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처량함의 한복판에 서서
우연히 이 그림을 보고 마시던 와인을 뿜는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그랬다.
내 꿈은 현모양처였다.
고 3 때, 장래 희망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정갈한 글씨로 현모양처라고 썼다가 엄마가 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ㅇㅇ이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꿈이 없네요"
중고등 내내 최상까지는 아니어도 늘 상위권이었던 성적에 우리 집 1남 2녀 중 뭐든 똑 부러졌던 나는 엄마의 기대주였기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는지 그날부터 틈만 나면 근심스레 'ㅇㅇㅇ야 너는 왜 하고 싶은 일이 없니'라고 물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꿈을 썼는데 왜 없다고들 하지?
난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 대한 분명한 꿈이 있었다.
그게 가정 불화에 따른 결핍이었는지 동화책에서 심어준 환상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에는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를 꿈꾸는 로맨티스트였고, 어른이 되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토끼 같은 자식 줄줄이 낳아 사는 아름다운 삶을 늘 그려왔기에,
그것은 대충 적은 답이 아니라 오래도록 꿈꿔온 나의 장래 희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유학을 갔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한국에 돌아와 직장 생활을 하며 진짜 세상을 배웠고 그때그때 새로운 목표와 꿈을 향해 나아가며 어른이 되어갔다. 저 푸른 초원과 그림 같은 집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왔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항상 지혜로운 아내, 따뜻한 엄마의 모습에 대한 이상이 있었다.
7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수많은 직장맘을 보아왔다.
직장에서는 가급적 가정사를 언급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지만 '애보기 싫어 나왔지', '주말이 제일 싫어', '밥 안 하니 살 것 같아' 라며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이 꽤나 쿨한 듯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푸념을 종종 보고 들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애 키우기 싫으면 왜 낳았으며 살림이 싫어 나왔다니, 직장이 호구인가 왜 저런 말을 하지? 가정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던 20대의 싱글녀에게 그 농담은 하나도 안 웃기고 안 부럽고 때로는 측은하고 솔직히 볼썽사나웠다.
그땐 참 몰랐다.
그들이 나보다 못한 여자이고 엄마이고 인간이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본인이 선택했지만 팍팍한 세상살이, 자조 섞인 농담들이 고단한 일상에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는 걸. 난 정말 정말 몰랐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겨 다니던 대학원을 그만두겠다 했을 때, 아이를 낳고 복직하지 않겠다 했을 때, 엄마는 극구 만류했다.
"나는 그러지 못해 그렇게 살았지만, 넌 할 수 있는데 왜 그걸 놓아버리니? 제발 네 것을 지켜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것이 무엇이며 아이는 자라는데 사랑하는 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보다 더 귀한 일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난 참 뭘 몰라도 한참을 몰랐다.
그렇게 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전쟁 같은 시절을 지나왔지만 가족을 이루어가는 기쁨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컸다. 내가 지쳐 보이고 버거워할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하여간 너는 예전부터 현모양처 어쩌고 하더니 이게 모니..."
그럴 때면 난 발끈해 물었다.
"그게 왜?"
"야, 애 낳고 엄마 되는 건 누구나 하는 거야. 그게 무슨 꿈이야?"
"그래? 그런 엄마는 엄마가 현모양처라고 생각해?"
라고 항변했던 나는 그 오랜 꿈을 이뤄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지쳐버렸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겉보기에는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지만 남편과는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었고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를 뿜어내는 두 아들은 툭하면 엄마 나빠, 엄마 미워, 불공평해, 어차피 이해 못하잖아 등의 기. 승. 전. 엄마 탓을 쏟아낸다. 무엇보다 가정을 돌보는 것이 지상 최대 과제이자 삶의 이유였던 나에게 이곳이 퇴근이 없는 숨 막히는 일터로 느껴지고 끝없는 요구와 소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면, 이제야 자신이 그토록 지켜온 가정을 하찮은 농담으로 홀대했던 지난날 직장맘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내가 꿈꿔온 가정은 이게 아닌데,
내 40대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방황하던 마음을 붙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묵혀둔 이야기들을 꺼내며 20대에 운영했던 블로그를 찾아보았다.
- life as
- 남과 여
- through fiction
- about Sandew
으로 나누어진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좋든 싫든, 지난 10년간의 나의 삶이 그러했다.
아무리 나누려고 해도 나눌 것이 없는 이 가정 안에 갇힌 나의 모습. 아이들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그것이 나의 삶이고 나의 남녀관계이고 나의 소설이자 수필인 삶을 살아왔다.
지금 와 겪는 어려움의 원인이 삶의 일부인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좌절인지, 육아에 지친 전업맘의 한계인지, 서로의 감정을 돌보지 못한 부부간의 불찰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고 살아온 결과가 아니던가.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그 가정의 단단한 기둥으로 세워지고 늘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는 아이들을 양육하며 함께 성장해가는 것은 아름답고 숭고하지만 더럽고 치사한 수많은 세월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사랑'은 가슴이 터질 듯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애틋한 감정뿐 아니라 바래고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진 감정조차도 '사랑'의 한 모습이지 않던가. 어린 시절 꿈꿨던 현명한 아내, 지혜로운 엄마가 되는 길 또한 아름다운 꽃길이 아니라 수없이 나를 깎고 인내하는 외로운 과정임을 이제야 알았지만 가는 길이 달라졌다고 목적지가 바뀌는 건 아니다.
그러니, 꼴도 보기 싫은 님의 아내이자 웬수같은 자식들의 엄마인 40대의 나의 장래희망은 여전히 현모양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