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그 하찮은 경계

로마_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테베레 강

by sandew

부모님은 여행가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삶이 단순하고 부지런하고 목표 지향적인 사람들이다.

일찍 일어나고 술, 담배 일절 안하니 당연히 하루를 청량하고 에너지 넘치게 시작하기에 여행은 그들에게 최적의 모험이다. 탐험으로 가득찬 하루의 일과 끝에 내일의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한 저녁과 충~~분한 휴식,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날의 강행군, 여행중의 향락과 즐김은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는 탈선이기에 나의 기억 속 ‘여행’에 그런 경험은 전무하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여행 패턴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취향이 아닌 걸 뼈저리게 느낀 건 스물 다섯 즈음의 엄마와의 동유럽 여행이었다. 엄마와 단둘의 유일한 추억이고 또한 유럽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에 불을 지핀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 실질적인 여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여행 내내 6시 기상.

난 원래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지만 엄마랑 지내는 동안은 내가 이렇게 게으른 인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내가 충분히 일찍이라고 생각한 시간에 일어나 만난 엄마는 늘 ‘ready to leave'의 모습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놀라운 건 지금부터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더니 주어진 것이라곤 빵과 햄 몇 쪽, 계란과 쥬스가 전부였는데 엄마는 마치 진수성찬이 차려진 것처럼 열심히 담고 정말 맛있게 드셨다. 난 새벽이라(?) 입맛도 없고 졸려서 몇가지 찌그리고 나면 그때부터 다음 끼니까지 물한모금 마실 여유가 없는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먹는데 그닥 큰 열정이 없는 나는 그럼에도 배가 고파 힘든적은 없었지만 종일 너무 많이 걷고 엄마의 감격에 부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고단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20년 후 중년의 엄마가 된 나. 아직 어린 아들 둘을 두고 고딩 진학을 앞둔 딸과의 여행을 위해 얼마나 많은 조정이 필요한지 삶을 통해 알게 된 그때의 딸은…그 빡센 여행이 엄마에게 얼마나 절실한 시간이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아까운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기 위해 6시에 일어나 하루종일 걸을 수도 있었지만

나도 딸도 그럴 의지가 없었다.

사진과 기록이 남는 여행보다 이야기와 기억이 남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오늘의 질문: 오늘답게,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숙소가 있는 캄포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가 문을 연다.

사진을 찍기도 전에 원샷해버린 카푸치노의 흔적

현지식은 어제 먹었으니 안전한 아침을 위해 American breakfast와 생과일, 카푸치노와 오렌지 쥬스를 주문했다.

가장 기대했던 건 커피였지만 아기 머리통만한 미국식 머그잔에 벌컥벌컥 마셔온 나에겐 맛을 느끼기도 감질맛 날 정도로 너무 적었고,

햄과 소세지는 다소 뻑뻑했지만 먹을만했다.

그리고 과일과 쥬스는 지중해 과일이라 그런가 아주 훌륭했다.



맘: 오늘은 로마를 좀 걸어볼까?

딸: 어제도 걸었는데?

맘: 아니, 오늘은 어딜 가기 위해 걷는다기 보다는 그냥 도시 곳곳을 걷는다는거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많은 도시들이 큰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듯, 물자와 사람이 이동하는 통로가 되고 전쟁시에는 주요 방어막이 되는 강은 깊고 긴 이야기를 담고 흐른다. 로마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또한 테베레 강변이었기에 주요 관광지로 가려면 동쪽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마침 숙소가 강에서 가까웠기에 강변을 따라 걷다가 구시가 중심부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저 끝에 무엇이 나오는지, 가보기 전엔 모른다

테베레 강을 향해 가는 길은 역시나 좁고 구불구불한,평평하지 않은 돌바닥의 특성 상, 넋놓고 걷다보면 삐끗하기 십상인 돌바닥 골목길이다.

크고 작은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수천년인지 수백년인지 어제인지 막 무너진 듯한 돌덩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숨막히는 설렘 속에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체력이 부족한 40대 아줌마와 이해가 부족한 10대의 딸이 생각보다 빨리 지쳐갈 즈음, 강을 만났다.


역사에 등장하는 주요 도시들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 서울의 한강이 도심을 가로지는 강 치고는 아주 큰 강이라는 것이다. 강변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평생을 살았으니 강이라면 의례 한강을 기준으로 상상하게 되는데 그래서 매번 생각보다 작은, 거의 개천? 수준의 강폭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테베레 강도 그랬다.

빠른 유속때문에 느껴지는 청량함

그 옛날 전쟁사에서는 강을 경계로 대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때로는 전략상 밤새 다리를 지어 건넌 후 뒤쫒아올 수 없도록 허물어버리곤 했는데 아무리 전쟁중이라지만 밤새 다리를 짓는다고? 이쯤되면 과장이 아닌 사기라고 봐야지 싶었는데…이 정도 강폭이라면 짓고도 남았겠다. 다만 상류쪽이라 그랬는지 굽어지는 지형이라 그랬는지 유속이 엄청 빨라,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수많은 삶과 죽음의 격정적인 장면을 잠시 상상해볼 수 있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성당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산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죽음 이후의 삶, 구원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공간.

산타마리에마조레.png 천장의 금박 장식과 피오 9세의 조각상

시선이 닿는 곳마다 찬란하기 이를데없는 금빛의 향연 가운데 한 조각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삐딱한 의구심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저토록 경건한 모습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제작한 것은,

이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신앙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함이었을까,

혹은 본인의 믿음이 이리도 진실하니 살펴보아줍쇼 하는 마음이었을까.

다소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모습이지만 감히 지금의 시선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

전쟁과 기아, 자연 재해 등 절대자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생존조차 불안정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과할 정도로 쏟아부어서라도 잡을 구원의 동아줄이 간절했을 것이다.




주일마다 예배의 자리에 나가는 크리스천으로서,

오늘의 하루를 살며 저토록 인접한 죽음을 염두해둔 적이 있던가 돌아본다.

물질적이던 세속적이던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천국에 한자리 얻고자 했던 그들의 열망을 통해

오늘을 오늘답게 만들어주는 건 삶과 죽음이 그저 찰나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고

모든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 답해본다.




그래서 오늘의 젤라또는?

여긴 저 과자에 찍어먹는게 키포인트인 집이었어. 레몬 샤베트 같은 베이스에 딸기 시럽이 얹어진듯한?

나쁘지 않았지만 황홀경에 이집은 꼭 다시 찾아오겠어 정도는 아닌,,,,

너님이 만족하셨다니 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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