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대학생의 첫 학기
난 성실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남들 다 중고딩 때 끝내고 정신 차리는 대학 시절,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온 것처럼 대학 시절 나의 방황은 길고도 암울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고민하기엔 난 너무 외로웠고 주어진 하루를 흥청망청 내던지듯 살았다. 운 좋게 넉넉한 형편에 좋은 환경에 자라 유학도 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지만 늘 그랬기 때문에 감사함조차 몰랐던 그 시절의 나는 학생에게 주어진 본분인 공부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정말 어이없게도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건 더 이상 전공 정하기를 미룰 수 없을 시점에, 그나마 졸업까지 이수해야 할 필수 과목이 가장 적을 걸 고른 것뿐이었다. 아마도 이름에 경제 붙었으니 나중에 취직할 때 어디에나 무난하게 갖다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막연한 기대와 함께 말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숫자에 관심도 없고 경제 뉴스 한번 본 적이 없으니 전공과목이 흥미 있었을 리 없다. 전공과목은 B+ 이상 받아본 적이 없고 교양 과목으로 빵구나는 학점을 겨우겨우 메꾸며 졸업한 나의 학부 성적표는 4.0 만점에 2.67이라는 비루한 숫자를 남겼다.
그런 내가 마흔 줄에 새로운 공부를 해보겠다며 스무 살 내기들과 학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니 인생은 참으로 살아도 모를 일이 아닌가. 미술에 대한 작은 꿈을 품고 드로잉부터 차근차근 배우며 예술혼을 불태우리라 새 출발에 걸었던 기대는 코로나 여파를 직통으로 맞았다. 대부분의 스튜디오 수업은 인원을 대폭 줄여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수업 온/오프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 개학이 계속 미뤄지고 있었고 설사 오프라인으로 오픈한다고 해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 지난봄처럼 언제든 닫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했다. 이번 학기, 킨더를 시작하는 막둥이를 포함해서 한창 손이 가는 초딩 3명을 집에 둔 엄마가 학교에 가서 스튜디오 수업에 집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필수 과목 중 일단 온라인으로 수업이 가능한 교육학과 미술사 두 과목을 등록했다.
사실 난 학부를 이미 졸업했고 대학원 과정이 아니라 다른 전공으로 학부 학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서 Pass만 하면 될 뿐 성적은 큰 의미가 없긴 하다. 그러나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스스로 이 엄한 과정을 선택한 만큼 지난 대학 시절, 불성실했던 나의 젊음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한 줄 걸러 단어장 찾아가며 매일 밤 눈알이 빠지도록 컴터를 끌어안고 넷째를 낳는 듯한 산고 끝에 미술사 첫 과제를 냈을 때 뿌듯함이란. 영어로 페이퍼를 써서 낸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언가 새롭게 알게 된 지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게 된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 호기로운 각오는 과제 평가의 첫 문장에 와르르 무너졌다.
My comment on your proposal is mostly about the grammar.
(중략)
I expect that your idea is more profound than which is written in English. I recommend you to visit writing center to improve your English.
Ding!
Grammar? 아니 이게 무슨 영어 수업도 아니고 미술사 수업에 관련 내용도 아닌 영어를 문제 삼다니! 점수를 떠나 기분이 확 나빴다. 쫌만 기분 상하면 인종 차별이라고 발끈하는 사람들에게 괜한 자격지심이라며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던 나는 이거야 말로 인종차별이라며 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대학 4년을 다니면서도 학교 안에 international student를 위한 writing center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나는 생전 처음으로 writing tutor를 신청해서 1학년 학생들에게 관사를 쓰는 법부터 새로 배웠다. an을 a라고 잘못 썼다가 a, e, I, o, u로 시작하는 단어 앞에는 an을 쓴다는 성문 종합 영어에서 배운 기초 문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들을 때면, ‘하, 이 나이에 이거 왜 해야 해’ 자괴감이 들었다.
교육학은 한술 더 떴다. 그림 그리는 것 좀 배울라고 시작한 건데 온라인 수업 선택지가 몇 개 없어서 듣게 된 필수 과목 중 하나인 교육 개론. 어차피 미국에서 애들 키울 것이니 미국 교육에 대해서 알아두면 머라도 도움이 되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이 수업은 미국 교육에 대한 수업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질문이었다. 오만 사회 뉴스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불평등에 대한 칼럼들, 좀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낼 수 없어서 10년째 드라마 한 편 못 보고 있는 나에게 주마다 토론 주제로 주어지는 2시간짜리 영화들이 너무 버거웠다.
참 좋은데… 다 좋은데… 이걸 20년 전에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고작 두 과목 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데 대한 기쁨보다 밀려드는 부담과 시간적 한계에 쫓겨 이걸 계속하는 게 맞나 매일 밤 밀려드는 회의와 싸웠다. 그리고 Thanksgiving이후, 나의 final기간이 코로나 증가세로 remote로 전환된 아이들의 홈스쿨과 겹치면서 갈등은 최고에 이르렀다.
온라인 수업 중간에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들락거리면 빽, 과제하는 중간에 아이들이 싸우면 빽, 멀 좀 할라치면 부르고 한창 하고 있는데 또 부르고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심지어 막둥이가 물을 흘리고 물건을 꺼내는 등 일상적인 도움이 필요한 일에조차 나는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 무엇보다 본인도 학생들 final준비로 바쁘셨던 남편에게야말로 ‘너 공부하는 동안 난 아이들을 혼자 키웠는데 지금 일한다고 방에 처박혀 애 똥 한 번을 안 닦아주냐’ 부글부글 울화통이 치밀었다. 하루종일 들썩거리다 지친 하루를 마무리 할 때면 '내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 난리인가'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적이 나왔다.
비록 두 과목이지만 평생 첫 올 A+
미술사 최종 과제였던 나의 온라인 전시회는 최우수 3개 작품에 선정되었고 영어가 문제라던 작품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은 평가를 받았다.
"OOO's project on nature in art, because of its almost poetic approach to art history"
스크린에 찍힌 성적을 확인한 순간 울컥, 눈물이 났다.
전업 주부로 집에 머물며 아이들과 지낸 후 처음으로 받아본 평가였다.
육아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않는 과제이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물은 뾰족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이 비뚤어진 모습을 보일 때면 마치 내 탓인 것 같은 죄책감에 갇히곤 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클수록 그들의 성과가 내 성과인 듯 집착하는 엄마들의 마음엔 어떤 식으로든 살아온 삶의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갈증이 있을 것이다.
같은 두려움을 안고 길고 긴 육아의 끝에 혼자만의 새로운 여정을 선택한 나에게 힘겨웠던 2020년을 마치며 ‘수고했다. 수고 많았다.’ 누군가 전해주는 위로의 메시지로 느껴졌다.
그러나 누구나 저마다의 ‘이 나이’에 ‘이 와중’을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그러니 애초에 ‘적절한 와중’이라는 게 있을까.
꾸역꾸역 겨우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엄마 학교 왜 다녀?’, ‘엄마 무슨 공부해?’ 묻는 아이들에게 적어도 엄마가 성실하게 마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비록 적절한 와중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첫 단추는 꿰어졌다.
해결되지 않는 부부간의 불화, 사춘기를 맞는 아이, 지난 인생에 대한 회환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아직도 나의 인생엔 아무리 노력해도 통 결실이 보이지 않는 산적한 과제들이 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했던가.
공부는 가장 쉽지 않다. 아니… 사실 더럽게 어렵다.
그러나 내 노력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학업을 통해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인생의 과제들 또한 지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기를 기대하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