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형 은행원 May 17. 2019

예금, 주식, 펀드 그위에 퇴직연금

개인투자자에게 퇴직연금이 좋은 이유 

앞의 글에서는 퇴직연금이 개인투자자에게 좋은 이유를 두 가지 이야기하였다. 첫 번째는 강제적인 저축과 인출의 제한으로 인해 그 어떤 탕진아라고 할지라도 자동으로 저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세금이연과 낮은 세율 및 넉넉한 공제액 제공으로 인해 다른 그 어떠한 재테크 수단보다 더 세금 공학적으로 효율적이라는 부분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앞서 두 가지 제시한 이유 이외에 다른 두 가지 이유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넛지라는 책을 보면 미국 퇴직연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대다수의 은퇴자들이 자신들이 응당 퇴직연금 재원으로 투자해야 하는 주식 비중보다 훨씬 낮은 비중을 퇴직연금 계좌 내에서 보유한다는 내용이다. 넛지의 저자는 이런 현상을 개선시키기 위해 주식에 대한 적절한 투자비중을 최초 퇴직연금 가입시점의 디폴트 값으로 설정한 사례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대다수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좀 더 적절한 주식비중을 퇴직연금 내에서 유지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디폴트 값과 상관없이 주식의 비중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의사결정과 행동이라는 귀찮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들 대부분은 아마도 전문가와 회사에서 알아서 사려 깊게 결정했을 그 디폴트 값을 따른다. 이것이 넛지라는 책에 첫 번째로 등장한 사례다(첫 번째 맞나?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하다. 아마 맞을 것이다.)


이 사례는 퇴직연금 투자에는 적절한 주식 투자 비중이 존재하면 통상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왜 그럴까? 그 첫 번째 이유는 금융시장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모종의 이유들로 말미암아 지구의 금융시장은 높은 위험을 감수한 자에게는 높은 기대수익을 제공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이 물리법칙처럼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분산 투자하고, 장기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100% 예금 적금 죽순이들에 비해 (아마도)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주식에 투자하는 비중을 높임으로써 기대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퇴직연금이 가진 속성이다. 아무리 위험자산의 기대수익이 높다고 할지라도 재무적인 내구도가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손실을 버틸 수 없고, 장기투자를 할 수 없고, 대부분의 경우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에 성공하지도 못한다. 대학교 때 허세란 허세는 다 떨면서 주식과 PER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를 하던 형아들 대부분 주식 투자에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최소한의 기초 체력(재력)이 없이는 위험자산에 투자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한 가지 모순이 발생한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돈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돈이 없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산군에 투자할 수 없다. 태산처럼 거대한 주택담보 대출이 있는가? 자녀 유학비로 매년 2천만 원씩 송금을 보내며 매년 돈 한 푼 저축을 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주식을 하면 안 된다. 다만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퇴직연금이다. 이런 사람들조차 퇴직연금에 들어있는 재원을 통해서는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퇴직연금에 들어있는 돈은 그 소유주가 아무리 손실 감당 능력이 0에 수렴한다고 할지라도 퇴직연금 재원은 전혀 별개의 개체로서 꽤나 강력한 손실 내구도를 가지기 때문이다. 우선 퇴직연금의 투자기간은 통상 은퇴시점까지로 매우 길다.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40년이 될 수도 있다. 투자기간을 길게 가질 수 있는 자금일수록 손실에 대한 내구성은 강해진다. 게다가 퇴직연금의 돈은 손실이 나든 수익이 나든 대부분의 경우 꺼낼 수 없는 돈이다. 스마트폰으로 퇴직연금의 현재 가치를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그 돈을 꺼내거나 쓸 수 없는 돈이라는 뜻이다. 이런 돈에서 손실이 났을 때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지금 당장 꺼내서 쓸 수 있는 주식거래 대금에서 발생한 손실과는 분명 다르다. 남의 돈 같고, 그냥 숫자 놀음 같다.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퇴직연금에 들어있는 돈은 그 운용자의 히스테리적 감정에 놀아나지 않고 꽤나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주식이라는 자산군에 투자될 수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분산 투자되며, 제대로 투자될 수만 있다면 퇴직연금의 재원으로 투자된 주식이라는 자산군은 넉넉한 수익률로 보답할 것이다.


애석한 것은 퇴직연금을 통해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90%에 가까운 사람들이 퇴직연금에 들어있는 재원으로 예금에 몰빵 투자를 하고 있다(2% vs 10%… 한국 퇴직연금의 굴욕, 매일경제 2017.07.05). 이렇게 강력하고, 오래가고, 위험 내구성 강한 재원을 예금에 투자하는 것은 마치 포르셰로 모내기를 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아니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 마치 자해행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퇴직연금은 부동산과 예금 중독에 빠져있는 한국의 투자자들이 일생에 단 한번 주식에 제대로 투자해볼 수 있는 기회의 창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부동산과 예금은 그 구조상 그 변화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세상의 변화를 벤치마크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투자는 주식뿐이다. 재무적으로 다른 재원이 없어서 주식에 투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퇴직연금을 통해서 주식이라는 자산군을 경험은 해봐야 한다. 이 경험이 없으면 그 누가 금융과 투자에 대해 아무리 올바른 소리를 하고 설득을 하려고 해도 개똥 같은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다. 귀와 눈을 가리고 아무것도 기댈 것 없이 저 격렬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퇴직연금 재원이 제대로 투자되지 못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복잡하다는 것이다. 은행 창구에서 퇴직연금은 기피업종에 속한다. 퇴직연금을 적립해주고, 세금 관련 업무를 처리해주고, 퇴직자 퇴직연금을 지급해주고 이런 모든 업무들은 복잡하고, 어렵고, 무엇보다 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사 이 업무를 잘해보려고 해도 퇴직연금에 대해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보다시피 - 나는 퇴직연금에 대해 자세한 디테일을 모두 날리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6개가 넘는 포스팅이 소요되었다. 아마 2~3개는 더 필요할 것이고 이 정도로도 불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창구에 오는 손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전달해서 판매하라고? 그 시간에 밖에 나가서 급여이체랑 신용대출, 기업대출 섭외를 하기에도 부족하다. 


두 번째는 퇴직연금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조금은 변칙적인 형태인 DB가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DB의 경우 자산운용과 그 손익에 대한 책임이 고용주에게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무심하다. 하지만 설사 DB 가입자라고 할지라도 IRP라는 퇴직연금계의 총아가 남아있다. 퇴직연금을 이해했고,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IRP라는 제도를 통해 독자적인 은퇴자금 운영이 가능하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퇴직연금을 조금 더 제대로 활용하기를 바란다. 앞서 말했듯 퇴직연금이 대부분의 직장인이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의 창이며, 격변하는 미래에 스스로의 재산을 동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며, 조금이라도 더 풍족한 노후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퇴직연금이 개인투자자에게 좋은 4가지 이유 중에 3가지를 이야기했다. 마지막 이유는 간단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퇴직금 수급 보장이다. 퇴직금과 퇴직연금은 다르다. 퇴직금은 노동자가 퇴직할 때 퇴직금을 주겠다는 기업의 구두계약 비슷한 것이다. 퇴직금을 지급할 재원을 달리 적립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 도산을 했을 때 노동자들은 소중한 직장이 날아가버릴 뿐만 아니라 퇴직금까지 날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퇴직금 제도는 일종의 구두계약이다.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웨딩피치 마법봉과 비슷한 것이어서 예쁘고 근사하지만 연쇄살인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는 없다. 도산한 기업의 노동자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공장을 점유하고 농성을 하는 것은 1~2달 체납된 월급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몇십 년 동안 일해서 누적된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할 퇴직금이 날아가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퇴직연금의 경우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재원은 노동자 개인의 계좌에 적립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기업이 도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퇴직금을 떼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퇴직연금이 개인투자자에게 이로운 네 가지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 글에서는 퇴직연금의 종류  DB, DC와 궁극의 재테크 상품 개인 IRP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구독과 라이킷이 힘이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