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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Aug 29. 2020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마흔둘에 학부생

미대 진학은 육아에 매어있던 지난 10년간 막연히 그려온 내 오랜 꿈이었다. 


작년 가을 드디어 막내가 프리스쿨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직 줄줄이 한참 손이 가는 나이이고 나가면 왕복 최소 한 시간 거리의 외진 동네에서 일 보러 나가면 하루가 훌쩍, 그 와중에 살림과 가드닝, 아이들 activity 기사 노릇과 내 몫의 집안일은 그대로였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생긴 오직 ‘혼자’만의 몇 시간은 당장 고시 공부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육아를 위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둔 건 나의 결정이었고 공부하겠다는 남편과 미국에 온 것도 함께 의논했으며 아이를 줄줄이 셋이나 낳은 것도 나의 선택이었으니 누굴 질책하거나 생색낼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인생이라는 게 꼭 계획대로 흘러가던가.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오며 버거운 현실에 지칠 때면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원망한 적이 왜 없었겠는가. 때로는 원해서 때로는 해야 해서 (선택이었건 의무였건) 가족을 위해 헌신한 시간이 있었으니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살아보리라. 마침 faculty 가족이라는 신분으로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가 있었으니 재정적으로 부담이 없었고 미국에서 이미 학부를 졸업한 터라 언어나 성적 등 따로 준비할 것도 많지 않았으니 수고한 나에게 주는 상이랄까? 이참에 학위를 받고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헐....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의 야무진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내 학부 전공은 Economics(경제학)라서 사실상 미술 관련 과목이 전무해 대학원 과정은 불가능했고 학부로 편입해서 파트타임으로 남은 학점을 채우고 학위를 마치려면 최소 4-5년은 예상되었다. 무엇보다 대학을 졸업한 게 2002년이었으니 자그마치 20년 전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부엌과 놀이터에서 보낸 나에게 새롭게 만난 캠퍼스는 마치 영화 Back to the future 2(심지어 그 영화의 미래는 2015년이었다)에서 미래에 도착한 주인공이 된 듯 낯설기만 했다.


원서 접수부터 모든 과정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수강 신청, 이수 학점 확인, 어드바이저 미팅 등 이어지는 모든 절차가 앱을 통해야 했다. 특히나 올해는 팬더믹으로 인해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이 되어 전화는 불통이요 대면조차 되지 않으니 난 매일 생전 처음 보는 앱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건 왜 안되지', '저건 또 뭐지', '내가 이렇게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이었던가', '여태 무얼하며 살았나' 밀려오는 회환과 싸우기를 며칠,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시작도 전부터 난 이미 지쳐버렸다.


syllabus조차도 번역기 없이 읽을 수 없는 웃픈 노학생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쏟아지는 이메일을 미처 확인도 못했는데 20년 동안 단어도 새로 생겨났는지 한줄한줄 단어장을 찾아가며 읽어야 하는 책과 참고 문헌들,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와 퀴즈 일정이 촘촘히 나열된 syllabus를 읽어 내려가다보니 자신감 충만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자꾸만 위축되고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이번 학기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갈지도 불투명한 요즘이다. 타운 맘 카페에서는 매일같이 교육과 의료 시스템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아이들의 가을 activity 일정은 하루걸러 새로운 공지 사항을 보내온다. 세끼 돌밥,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은 그대로인데 큰 놈과 작은놈은 늘 하던 대로 싸웠다고 쪼르르, 한바탕 혼내고 나면 막둥이가 똥 닦아달라고 부르고 겨우 좀 앉을라 하면 책 읽어달라, 배고파, 어디 아파 온종일 졸졸졸 붙어있는 아이들이 나의 현실. 궁뎅이 붙일 시간도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막내를 재우고 나면 10시. 그제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큰 놈이 슬쩍 옆에 와 앉는다. 지난 봄 이후로 한 공간 안에서 온 가족이 부대끼다 보니 함께 하는 중에도 그 마음엔 빈공간이 생겼는지 예전보다 더 자기만 봐주는 둘만의 시간을 원한다. 그렇게 또다시 날 위한 오늘의 시간은 내일로 미뤄졌다.


며칠 동안 현실을 마주하면서 점점 돌덩이 얹은 듯 답답한 마음으로 돌덩이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씨름하고 있을 때 건건이 와서 끊어놓는 아이들에게 급기야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엄마도 이제 엄마일을 하게 해 줘. 지난 10년 동안 엄마는 늘 너희 옆에 있느라 책 하나도 제대로 못 읽는 사람이 되었다구. 스스로 먹고 입을 수 있을 만큼 컸으니 이제 너희가 엄마를 도와줘야지.


그 순간 간신히 붙잡고 있던 도전에 대한 의욕은 무너져 버렸다.

내가 이거 해서 당장 취직을 할 것도 아니고 

몇 년이 걸릴지, 마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은데

애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게 당연한 이때에 감당하지도 못하는 일을 벌이는 게 내 욕심 아닌가.

그리고 그동안 수없이 동일한 이유로 잠시 미루고 미루다 10년을 미뤄온 나의 삶을 생각했다.


삶의 모든 과정이 그렇듯 우리의 선택은 결국 우선순위에 의한 결정이 아니던가.

엄마가 되고 나서 오롯이 나를 위한 일들은 언제나 뒷전이 된다. 아니 그때는 그것이 내가 원한 선택이었고 모두를 위해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매번 우선순위에 밀린 마흔둘의 나는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조금 나만을 위한 욕심을 내보고 싶다.


죽지 못해 산다는 절박함이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

공부하는 동안 남편은 종종 하소연하듯 말했다.

나라고 이게 하고 싶어서 하겠냐 나도 힘들다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하는 것이다.

그랬다. 남편이 그 긴 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힘은 목표에 대한 열정과 끈기가 아니고 돌아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막다른 골목이라는 절박함은 때로 포기하지 않을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죽지 못해 산다는 말처럼 사실상 희망적인 말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 꼭 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가 필요하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한 명분이 아닌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이유가.

나만을 위한 하찮은 욕심을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순위에 놓고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아 내고야 마는 비장한 각오로 버텨낼 이유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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