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ence_베키오 다리, 피티 궁전
피렌체의 골목을 걷다 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한 통로 같은 걸 보게 된다. 베키오 궁전에서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 궁전까지 연결되는 메디치가의 비밀 통로이다. 세력가는 언제든 테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할 수 있는 그들만의 통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권력자의 삶이란... 때로는 참… 피곤하다.
피렌체에 왔는데 메디치가를 지나칠 순 없으니 피티 궁전과 팔라초 메디치 중 어디를 볼까 하다가 피티 궁전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미리 공부도 하고 와서 자신 만만하게 갔는데 월요일이라 뮤지엄 문을 닫았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뽕 뽑으려는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볼 건 너무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이다 보니 맘이 바빠질 수밖에 없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좋은 덴 또 오면 되지, 이번에 못 보면 담에 보면 되지라는 맘을 가져야 쉼이 있는 여행이 가능하다.
관광지라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르네상스의 도시인만큼 이곳의 광장, 길에서 자리를 펴놓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진정한 무림고수처럼 보인다. 나이프만 사용해 유화 물감으로 베키오 다리를 그리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거침없는 나이프질도, 색감도, 텍스쳐도 독특해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여행 중에는 멀 잘 안 사는 편인데 이거는 사야겠다 싶어서 물어보니 3인치 반정도 되는 젤 작은 게 25, 중간 사이즈는 180, 큰 거는 500유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값 아까워하면 안 되는데 아… 이건 무리데쓰.
피티 궁전 앞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피티 궁전은 비례와 균형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장식은 배제하고 아치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만들어 낸 것이 특징이다. 워낙 화려한 건축물을 많이 봐서 그런지 궁전치고는 좀 소박하네? 싶었는데 그 단순한 반복이 보면 볼수록 세련되고 매혹적이다. 때로는 단순함이 웬만한 장식보다 화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잠시 쉬는 동안 이 매력적인 건축물을 스케치로 남겼다.
피렌체를 떠나기 전날, 아르노 강에 석양이 물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한 권력이라는 건 없다.
세계 문화의 중심이었고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교황을 둘이나 배출했던 메디치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권력 싸움에 밀려 바사라 통로를 통해 피티 궁전으로 피신하던 날도 오늘의 지는 해를 보았을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 나라가 들썩이고 지난 과오들을 바로 잡겠다는 이유로 서로의 치부를 물고 뜯느라 난리다. 역사를 배우는 건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함인데, 권력 투쟁이 보여주는 역사를 통해 젤 깨닫지 못하는 건 권력자들인 것도 같다.
낮에 그림 그리던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맘에 들었던 그림이 그새 팔려서 아쉬운 대로 오렌지빛으로 물든 베키오 다리를 샀는데 석양 무렵에 보니 오히려 잘 산 거 같다.
https://instagram.com/narek3802?igshid=NTc4MTIwNjQ2YQ==
나중에 애들 크면 나도 여기 와서 그림 그리면서 살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잠깐…
여행자 팁: 피렌체 여행에 더해진 잔재미
1. 피렌체의 골목에선 유독 눈에 띄는 게 있다. 대문의 문고리 장식이다. 예로부터 금속 공예가 발달했기에 단단한 금속으로 제작된 문고리는 보통 동물이나 가문의 문장을 활용해 세공되었는데 장인의 도시답게 그 디테일이 남다르다.
2. 베키오 다리에 늘어선 금은방들은 해가 지면 문을 닫는데 그 덮개 또한 두꺼운 나무 판에 금속 장식이 더해져 각각의 개성이 넘친다. 때문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낮보다 상가가 문을 닫은 이후 석양이 드리워진 덮개길을 걸어보길 추천한다.
오늘은 멀 먹었냐고?
날씨가 더워서 스피릿츠 대신 시원한 맥주가 땡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탈리아 맥주잔이 냉동에 히야시 되어 나오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조차 좁고 작아서 두 모금 마시고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피자의 나라답게 피자의 도우는 퍽퍽한 미국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쫀득하고 브루스게타는 절대 실망시키지 않았지.
플로렌스는 어땠어?
음... 부자의 기운이 느껴져.(부유함을 표현하려던 1.5세대의 언어적 표현의 한계지만 난 종종 교포의 단어 선택이 그래서 더 직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맞아, 근데 기억해야 할 건 이것이 운이 좋아, 타고난 덕으로 얻은 부유함이 아니고 도전을 두려워 않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실패에도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유함이었다는 거야.
영원할 것 같던 가문의 영광도, 이곳에서의 꿈같았던 시간도 결국은 저물어감에도 오늘의 하루가 헛되지 않은 건, 그 찬란한 시간은 훗날 누군가에게, 어디에선가 피어날 새로운 꽃밭의 밑거름이 될 거거든.
그래서 우린 이제 베니스로 갈 거야. 그전에 잠시 거꾸로 중세를 들르게 될 텐데 또 어떤 의미 있는 만남이 있을지 기대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