애기 재우고 새벽에 미드를 보면서도 옆에 단어장에 좋은 표현을 적는다. (공부 때문에 보는 미드는 아니다)
솔직히 네덜란드에 와서 일하는 것 두려웠고, 지금도 자신감이 충만하진 않다. 하지만 항상 어려운 상황에 던져지게 되어도 언젠간 적응하고 잘 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래서 너무 조급해 하진 않으려 한다.
요즘은 회사에서 내가 느끼는 영어 스트레스의 원인을 분석해보고 있다. 몇 가지가 있다.
1. 여러 국가에서 모인 사람들이랑 일하기에 각각 표현이 다르고 특히 억양이 굉장히 다르다. 그래서 알아듣는 것부터 어렵다.
2.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미팅은 데이터 분석, data science 관련된 내용들이다. 내가 아직 이 회사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도 있지만, data analysis/science 관련 용어들도 잘 catch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 일반 대화를 하다가도 중간에 단어나 표현을 찾기 위해 잠시 멈추거나 문장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원어민이 아니니 당연할 수 있지만 그래도 자존심 상한다.
4.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원하는 뉘앙스로 다 전달하지 못한다. (위 3번이랑 겹친다)
우선 1번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2번을 위해서는 사내 Training이나 MOOC(Udemy, Coursera 등)에서 데이터 분석, 통계, 데이터 과학 등에 대한 영어 강좌를 틈틈히 들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3, 4번의 개선을 위해서는 ‘자주 쓰는 동사구'(phrasal verb?)나 표현 등을 매주 몇 개씩 외우면서 매일 대화에서 최대한 사용해보면서 체화해보려 한다. 솔직히 하루 해보고 흐지부지 되었지만,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유용한 표현을 암기하고 일상 대화에서 사용하다보면 나중에는 구사 가능한 표현이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또한 위 3, 4번의 개선을 위해 Youtube에서 많은 동영상을 찾아봤는데, ‘원어민처럼 말하기’ 위해서 여러 동영상에서 추천하는 방법은 ‘혼자서 계속 영어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라’이다. ‘아 오늘 아침에 미팅이 하나 있지’ 라는 출근길 생각도 ‘Ah, I have a meeting with Robbert at 10am today’ 와 같이 영어로 하라는 얘기다. 그리고 영/영 사전을 사용하라는 조언도 많다. 그래서 2주 전 정도부턴 회사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을 때 영/영 사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영어로 생각하는 것’은 아직 훈련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지만, 매일 영어 문서를 읽고 쓰고 영어로 미팅하고 대화하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위에서 얘기한 방법들을 몇 달간 사용해 볼 것이다. 훈련의 결과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영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적어지지 않을까 한다. 반년 후에 다시 내 상태를 살펴보고 블로그에 업데이트를 해보겠다.
영어. 욕심 생기면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