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주는 치유, 그리고 서른의 안정

by 산들바람

보이지 않는 아픔,

바리스타가 되기로 하다


2014년 27살, 항공사 승무원이라는 꿈의 장벽은 높았고, 닥쳐온 집안의 경제적 위기는 꿈을 좇기에는 현실을 봐야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건 아무도 모르는 정신적인 병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기에 가족조차 알지 못했던 나의 정신적 고통. 나는 무식하게도 이 병을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믿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남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조차 내게는 많은 용기와 에너지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정신적 문제가 있다 보니, 나는 사무직 대신 몸을 쓰는 단순한 일을 택했다. 마침 카페 창업 열풍이 한창이었고, 카페 창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는 본사 직영 커피전문점에 바리스타로 입사했다. 먼 훗날의 창업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시작했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육체노동은 가혹했다. 첫 달은 도망가고 싶을 만큼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게다가 본사가 있는 건물이라 언제 대표가 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 우리는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함을 유지하며 열심히 일했다.



단순 노동이 주는 치유의 힘,

그리고 커피에 진심인 동료


고단한 하루하루였지만, 1년이 지나니 몸이 점차 이 일에 익숙한 체력이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노동 속에서 치유받고 있었다.

그곳에서 하루 시작은 바닥 청소로 시작된다. 전날 락스에 담가 하얗게 된 행주를 헹구고, 신선한 원두를 개봉해 그라인더에 채워 넣는다.

밤새 멈춰있던 기계를 깨우듯 깨끗한 커피머신에서 첫 샷을 흘려보내고, 두 번째 샷을 내려 내가 마시는 그 순간. 그 커피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꿀맛’이자 하루를 버티게 하는 의식이었다.

이 정도 준비가 끝나면 슬슬 단골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매일 한결같은 커피 맛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고,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추출 방식에 따라 맛의 깊이가 달라짐을 강조했다. 그곳의 동료들은 모두 커피에 진심이었다. 귀한 원두가 생기면 함께 핸드 드립을 내려 마시고, 이론으로만 듣던 맛과 향을 직접 느끼며 서로의 평가를 공유하곤 했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커피를 파는 일이었다면 그 2년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동료들과 함께 나눴던 그 뜨거운 커피 열정과 그 공간의 공기가 문득문득 그립다.


이 회사를 선택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가능성'이었다. 바리스타로 시작해 직원, 매니저, 점장을 거쳐 본사로 진출할 수 있는 승진 체계가 있었다. 이곳이 단순히 머무르는 정거장이 아니라, 노력하면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는 사실은 고된 육체노동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는듯 보였다. 점장님이 본사 교육팀으로 영전하셨고(점장님은 거의 평생 카페 바리스타로 일하신 분이었다), 매니저님은 점장이 되고 나도 운 좋게 금방 매니저가 되었다. 그렇게 4개월 뒤에 새점장님은 본사 슈퍼바이저(가맹점 관리직)로 가게 되었고 나는 점장이 되었다. 이전 점장님도 마찬가지로 평생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신 분이었다. 비록 바리스타 경력은 없었지만, 성실함 하나로 1년 만에 매니저를 거쳐 점장이라는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새로운 선택의 기로,

비로소 찾은 ‘보통의 안정’


2016년, 어느덧 스물아홉. 회사가 직영점을 확장하면서 나는 익숙했던 본사 건물을 떠나 타 지역 매장의 점장으로 발령받았다. 새로운 곳에서 1년간 치열하게 매장을 꾸려나갔지만, 서른을 목전에 두자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남아서 기약 없는 본사 발령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결혼 후에도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날 것인가.’

현실적으로 결혼 이후에도 바리스타로 일하기엔 환경이나 복지가 턱없이 열악했기 때문에 선택을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이전 점장님들은 평생을 커피에 종사한 분들이라 본사 진출이 빨랐던 건지,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은 나에게는 그 기회가 요원해 보였다.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본사에서 대표이사 다음으로 높은 본부장님을 찾아갔다. 나의 목표는 가맹점주 교육을 담당하는 본사 ‘교육팀’이었다.

본부장님은 “지금은 T.O.가 없으니 기다려야 한다.” 원론적인 답변뿐이었고, 그의 눈빛과 말투는 신뢰하기 어려웠다(본사 대표도, 본부장도 어딘가 신뢰하기 힘든 특유의 거들먹거림이 있었다. 일명 ‘자뻑’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나는 2년간의 치열하게 보냈던 시간을 뒤로하고 그곳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2016년 29살, 엄마의 조언대로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회계 업무에 도전했다. 6개월간 학원에 틀어박혀 전산회계 1급과 전산세무 2급을 한 번에 따냈다. 하지만 자격증만으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첫 직장은 겉만 번지르르한 부실한 회사였고, 7개월 만에 다시 취업 시장에 던져졌다.


서른 살, 몇 달의 전전긍긍 끝에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원하지도 않은 'OOO 코리아'라는 곳에서 내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내가 맡게 된 일은 원하던 회계직이 아닌 ‘영업관리직’이었다. 하지만 그 회사는 내가 간절히 원하던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설립된 지 오래된 탄탄한 연혁, 적정한 연봉, 많은 직원 수, 그리고 무엇보다 기혼자와 장기 근속자가 많다는 점.

스타트업과 불안정한 직장을 거치며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결혼 이후에도 다닐 수 있는 안정감'이었다.

업무가 조금 아쉽더라도 더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다행히 합격 전화가 왔고 그곳에서 비로소 직장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꿈도 꿀 수 있게 되었다.




내 안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해 자꾸만 이런 상황을 끌어당겼던 탓일까,

아니면 하느님이 나를 더 단련시키기 위해 연단의 시간을 허락하신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안정된 회사 하나 만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참으로 서럽고 고단했던 나의 20대 취업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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