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

로마_카피톨리노(Capitolino) 언덕

by sandew
고대 로마의 7개의 언덕

미국에서 도시의 외곽, 주거 단지에 오래 살다 보면 외출이라는 개념은 내 집 거라지에서 시작해 누군가의 거라지 혹은 파킹장에서 끝난다. 그러니 매일 다니는 길이 평지인지 언덕인지 알바 없고 특히나 요즘같이 구글맵이 내 삶의 길잡이인 시대엔 파란 선 따라가기 바빠 방향과 고도 등의 공간감에는 관심을 가질 일이 없다.


그러나 작은 오르막에도 숨이 차오르는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면 안다. 허벅지가 터질듯한 차오름이 두세 번 있는 코스라면 이 동네는 꿀렁거리는 동네라는 걸. 고로 별로 안 걸었는데 왤케 힘들지 싶으면 그것은 꽤나 오르내리는 구릉 지대라는 증거다.


로마는 일곱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다. 일곱 개의 언덕이 따로 또 같이 모여있는 지역에서 하늘과 가까운 언덕에는 신과 황제를 위한 건물이 세워졌고 언덕과 언덕 사이의 저지대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 후, 저지대는 점차 묻혔고 폐허가 된 땅 위에 현재의 로마가 세워졌다. 그리고 중심이었던 포로 로마노 등 저지대의 발굴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니 로마 관광은 오르내림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골목길을 걸을 때 길 끝에 나타날 장면에 대한 기대가 있듯이 꿀렁꿀렁한 언덕을 올라갈 땐 언덕 위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언덕 위와 아래의 삶이 구분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일상 속에서 언덕길을 늘 오르내리는 지형에 살아간다는 건 결코 축복받은 땅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로마 사람들에게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행자 팁: 로마 단기 체류자에게 필수적인 것은 버스 티켓 구매이다.
Roma Pass(https://www.romapass.it) 는 72HR 기준, 58유로(여행을 갔던 3년 전에는 52유로였는데 그 사이 6유로가 올랐다)로 결코 만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중/단기 체류자에게 최적화된 교통수단으로 주요 관광지를 단시간에 이동할 수 있으며 일정만 잘 맞추면 근교 지역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만능 패스이다. 단기라면 빼곡한 하루 일정에서 걷는 체력을 아끼고 중기 이상이라면 구시가 관광은 걸어서 하고 시외 관광 일정을 몰아서 패스를 사용하길 권함.
아라코엘리 성당으로 오르는 124개의 계단과 내부 장식

카피톨리노 언덕은 로마의 7개의 언덕 중 가장 높은 언덕이고 고대 로마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우리는 사실 캄피톨리노 뮤지엄에서 판매하는 버스 패스를 사기 위해 왔다가 엉뚱하게 그 옆 계단으로 올라가 산타마리아 인 아라코엘리 성당에 가게 되었다. ‘하늘 위의 성당’이라는 별칭답게 좁고 가파른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성당은 겉모습은 소박한데 많은 성당이 그러하듯이 내부는 눈이 부실만큼 금빛 찬란하다. 처음에는 그 화려함에 입이 딱 벌어졌던 딸램도 어째 점점 여기도 금이네, 땡?! 인 분위기? 올라가서야 이 산이 아닌 걸 알게 된 고로, 성당 한번 둘러보고 다시 내려가 그 옆의 카피톨리노 뮤지엄 쪽 계단으로 다시 올라갔다. 미켈란젤로가 새롭게 레노베잇 한 광장은 건물의 배치 등 광장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진정 이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건축학적 지식이 약간이나마 필요함, 본인은 없었기에 못 느껴서 강조함) 뮤지엄 외에도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원본은 뮤지엄 내부에 전시) 등 볼거리가 풍부해 관광객이 많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원본

특히 언덕에 오르는 완만한 계단(Cordenata)은 아까 지나온 가파른 계단과 달리 위로 올라갈수록 그 폭을 좁게 디자인해서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계단이 짧아 보이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리얼리? 착시 모르겠고 어쨌거나 폭이 좁던 넓던 오르막은 힘들어 헉헉..


뮤지엄에 들어서면 자그마한(? 이미 사이즈에 대한 감이 없어짐) 중정이 있고 미술사 책에 나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각이 툭툭 놓여있다(진짜 둘 데 없어 대충 기대어 세운 것처럼 늘어서 있다). 원래는 포로 로마노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겠지만 부분으로 나뉜 석상의 일부만 봐도 그 규모가 놀랍다. 크고 높은 곳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바벨탑의 시대로부터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모습의 성취를 향한 욕망은 더 정교해지고 집요해졌다. 엄청난 규모에 혀를 내두를지언정 결국 조각으로 남은 영광의 흔적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탐욕의 결과가 겹쳐 보인다.

엄청난 규모에 일단 엎드려짐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카피톨리노 뮤지엄은 언덕 자체의 유명세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지만, 고대 로마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시간을 내어 관람을 강추한다.(로마 패스 구매 시, 무료입장 가능) 고대 로마의 유적들이 땅 속에서 파낸 사라져 버린 문화의 잔재들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미 르네상스 이전에 고대 로마의 예술은 기술적, 표현적 측면에서도 이미 완성형이었음을 알 수 있는 뛰어난 조각품들이 즐비하다.


6:50 PM: 이미 하루 종일 걸었고 로마도 너무 느껴서 이제 좀 덜 느껴도 되겠다 싶은 시점.

고작 계단 두 군데 오르내렸을 뿐인데 이렇게 지치는 걸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일상이었다는 거지? 인간의 역사는 자연환경에 순응하고 극복해 온 과정이 아니던가, 언덕에서 자전거를 배우고 평지에서 훨훨 날 수 있는 것처럼, 이 사람들에게 언덕은 살아내야 할 환경이었을 뿐인데, 그렇기에 누구보다 유연하고 강력하게 새로운 문명을 확장해 나갈 내공이 쌓아진 것이라 미뤄 짐작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늘 더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경험하고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지만 ,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은 고난일지언정 우리에게 선한 것임을 알고 있지 않던가. 이들에게 언덕은 척박한 환경도, 고난도 아닌 그것 위에 꽃 피운 자랑스러운 문명의 무대일 것이고 그것이 지금도 발굴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의 힘듦도 내일을 위한 근력을 키우는 밑거름이야. 좀 더 걸어!



힘드니까 오늘은 좀 fancy 한 거 먹을까?

좋은 생각이야.

몬지 정확히 몰라도 일단 꽂히는 대로 시켜보자, 그리고 알면 되지 ^^

3rd day meal.jpg 대충 단어 몇 개만 보고 시킨 것치곤 너무 훌륭했던 애피타이저와 메인 entree

땀을 너무 뺐기에 약간의 느끼함을 보충하기 위해 베이컨 브루스게타,

소스의 이름은 생경하지만 안전한 조합인 연어와 아보카도 샐러드,

그리고 실패가 없을 새우 파스타를 골랐다.

결과는 와우~


오늘 언덕은 어땠어?

힘들었어.

오늘 본 로마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 거 같애?

힘들었을 거 같애.

ㅇㅇ 원래 사는 게 그래. 오르락내리락, 그때도 그랬을 거야. 저녁은 어때?

흠... 아이 라잌 이딸리아노~~~

그봐, 안 먹어보면 모르고 안 살아보면 모르는 게 인생이야. 그니까 살아본만 하지, 그치?


사실 우리의 여행은 원래 이렇게 땀을 빼며 걸어 다니는 컨셉이 아니었다.

우아하게 뮤지엄에 머무르며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려고 했지만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그저 먹고 사느라 바빠서 숙소 하나만 덜렁 예약하고 온 현타를 맞았다.

이미 유명 미술관들은 한 달 전에 예약이 끝났고

현장 판매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예 인터넷 예매 외에는 받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급한 대로 향후 일정인 피렌체와 베네치아에 있는 뮤지엄 예매부터 해두고

로마 뮤지엄은 다시 돌아온 후에나 예매가 가능했으니 졸지에 걸어 다니는 여행이 되고 만 것이다.

버스 노선도 뭐가 뭔지 몰라서 잘못 타고 분명 제대로 보고 타는데 변경되기 일쑤니 무더위에 땀범벅이 되어 지친 모녀,

투덜거리다 투닥거리다 따로 걷다 또 같이 걷다 하루 종일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순간순간 빵 터지는 계획 못한 웃음이 덤으로 찾아왔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치밀하게 살았다고....

애 셋 낳고 살다 보니 완벽한 엄마 코스프레 하느라 너무 피곤하게 살았다.


대책 없던 지난 시절에도 계획하지 않았던 의미와 성과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남은 삶은 좀 티미하게 살아도 될 거 같다.

다만, 오늘의 시행착오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피렌체행 기차표를 예매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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