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낌질에 진심이었던 사람들

Florence_산타마리아 노벨라 광장 & 성당

by sandew
완벽한 1 초점 원근법을 구현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가기로 한 건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그림이라고 알려진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전의 회화에서도 거리감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는 있어왔지만 두오모의 설계자이자 건축가였던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하고 마사초가 완성한 ‘원근법’은 르네상스 미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원근법이 도입되면서 2차원의 화면에는 생생한 3차원의 공간이 생겼고 부유하는 듯한 천상의 이미지들은 비로소 눈에 보이는 삶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오늘날 원근법은 회화의 기본으로 여겨질 정도로 일반적이지만 입체감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이 거대한 성당의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날 했다. 실제로 손을 뻗어 공간을 확인하려는 사람도 있었다니 당시 원근법의 등장은 요물은 요물이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 그 사람들은 마사초의 그림에서 기술적 혁신 외에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그가 남긴 그림이 지금의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를 무엇일까.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창백한 흰색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기차로 도착하는 경우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과 마주한 산타마리아 노벨라역에서 내리기 때문에 이 성당은 피렌체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얼굴과 같은 건물이다. 하얀색 대리석에 녹색 무늬가 들어간 전면부(정면 파사드)는 울룩불룩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던 수많은 기둥 장식이 떠받들고 있는 여타 성당에 비해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 기둥을 본체 안으로 넣은 구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화려한 디테일의 무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평평함이 전체적인 디자인을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보이게 한다. 특이하게 출입구가 측면에 있어서 입구를 찾느라 잠시 애를 먹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출입구도 들어갔을 때 건물 안 정면 제단이 아닌 안뜰과 같은 중정을 만나게 된다. 성당 앞 시끌벅적한 광장과는 전혀 다른 한적함 속에서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풍경이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마사초 이야기

르네상스 이야기는 어김없이 마사초로 시작한다. 마치 원근법이 르네상스를 만들어낸 것처럼.

그러나 마사초의 이야기에 반드시 등장하는 또 한 구절이 있다.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한 원근법을 마사초가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성당을 디자인한 알베르티의 <De pictura>(회화론)이나 <De statua>(조각론)에도 비슷한 느낌의 문장들이 있다.(흔히 '미술가 열전'이라고 불리는 조르조 바사리의 전기와는 다름)

예술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대의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등의 예시,

회화, 조각, 건축을 예술의 분야로 나누지 않고 발전의 한 단계로 구분했다는 것.

'자아 발견', '자존감 키워주기' 등 '자신'이 중심이 된 세상에서 살아온 아이들에게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남이 이룬 것'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작은 도시에서 방귀 좀 뀌던 사람들은 남의 방귀를 받아들이는 시선에도 너무 관대했다는 것이다.

배울 것은 거침없이 배우고, 대신 자신의 것으로 완성한다.

그 결과가 마사초의 성삼위일체이다.


산타마리아노벨라jpg.png 중앙 제단, 천정, 가족 예배당 할 거 없이 눈을 뗄 수 없던 성당 내부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마사초의 작품 외에도 각 가문을 대표하는 가족 예배당이 금박과 그림을 총 동원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는데 그 각자의 공간 또한 그림의 주제와 분위기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서로의 베낌질도 대단하다. "오, 쟤는 저거 했어? 그럼 나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야지", 아마도 표절의 개념이 있었다면 서로 소송하느라 예배당 꾸밀 돈을 탕진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열린 마음이 보인다. 그 사람들이 결코 더 성숙하고 너그러워서가 아니고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누구보다 그들을 열린 사람들로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이 열린 천재는 미술사 책에 영원히 박제된 명작을 남기고 고작 1,2년 후 26-27세(추정)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당시 사람들에겐 모든 것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더불어 나아가고자 하는 열린 마음으로 교감을 이어가고 있다.


아, 그래서 마사초의 작품은 어딨 냐고? 안타깝게도 우리가 간 날이 보수 공사 중인 장날이라 천막을 치고 제한된 입장객만 관람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그림을 보지 않아도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은 그 시대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충분히 도전적이었다.













그래서 딸, 너는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데?

흔적이 뭐야? 몰라 배고프고 다리 아파.

오케이.

흔적은 나중에 찾기로 하고 일단 우리는 무게를 늘리러 밥을 먹자.


스테이크.png

피렌체는 예로부터 넓은 목초지를 갖고 있는 토스카나 지방에 위치해 가족 공예와 함께 그 가죽을 제공해 주시는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가는 데마다 두껍게 썰린 티본스테이크 향이 진동하니 이제 썰어줄 시간이다.

당연히 티본을 먹어야 했지만 소식좌 둘에겐 너무 버거운 사이즈, 어쩔 수 없이 chopped steak를 주문했는데 흠…. 천국도 중요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승이라 감사하다. 매일 1잔 중인 애페롤 스피릿과 아르굴라 샐러드와 만나 소식좌들에게 더없이 행복을 선사했으니 꼭 경험해 보길 강추함.


딸과의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혼자 다니면 소홀해지기 쉬운 먹는 즐거움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딸램의 엑셀에 뺴곡한 맛집 리스트들을 채워가며 영적으로 풍족한 여행이 육적으로도 풍성해지고 있으니 우린 꽤나 괜찮은 파트너인 듯.(하루에도 몇 번씩 티격대는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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