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수술
고3 피곤하면 쌍꺼풀이 생겼고 쌍꺼풀이 있는 내 눈은 꽤 예뻐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스레 쌍꺼풀 수술을 했다. 그때 당시 친구들도 많이 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예뻐지는 줄 알았다. 동네 역 근처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날짜를 잡았는데, 다른 곳에서 쌍꺼풀 수술을 한 친구가 그곳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 말리는 친구의 말에 찝찝해 예약한 곳을 취소하고 친구가 수술한 곳 00동에 있는 성형외과 상담을 받았다. 그때 당시 상담 해준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기 전까지 뭔가 불안한 느낌이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의사는 나를 환자가 아니라 나를 돈으로 봤던 거 같다. 그때 당시는 몰랐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촉(느낌)이 꽤 중요하다.
그 촉이 맞았던걸까 한쪽 쌍꺼풀이 잘못되어 부작용이 나를 괴롭혔다. 한쪽 눈 부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았고 일상생활을 할 때 뭔가 불편하고 심지어 두통이 오곤 했다.
그때 당시 쌍꺼풀 수술을 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잘되어 나처럼 고통을 호소한 친구는 없었다. 쌍꺼풀 부작용으로 수술했던 성형외과를 찾았지만 그 의사가 보기엔 문제없다며 그런 식으로 말했던 거 같다(쌍꺼풀 재수술은 아무래도 정교함을 요하는 수술이라, 이곳에서 안 해준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 병원에서 재수술이 안 된다고 하니,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나 싶어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냈다.
3년인가 4년 뒤에 쌍꺼풀 재수술을 마음먹고 서울에 쌍꺼풀 재수술로 유명한 곳은 다 찾아다녔던 거 같다.
그런데 하나같이 내 상태가 애매해서 재수술을 못 한다고 말했다(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컸지만 남들이 보기엔 나쁘지 않은 정도였던 거 같다). 재수술을 간절히 원했지만 재수술로 유명한 병원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의사는 없었고, 평생을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하나'하고 약간의(?) 절망을 하며 집과 가까운 역에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신이 나를 도우신걸 까, 그때 버스 하나가 지나갔고 버스 배너에 00동에 있는 럭0성형외과라고 적혀있었다. 특별한 광고는 아니었고 그냥 위치랑 이름만 홍보하는 성형외과였는데
‘그래, 마지막으로 저기 가보자’라며 그곳으로 이끌렸다.
마침 그때가 성형 비수기라 바로 상담할 수 있었고 인상 좋은 아저씨 의사는 내 말을 잘 들어주더니,
"재수술할 수 있다, 내가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며
나를 다독이듯이 말씀하셨다(이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나에겐 감격이었다).
다 안된다고 했는데 유일하게 '된다고, 해주겠다'라고 말한 곳이라 마지막 희망인 양 나는 그곳에서 재수술을 날짜를 잡고 재수술을 했다. 다행히 그곳에서 재수술이 잘 되어 부기도 금방 빠지고 나를 괴롭히던 두통도 없어지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까지 그렇게 3~4년을 돌고 돌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아니 평범한 일상을 못 찾을 뻔했는데, 평범한 일상을 찾아준 그 은인인 의사분께 너무 감사했다.
이 경험으로 20대 시절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평범하게 산다는 게 당연하지 않음을 알았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사는 게 내 간절한 소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