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를 매우 사랑했고 지금도 아빠를 매우 사랑한다. 내 아버지니까.
아버지는 언제나 내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깨지는 사건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학원을 마치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별생각 없이 우리 아파트로 들어가는데 그때 누군가 내 가슴을 만지고 달아났다. 그 순간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욕을 하며 소리쳤고, 나와 비슷한 또래 남자애였던 거 같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 아빠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곤 ‘뭐 그런 거 가지고 호들갑이냐’라는 식으로 말을 하셨다. 나는 당연히 아빠가 ‘어떤 녀석이 우리 딸을 건드렸어’ 이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 추행(?) 당한 것도 놀랐는데, 아빠의 반응이 나는 좀 충격이었던 거 같다. 친오빠에게 말을 했더니 오빠가 대신 화를 내주었던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거 같다.
이후 아빠에게 두 번째로 상처받은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집을 나가고 싶었고 한동안 아빠를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내 운명이었으니. 나는 지금은 이 사건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원망하지는 않는다. 내가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라고 여긴다.
23살 이 시기에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방황했고, 집안 환경도 어려움이 닥친 시기였다. 그러다 내가 결정적으로 문제가 일어난 시기는 25살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정신적인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잘만 만나지만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연 사이가 너무 허무했고 그때부터 남자란 존재가 싫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남자는 나에게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까지 나에게 문제가 쌓여서 그랬던 걸까. 나는 모든 면에서 불안 증세를 보였고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과 있는 것도 무서웠고 머릿속엔 온갖 무서운 상상을 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단순히 TV 보는 것, 무엇인가 읽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들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너무 불안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솔직히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살아야겠다고 선택을 한 이유는 어머니였다. 우리 엄마.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집이 많이 어려워졌고 부모님 싸움도 잦아지면서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때 나보다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내가 죽는다면 우리 엄마는 더욱 불행해질 거 같았다. 내가 보란 듯이 다시 살아,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내가 돈을 벌어 집안에 보탬이 되어 다시 우리 집을 일으키고 싶었고 예전처럼 다시 화목한 가정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우선 내 목표는 내 정신적인 이상증세를 고쳐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과를 선택하는 대신 하느님께 매일 기도하며 그 당시 좋아했던 차동엽 신부님 강의를 매일 들었다(혹시 이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면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나는 냉담을 하면서 믿음이 사라진 상태였지만 내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건 하느님밖에 없었다.
매일 밤 눈물을 쏟으며 ‘제 정신병을 고쳐주시고 제 마음에 평화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기도한 뒤 아침에 일어나면 불안했던 마음이 차차 안정을 되찾아 상쾌한 기분이 드는 날이 점차 많아졌다. 그렇게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었다.
아빠를 용서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이전처럼 편하게 되는데 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 상처받은 기억이 사라지진 않아도 ‘나를 위해’,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앞으로의 남은 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 기억을 내려놓고 살았다.
아빠를 용서할 수 있었던 건, 나는 신앙이 있어 하느님이 ‘아빠를 용서하라며’ 나에게 사랑을 넘치게 부어주심을 알았다.
그 사랑으로 나는 아빠를 자연스레 용서하게 되었고 아빠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당시 우리 집안은 사기꾼에게 당하여 재정도 관계(가족 간)도 모두 흔들리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가족들은 우리 집안을 회복하기 위해 합심하며 단단해져 갔다.
누군가 힘들면 다른 누군가가 힘을 주고 격려하며, 하루하루 버텨내며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다행히 현재 우리 가족은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보이지 않지만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게 조금씩 회복되다가, 마침내 온전히 회복된다.
<산들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