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르친 걸 죽어라 배운 딸

그깟 살림은 대단해

by sandew

네 폭싹 얘기 맞습니다.

드라마라는 게 사람 살아가는 얘기고 우리네 삶이랑 다른 듯 닮은 듯 나름의 사연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도 받고 도전도 받는다. 티비는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난 아침드라마부터 주말드라마까지(특히 사극) 드라마를 너무 좋아했고 언젠가는 나도 저런 드라마를 쓸 거야 꼭 다짐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일상을 초단위로 끊어 살아야 하는 개미맘으로 드라마 시청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산지도 너무 오래다.


'짤', '쇼츠' 등 짧은 호흡에 익숙해져 시간이 있어도 돌려본다는 요즘 애들처럼, 화제라길래 돌려본 짤에 맘이 꽂혔다. 그래서 앞뒤 정황 알아보니 더 아팠다.


결혼하고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우리 엄마는 살림하는 스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 꿈은 현모양처였는데,

그런 딸에게 우리 엄마는 계란말이 하나를 가르쳐 준 적이 없다


그래서 난 살림을 시엄니한테서 배웠다

마치 무림 고수에게 물 긷는 법부터 배우는 것처럼 처음부터 차근차근 모든 걸

돈가스는 빵고를 사가 쓰면 큰일 나는 것처럼 식빵을 갈아 빵꼬를 만드는 것부터 배웠다

시판 빵꼬는 상놈이나 먹는 것처럼(내가 먹어온 게 시판 빵고임, 그리고 나뿐 다들 먹음).


10년을 살림만 했다.

만들어 먹는 삶에 지쳐갈 때쯤 나타난 엄마는 내가 아는 살림 젬병인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진정 살림 고수였다

시집살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만큼 했고

내가 대학 졸업하고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아침 밥국을 아침으로 차려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와서

시래기, 취, 곤드레, 내가 듣도 보도 못한 나물들을 다 다듬어줬고

나도 동네에서는 갈비찜으로 이름 좀 날리는 편인데도 우리 아이들은 엄마 갈비찜은 할머니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고수 중에 고수였던 거다.


그런 엄마가 나한테 살림을 가르치지 않은 건,

정말 내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해서였던 걸 이제 알겠다.

전업 주부인 자기 딸은 '걘 아무것도 못해'라면서 오만 반찬을 해다 나르면서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직장 생활하는 며느리에게

그렇게도 열심히 가르쳤던 시엄마를 떠올리며


우리 오빠가 결혼을 안 한 건 엄마와 나의 관계를 위한 신의 한수였던것 같다.

누구나 닥쳐보면 그런다고 하지만

절대 안 그럴 것 같던 내 엄마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았다면 너무 실망했을 것 같다.


밥하고 살림하고 가족을 돌보는 삶이 결코 가치가 없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가정은 나에게 최고의 가치였고 삶의 의미였고 나였다.

그럼에도 어렵고 힘든 순간, 가정이 더 이상 삶의 이유가 되지 않을 때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힘을 얻을 다른 세계가 있길 바라던 엄마의 마음이었다는 걸

진짜로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