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높이 날아오른 이카루스가 열어 제낀 새 시대

바티칸_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뮤지엄

by sandew

앞서 언급했듯, 르네상스는 ‘신’이 지배하던 중세에서 ‘인간’으로 그 중심이 옮겨가며 발전했다.

그렇다면 절대자였던 신은 어쩌다가 천상계에서 인간계로 내려와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게 된 걸까? 그리고 신앞에서 보잘것없는 미물에 불과했던 인간이 예술의 중심에 서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바티칸에 가기로 했다.

경쾌한 모닝 커플샷

역시나 예약을 못한 관계로 일찍 가서 당일 줄 서기(옛날 스타일)를 할 수 있을지 알아보며 일단 나섰다. 숙소에서 나와 다리만 건너면 바티칸이라서 사실 못 걸을 거리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37도까지 폭염이 예보되었기에 불필요한 체력 낭비를 초반에 하지 않기 위해 버스를 탔다.


헐… 아침부터 줄이… 일단 짧은 줄부터 서고 보자 해서 30분 정도 기다려 성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갔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498-1499)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문간방 유리관 속의 너무 먼 피에타(좌)와 '테레사의 환희(우)를 연상시키는 성베드로 중앙 제단(중)

기대가 너무 컸나, 장엄하게 가장 깊은 곳에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과 달리 너무 문간 초입에 그것도 유리에 씌워 있어 멀찍이서나 바라볼 수 있었다. 거장의 섬세한 손길을 느끼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랄까, 여튼 피에타의 실물을 본다는 감흥 외에 작품 자체가 주는 감동은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성베드로 성당의 규모와 화려함은 가히 상상 이상이다. 미켈란젤로뿐 아니라 브라만테, 라파엘로, 베르니니 등 미술사 몰라도 들어볼 법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이 설계하고 참여한 르네상스 예술의 집대성 같은 곳이니 눈을 돌리는 곳마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심지어 처음 온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경탄이 나오는 것 또한 거작의 힘이기도 하다).

번외: 우측 사진은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 있는 바로크 건축의 명장, 베르니니의 '테레사의 환희'이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제단 위쪽에 채광창이 있어 실제로 저 섬광 장식이 빛을 받아 관람객으로 하여금 환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바로크 예술은 일정상 이번 여행에서는 패스했지만, 그것을 연상시키는 베드로 성당 제단의 섬광 장식을 보니 다음에는 꼭 찾고 싶어졌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신이 중심이던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바티칸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인간이 중심이던 시대의 거장들의 손으로 지어졌다는 게 말이다.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힘으로 높이지 않아도 스스로 높은 분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간이 스스로의 이름을 드높인 인간들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졌으니 과연 그분이 기뻐 받으셨을까. 절대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어진 이 성당의 건축으로 바닥난 재정을 메꾸기 위해 면죄부가 판매되었고 그것이 종교 개혁으로 이어져 결국 가톨릭의 쇠락을 불러왔으니 그 답은 역사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영광에 취해 너무 높이 날다가 날개가 녹아 떨어져 내린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세계 최고의 이름값에 걸맞은 위대한 건축물을 나서는 발걸음이 복잡 미묘하다.


바실리카에서 나와 빨래를 맡기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왔다.

세 모금에 끝나버린 라떼와 얼음 한 개 띄워진 냉커피

하… 역시 이탈리아 커피는 너무 작고 리필도 안된다. 세 모금에 끝나버려(에스프레소 아님) 채 맛을 느끼지 못한 커피와 나중에 긴급 수혈로 주문한 얼음 하나 달랑 띄워진 냉커피에 아쉬운 입맛을 다셔본다. 식당에 가면 주문도 하기 전에 일단 얼음을 가득 채운 ice water가 스벅 벤티 사이즈 컵에 제공되는 미쿡에서 온 우리에겐 얼음은 택도 없고 물 한잔 안 주는 이 나라는 참으로 인색해.


다행으로 바티칸 뮤지엄 예약은 못했지만 바가지 요금의 투어 상품을 사면 뮤지엄 입장이 가능했다(물론 바티칸 장벽에 붙어 1시간 여의 기다림은 디폴트다). 폭염 주의보로 특히나 더운 날, 일단 실내에 들어가면 시원하니까 오늘 오후는 뮤지엄에서 보내는 걸로 하자, 과감하게 질렀는데 아뿔싸!

충격적이게도 뮤지엄에 에어컨이 안 나온다.

한국의 장마철 저리 갈 습하고 무더운 오늘, 이 소듕한 작품들 이래도 괜찮아요? 걱정이 될 정도로 눅눅한 공기를 내뿜는 창문이 활짝 열려 있다. 게다가 사람이 많아도 얼마나 많은지 뮤지엄 관람의 새 지평을 연 원웨이 시스템, 휴식하며 자유롭게 오가는 관람이 아닌 사람으로 가득 찬 복도에서 내 발이 땅에 닿아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인파에 쓸려 전진만 가능한 생경한 시스템이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작품과 건물의 구분이 모호해 구석구석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하다.

어디가 그림이고 어디가 장식인지 알 수 없는 극강의 화려함과 성수기의 깃발 부대

다만 하나하나 눈에 담고 감상하기에는 너무 덥고 투어 가이드의 깃발 따라가기 바빴으니 어쩔 수 없는 극성수기 관광의 한계이다.


깃발의 마지막 즈음에 라파엘의 방(1508-1024)에 들어섰다. 로마는, 특히 바티칸 성당과 뮤지엄은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주역들이 그 전성기라고 불리는 업적을 남긴 곳이다. 라파엘의 작품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널리 알려지진 않았어도 당대의 대가들 손에 장식된 방을 지나온 터라 '역시 천재~'와 같은 감흥은 솔직히 없었다. 하지만 유명세 차치하고서라도 모니터 화면으로 봐도 꽉 차는 규모의 대작을 실제 공간에서 만났을 때의 감동은 분명 살.아.있었다. 라파엘의 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무엇보다 화면의 구도.

천상계의 아름다움, 라파엘의 방

지금이야 온갖 독특한 구성이 넘처나는 세상이니 지루할 만큼 안정적인 라파엘의 구도가 그닥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는 인상파도 추상도 없던 시절, 그저 신을 찬양하던 평면적인 그림만 그려지던 중세를 막 지나 눈을 의심케 하는 사실적인 그림들에 홀려있던 시절이다. 화려한 장식, 문양이 가득한 이 방에 저토록 완벽한 대칭과 원근법, 이상적인 인물들이 더할 나위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마치 천상계를 이 땅에 이룬 것 같은 경이로움을 선사했을 것 같다.


그리고 둥둥 떠밀려 오며 지쳤던 마음이 싹 사라질 만큼 압도되는 시스틴의 미켈란젤로를 다시 만났다.

와 C…..

(좌) 천지창조, (중) 최후의 심판 (동그라미는 예수님), (우) 십계명을 든 모세

시스틴은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천지창조_사진 좌)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전면의 ‘최후의 심판’이었다. 분명 같은 작가의 작품이지만 젊고 야심만만한 패기가 느껴지는 천정화(1508-1512)와 20년 후 종교 개혁에 휘말린 카톨릭 교회를 보며 고뇌와 번민을 담아 그렸을 최후의 심판(1536-1541) 사이에는 세월의 간극만큼이나 큰 격정적 감정이 느껴진다. 세상 인자한 모습의 전형적인 예수님과는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이 그림에서 예수가 뉘신가 싶을 정도로 당장이라도 철퇴를 내려칠듯한 근육질의 예수님은 낯설다. 문득 이 예수님에게서 엊그제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대작 ‘모세(1513-1515)’가 보인다. 구원의 주체이자 구원의 길잡이가 된 이들은 왜 누구보다 카톨릭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예술가의 손에 의해 이토록 무서운 모습으로 표현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맘 같지 않아서가 아닐까.


말이 좋아 르네상스 전성기의 천재지, 저 사람을 속을 들여다봐,

조각가로 잘 나가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그림을 그리래지, 천정화 3년 그리는 동안 몸은 맛이 갔는데 그래도 이번엔 조각하라 그래서 대리석 찾고 있구만 또 불러다 딴 거 하래지, 평생을 카톨릭 교회를 위해 충성했는데 그들이 하는 꼬라지가 제 눈에도 석연찮은 잡음을 만들고 있지, 성격은 오지게 까탈스러워서 아까 라파엘 그림에서 본 것처럼-

'아테네 학당' 속,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한 헤라클레이토스

오죽했으면 누가 봐도 아싸로 그려놨을까, 저 천재는 맘 같지 않은 세상과 인생 사이에서 그 누구보다 외로운 싸움을 해왔을 거야. 그치만 중요한 건 그는 불평하며 물러서는 루저가 아니고 부딪혀 증명하는 파이터였던거야, 그리고 그 파이팅의 결과는 ‘전성기’라는 이름으로 남은 거지.




역사적으로는 중세의 몰락은 십자군 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예술사적으로도 르네상스의 도시인 피렌체로 가면 그 시작을 알리는 여러 계기들을 볼 수 있겠지만, 고대로부터의 모든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는 이곳 로마에서는 사실 그 경계가 없어 보였다. 타락한 교황청은 세속과 다를 바 없었고, 욕망에 취해 더 높이 올라가고자 했던 이카루스처럼, 지나버린 영광의 흔적을 잡고 버둥거리는 중세 귀족들처럼,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예술가들처럼,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사는 게 다 맘 같지 않다. 하지만, 옳던 그르던 역사의 판단과 상관없이 주어진 현실을 적극적으로 살아낸 파이터들에 의해 새 시대는 열리고 있던 거 같다.



따님은 취침 중

너무 많은 인파에 너무 많은 땀을 흘린 딸램은 오는 버스 안에서 골아떨어지시고 나보나 광장 버스 역에 내려 숙소가 있는 캄포델피오레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3일 머물렀을 뿐인데 역시 내 집이 좋아라는 느낌이 드는 건 현대 도심의 차가운 콘크리트 호텔이 아닌 오래된 벽돌 골목이 주는 정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녁은 뭐냐고?

모르타델라 소세지에 이탈리안 파마산 치즈인 파르미지아노가 곁들인 애피타이저와 랍스타 파스타와 연어.

(좌)소세지&치즈, (중)랍스타 파스타, (우)연어&소스

애피타이저는 색다른 느낌이지만 약간 투머치 소세지…라 반밖에 못 먹었지만 바다바다한 파스타는 이탈리안 느끼함에 살짝 물린 우리에겐 훌륭한 선택이었다(다만, 연어가 저렇게 정말 연어만 나올 줄은 몰랐다).

남들 다 먹으니 너도 먹은 티라미수

엄마, 근데 어제부터 여기 사람들이 자꾸 저 티라미수 케잌을 들고 지나가. 뭔지 먹어봐야겠어.

그리하여 오늘의 디저트는 젤라또 대신 티라미수로.

맛은 어땠냐고?

말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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