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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May 01. 2019

예금과 주식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그 많던 GDP 성장률은 누가 다 먹었을까?

앞서서 왜 주식이 채권보다 더 높은 기대이익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했었다(금융이론 참조). 현실에서 과연 이런 금융이론들은 대체로 작동을 하는 것일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주식과 채권의 역사적 수익률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구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책은 아마도 와튼스쿨의 제레미 시걸 교수의 '주식에 장기투자하라/ 이레미디어/ 이건 역(2015)' 일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주식과 장기 국채, 단기 국채, 금, 미국 달러의 수익률을 비교한다. 예를 들어 1802년에 1달러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이것을 각각의 투자 자산에 투자하였을때 장기 투자수익률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비교해 보면 결과는 주식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다. 주식으로 $704,997을 실질가치를 벌어들이는 동안 현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0.05의 실질가치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인플레이션과 주식의 성장성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비단 미국에서만 통용되는 사례가 아니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동일한 현상이 발견된다.


제레미 시걸제레미 시걸 교수의 '주식에 장기투자하라 / 이레미디어/ 이건 역(2015)' 중 발췌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알고 싶다면 낙관론자의 승리라는 책을 찾아서 읽어보자. 혹은 Credit Suisse Global Investment Returns Year Book 2018을 찾아서보면 좀더 최근 자료를 상세하게 볼 수 있다. 아래는 주식과 장단기 채권을 비교한 수익률이다. 사례로 보여진 모든 선진국에서 주식의 투자수익률이 장단기 채권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Credit Suisse Global Investment Returns Year Book 2018


좋았어! 우리는 견고하게 작용하는 금융이론이 존재하고 그것이 대체로 많은 나라와 시대에서 작동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이론이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공신력 있는 금융기관과 대학교 교수가 데이터를 통해 그것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뭐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통장에 돈이 들어있다면 그것을 들고 가서 펀드나 HTS를 통해서 주식에 투자하면 된다. 아마 잉여현금흐름이 있는 사람이 인내심을 가지고 30년이나 40년정도 투자를 한다면 꽤나 괜찮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다. 한국은 조금 다르다. 한국이 1900~2003년까지 만들어낸 성장은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처럼 이례적인 국가에서 만들어진 주식의 수익률 또한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어마무시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KOSPI가 3,000도 찍지못하는 지금의 현실을 보면 무언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찝찝한 마음에 나는 한국의 주식시장 수익률을 1990년부터 최근까지 비교해서 분석을 해보았다. 흠.. 한국은 역시 이례적이며 예외적인 국가인가? 28년이라는 충분히 긴 시계열에서 조차 예금의 수익률이 주식의 수익률을 앞서고 있었다. 주식의 배당수익까지 싹싹 긁어 모아 비교해도 KOSPI는 예금보다 수익률이 낮다. KOSPI가 가진 저 변동성을 생각하면 이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다.

자료 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원천자료 활용 / 예금의 과거 데이터 부재로 인해 예금 수익률 산출시 1990~1995까지는 산업은행 1년물 채권 금리를 활용하여 산출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도대체 그 많던 GDP 성장은 누가 먹은 것일까? 사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꽤 단순하다. 1997년 이전의 한국 금융시장은 어떤 시스템이라고 불릴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1990년부터 2018년까지의 28개년의 수익률을 다시 10개년의 투자기간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이다. 즉 1990~2000, 1991~2001, 1992~2002... 이런 식으로 분리를 해나가면 10년에 걸친 총 19개의 수익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자료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원천자료 활용/ 예금의 과거 데이터 부재로 인해 예금 수익률 산출 시 1990~1995까지는 산업은행 1년 물 채권 금리를 활용하여 산출


1997년 한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시점을 기점으로 하여 무언가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상 1996년부터 KOSPI에 투자를 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가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97년 이전과 이후의 한국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첫번째로 금융산업의 작동원리 자체가 달랐다. 나는 지금도 종종 은퇴한 은행원들이 1997을 이야기하는 푸념 비슷한 것을 듣곤 한다. 그때는 참 좋았다고. 룸살롱 한방이면 자본잠식 상태의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거나, 은행의 심사역들이 기업의 공장이나 창고, 해외 사무소 같은 것들에 방문도 한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무상태표에 묻어있는 회계사의 도장만 믿고 대출을 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출을 한번 쏘면 대출을 받은 기업은 일종의 마일리지- 리베이트를 은행원들에게 주곤 했다는 것이다.


분식회계는 불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경영기술로 평가받았다. 사람들은 "세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는 이유만으로 1,000%가 넘는 부채비율을 가진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사곤 했다. 은행들도 이런 기업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출을 해주곤 했다. 그리고 깡그리 전멸했다. 조한제상서라는 단어가 있다. 90년대 가장 잘 나가던 은행들의 서열이다. 조흥은행, 한일은행, 제일은행, 상업은행, 서울은행이다. 이들 중 현재까지 존재하는 은행은 하나도 없다. 이런 위험한 대출을 하는 은행들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들먹거리면서 높은 예금금리를 제안할 수 있었다. 그리고 IMF라는 혜성이 하나 떨어지자 숨 한번 쉬지 못하고 전멸했다. 이런 시절에 예금금리와 주식시장 수익률이 역전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두번째로 금융시장의 참여자의 윤리의식이다. 얼마 전 한 선배가 업체에서 보았던 신기한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회사 사장과 만나서 수출입거래나 대출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회사에 투자한 주주 몇 명이 배당을 하지 않는다고 항의 방문한 것이다. 이들은 상당한 지분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회사에 배당을 강제할 만큼은 아니었다. 사장과 그 가족들이 가진 지분율이 50%를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회사에 방문한 훌리건들이 배당을 하지 않는다고 온갖 상소리를 지껄였지만 사장은 단호하게 외쳤다. "꺼져. 너희 같은 놈들에게 줄 배당은 1원도 없어."라고. 그렇다. 그는 대한의 남아이자 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배당을 하지 않는 기업의 수익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론적으로 배당을 하지 않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현금을 쌓아두거나 다른 곳에 투자하여 더 성장하는 일 밖에 없다. 그런데 그 기업이 속한 산업군 금형은 오래전에 성장이 멈춘 산업이며 경쟁 또한 치열했다. 주주들이 배당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한의 남아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법보다 강한 피라는 것이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 명의의 기업을 만들어서 모든 수익성 높은 외주작업을 몰아주었다. 이런 기업의 주식 가치는 모든 금융이론을 초월하여 궁극적으로 0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이 지금도 존재한다. 1900년도에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기업이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는 부의 상당량이 기업을 통제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흘러간 것이다.


그러므로 1997년 이전에 한국의 예금 수익률이 주식의 수익률을 앞섰던 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에는 윤리의식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자본시장 규제 장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IMF가 한국에 입힌 많은 상흔에도 불구하고 - 그들이 어떻게든 한국에 강제하고 싶었던 것은 글로벌 기준의 도입이었다. 자유로운 자금의 이동과 세계 자본시장과 1:1로 대응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구조 변혁이었다. 이것이 잘되었는지는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시장이 그때보다 정화되었는가? 혹은 정화되고 있는가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외인 자본의 유입과 자유로운 언론, 강화된 규제에 노출된 까탈스러운 금융기관들은 분명 여기에 많은 기여를 해왔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 대한항공의 조양호 대표이사가 연임에 추대되지 못한 것은 분명 이런 변화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때 미국의 주식시장도 한국의 1990년대만큼이나 엉망진창이었던 순간이 있었다. 미국도 일본도 다른 많은 국가들도 그랬다. 예를 들어 미국의 1970년대 기업문화와 투자산업이 어떠했는지 알고 싶다면 브라인언 버로가 쓴 '문 앞의 야만인들-RJR 내 비스코의 몰락'이라는 책을 꼭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해보고 싶다. 그야말로 썩어빠진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진, 탐욕스런 투자산업의 민낯을 생생하게 표현한 걸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런 금융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분명 효과가 있었다. S&P지수가 팽창한 만큼 그것을 규제하고 감독하고 정화하는 시스템도 함께 진화했다.


한국도 그러하다. 한국의 수익률 역전 현상은 1997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금융산업은 규모만큼이나 질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 하려한다. 앞에 나열된 모든 데이터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금융시장은 주주를 배신할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국가의 GDP 성장률과 주식투자 수익률은 사실 별 상관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국면을 극복하고 결국 안정화되고 주주친화적인 금융시장을 구축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주식에 투자하되 신흥국에 몰빵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 따위는 가볍게 쌩까고 글로벌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한국 시장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중국이건, 인도건, 베트남이건, 러시아건 절대 몰빵 투자하지 말 것, 엄마 말씀처럼 골고루 먹어야 잘 크는 법이니까. 미국도, 영국도, 유럽도, 일본도, 그리고 한국도 모두 모두 고루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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