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

Florence_두오모와 브루넬레스키, 바르젤로 뮤지엄

by sandew

피렌체에 도착한 첫날, 이게 두오모고 이게 죠반니 세례당이야, 주입식 교육을 하고 지나쳤던 곳. 순서가 애매하긴 하지만 로마에서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우린 이제야 르네상스의 시작점에 왔어.

르네상스를 연 세기의 대결로 너무 많이 알려진 사실을 굳이 써야 할까 고민했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예술 애호가는 아닐 것이기에 친절한 산듀씨의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어.


최대한 간략하게(이건 지루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딸램 특강이기도 했다)

이 피렌체라는 도시는 당시 금융업의 발달로(이 말인 즉슨 돈 많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야, 이 배경 설명하려면 십자군 얘기까지 가야 하니 생략) 돈이 많아지니 도시의 위상도 높아지는데 예로부터 도시의 상징과도 같던 세례당이 너무 후지게 느껴진 거지, 오케 제대로 돈 써서 정문 한번 히깔나게 바꿔봅시다, 까지는 대충 설명이 되는데

놀라운 건 그걸 공모전에 붙였다는 거야, 그중 방귀 좀 뀌던 직물 조합이 이 일을 맡았는데 이 도시에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겠다, 이 쬐매난 타운의 예술적 수준에 대한 웬만한 자신감 없이는 힘들었을 시도였지.

그때 등장한 두 고수가 있었어.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였지. 그 둘이 최종 경합에서 붙었는데 바르젤로 미술관(Museo Nazionale del Bargello)에 가면 그때의 경합 작품을 나란히 비교해 볼 수 있어.

경합.png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 좌) 브루넬레스키, 우) 기베르티

근데 그들의 작품에 대한 평은 지금도 논란이 있어. 장면의 시점이 약간 차이가 있는데 브루넬레스키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찌르기 직전 천사가 저지하는 순간이고, 기베르티의 작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찌르려고 합니다..라는 나레이션이 느껴지는 관람자의 시선이라고 봐. 장면 자체는 브루넬레스키가 더 역동적이지만 혹자는 브루넬레스키는 다 보여주려 하고 기베르티는 원근법을 구현해서 화면을 입체적으로 구성했기에 조금 더 르네상스적이라고 평하기도 해. 결과적으로 기베르티가 최종 작업자로 선정되었기에 역사는 기베르티의 작품을 더 우수하다고 평가하지만 거기에는 공정 과정의 차이가 있었어. 기베르티는 모든 장면을 한 번에 찍어낸 반면 브루넬레스키는 캐릭터별로 하나씩 찍어내 합치는 방식을 택했거든. 결과적으로 비용면에서 기베르티의 작품이 효용적이었던 거지. 이 경합을 추진한 것이 상인 길드였다는 걸 기억하면 어찌 됐건 둘 다 우수하다 싶으면 단가를 낮추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긴 해.


어쨌든 이 천재들의 경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아깝게 떨어진 브루넬레스키는 보조 책임자로 임명되었지만 그걸 거부하고 로마로 갔어. 아니, 그때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중할진대 기분은 좀 별루겠으나 기베르티랑 같이 일하면서 머라도 배우고 월급도 받으면 좋겠구만 이 인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던 거지.

그리하여 그가 연구한 곳은 로마였으니 이는 핫한 강남 건축 공모에서 떨어지고 삼국 시대의 석탑을 찾아간 꼴이었을 거야. 근데 그게 제대로 찾아간 선택이었다는 걸 훗날의 두오모에게 모두에게 보여준거야.

지금은 피렌체의 상징이 된 두오모는 1296년 도시의 부와 종교적 위상을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 공사를 시작했어. 유럽의 많은 성당들이 한 번에 지어진 경우보다 흑사병이나 전쟁, 혹은 경제적 이유로 인해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길게는 몇백 년까지 걸리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이 성당도 14세기말이나 되어 대부분 완공되었어. 근데 문제는 지금 봐도 엄청나게 큰 사이즈의 돔을 덮을 기술이 당시에는 없었던 거지. 그러다 보니 피렌체의 자랑이 되어야 할 성당이 지붕이 없는 채로 40년 동안이나 방치되 있던 거야. 1377년 생이었던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에서 나고 자랐으니 어려서부터 뚜껑 없는 두오모를 보고 자라면서 언젠가 내 손으로 씌워보리라 꿈꿨었나 봐.


로마에서 갔던 판테온의 원형 돔을 기억하지? 브루넬레스키가 로마에 가서 한 일은 그 돔을 연구한 거였어. 아마 사람들은 경합에서 떨어진 청년이 로마의 고전에서 영감을 받아 역사를 바꿀 건축물을 구상하고 있는 걸 상상도 못 했을 거야. 그리고 브루넬레스키는 금세공사 출신의 조각가일 뿐 그때까지 이렇다 할 건축물을 만들어본 적도 없었거든. 어쨌거나 그가 돌아와 이 일을 맡겠다고 했을 때, 의심쩍은 반대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은 그가 맡았고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거지.

자, 오늘의 레슨은 여기까지.

브루넬레스키의 성공 신화는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너무 전형적이지?

하지만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야.

세상의 많은 성공은 '운'이 따른다고 하지만 그 '운'은 결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아.


기억해? 지난 한 학기를 내내 레슨하고 연습했는데 똑 떨어진 플룻 오디션 이후 넌 일주일 동안 풀릇 가방을 팽개쳐뒀어. 언젠가 오은영 박사님이 이런 말을 했던 거 같아. "열심히 살아도 세상에는 체면 구길 일이 찾아옵니다" 내가 열심히 했으니까 그게 상응하는 대가가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엄청 교만한 거야. 실패는 누구나 하지만 그 실패를 한계로 만드는 건 자신이지.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뾰족한 방법? 그런 건 없어. 그냥... 또 하는 거야. 다시 해도 또 실패할 수 있지만 그럼 또다시 하는 거야.


이것은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10년간의 전업 육아 후, 나에게 돌아온 건 이거 말고 멀 할 줄 아냐는 비난과 조롱이었고 삶을 바친 가정은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렸다. 의욕도 의지도 없던 내가 그래도 살아낼 수 있던 건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이 망했다고 느꼈을 땐 그 모든 게 실패한 인생의 짐처럼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짊어질 짐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브루넬레스키.png 가까이서는 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두오모 대성당과 이를 바라보는 브루넬레스키 동상

힘들었던 시간, 그럼에도 견뎌내야 했던 시간, 그리고 며칠간의 여행을 곱씹으며 두오모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다. 우피치 미술관의 외벽 회랑에는 기라성 같은 피렌체 대가들의 조각상이 모여있지만 브루넬레스키의 청동 조각상만큼은 이곳 광장 한편에서 두오모를 올려다보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어린 시절, 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뚜껑 없는 대성당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실패에 머물지 않았던 그의 삶은 이 도시에 뚝심의 양분이 되었고 오늘의 나에겐 실패에도 바라보는 길을 향해 가다보면 눈앞에 서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위로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실패의 아픈 기억이 있다. 딸램이 훗날 다 때려지고 싶은 좌절을 만날 때, 오늘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쿠키를 꽂아주는 Venchi 젤라또

공부 너무 마니 했으니 달달이 시간.

피렌체의 명소이다. 이집의 젤라또는 쿠키를 꽂아주는 게 특징이다.

맛은? 장인의 손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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