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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Jan 09. 2022

마음에 발라주는 빨간약

이혼, 그 참담한 시간의 기록 #1

나의 꿈은 가정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사랑하는 남편과 토끼 같은 자식 낳아 지혜로운 아내, 따뜻한 엄마로서 한평생 살다 가는 것.

그것은 나의 꿈이자 목표였고 지난 10년간의 계획이었으며 내 삶의 전부였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뤘고 둘에서 셋으로, 그 셋이 넷이 되고,,, 다섯, 아니 막뭉이까지 여섯으로 늘어가는 동안, 삶의 모든 과정이 그렇듯 예상치 못한 고난도 있었고 미숙하고 서툰 대처로 인한 크고 작은 굴곡 또한 적지 않았다. 실수 투성이 신입 사원이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대리, 과장으로 진급해 나가며 임원이 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듯, 나의 직장이자 삶인 이곳에서 나 또한 아이들 다 키워내고 평온하고 아름다운 산책길의 노부부의 모습을 그리며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구력과 경력을 쌓아왔다. 그러나 삶을 바쳐 일하고 명퇴 또는 정리 해고 등으로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 종종 토로하지 않던가. 한 때 나의 전부였던 명함은 그 직장을 떠나는 순간, 나에게 종이조각 이상의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엄마와 아내로서 내가 살아온 세월과 쌓아온 경력은 어디까지나 내가 그 자리를 지킬 때 빛날 뿐이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순간, 아침마다 뚝딱 차려내는 아침상과 4세트의 도시락과 간식, 아들들과 남편의 전담 미용사, 계절 따라 해마다 맞춤으로 수선되는 옷들, 최소 몇 가정부터 최대 몇백 명까지 손님을 치러낼 수 있는 역량, 집안 구석구석 배인 나의 손길과 정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최소한 직장을 떠난 이들에겐 그래도 돌아갈 가족, 허탄한 마음을 품어주고 그간 수고 많았다 지난 세월의 노고를 인정해줄 이들이 있을진대, 그 가정을 스스로 깬 사람에게 남은 건 공허함과 갈 곳 잃은 마음뿐이다. 무엇보다 날 무너지게 하는 건 삶의 목표와 성과를 잃었다는 상실감보다, 나의 지난 시간과 노력이 실패했다는 패배감보다, 그 삶의 대가로 남겨진 아이들, 한때는 나에게 축복이자 삶의 목표였던 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이다.


우리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걸 인정한 이상, 파경의 원인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당연히 회복에 대한 가능성도, 의지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적인 이혼 또는 실질적인 별거를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건 결국 아이들에게 ‘가정’이라는 틀만큼은 결단코 깨고 싶지 않은 마지막 미련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아이들이 클수록 이민자로서 남(?)의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의 한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터였다. 이동이 많고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대도시였다면 조금 달랐을까. 사실상 불화의 원인 중 하나였던 우리가 사는 타운은 유독 토박이 동네라서 일가친척이 한 동네에 모여 살아 친척들이 곧 친구요, 그들의 부모들, 심지어 조부모까지도 이 동네 출신인 경우가 많다. 원래 미국 문화가 가족 중심이긴 하지만 졸업식, 애들 스포츠 게임, 생일 등 일상적인 행사뿐 아니라 특히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며칠씩 파티를 하는 땡스기빙과 크리스마스 연휴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이민 생활의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곤 했다. 미국에 온 지 10년이라지만 학위 하느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이곳에 정착한 지 겨우 4년째, 그중에 2년을 코로나와 함께 단절되어 보냈으니 이곳은 아직도 처음 온 그날처럼 낯설기만 하다. 더할 나위 없이 이방인인 우리에겐 정말 우리뿐이었다. 그러니 서로 똘똘 뭉쳐 살아도 시원찮은 마당에 이 가정마저 반으로 쪼갠다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다.


한국이었으면 그 결단이 조금 수월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엄마 아빠라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깨지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등 또다른 범주의 가족이 있다는 건 아이들의 박탈감을 어떤 식으로든 일부 채워줄 수 있을거라 기대할 수 있으니까?

하나마나한 경우의 수를 따지며 머뭇거리는 동안 가정은 망가질대로 망가졌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니 내가 어리석었다. 서로의 관계가 이 지경까지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을 때에는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성숙함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고, 그 모든 과정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아이들의 마음은 너무나 찢기고 휘갈 켜져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서 가정을 지킬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관계를 끝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전쟁은 오히려 연인들 간의 투닥거리는 사랑싸움으로 느껴질 정도로 더럽고 구역질 나는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는 전쟁 말이다. 무엇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일한 나의 동반자이자 친구였던 사람이 적으로 돌아섰을 때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보고 있다.


그동안 흘렸던 눈물과 증오, 원망, 배신감 따위의 감정은 사치인 이혼의 과정은 냉혹한 현실이다. 지칠 대로 지친 내 감정을 마주하는 순간 무너져 내릴까 봐 저 구탱이 어딘가에 절대 삐져나오지 않도록 꾹꾹 눌러놓고 매일 차갑고 냉정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요즘,


생뚱맞게도,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모두를 울렸던 고두심이 빨간약을 가슴에 바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WMK4yHeKAkc

내가 마음이 아퍼가지구…이거 바르면 괜찮을거 같애 가지구…

오늘 하루도 가열하게 외면하고 지켜낸 내 마음이 이 장면에 무너진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같이 나이를 먹어 단단하고 두터워져서 웬만한 일은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살아보니 이 마음이라는 놈은 어째 갈수록 거꾸로 유릿장처럼 얇고 약해져서

툭하고 금가고 깨지고 심지어 무언가 다가올까 무서워 덜덜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쫄보가 되어 버렸다.



누군가 말했다.

이혼은 단단하게 맞붙은 두 장의 창호지를 떼내는 것과 같아서

결국은 양쪽 모두에게 흉측하고 너덜너덜한 상처를 남기게 된다고.


길고 지리한 전쟁의 한 복판에서,

그 찢기어질 창호지 조각의 과정에 들어섰을 뿐인데 속절없이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현실에 지칠 때, 나에게 도전과 영감을 주었던 그림도 그릴 수 없었고

의사 선생님도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고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응답이 없으시니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철저하게 혼자라고 느낀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한바탕 울어재낄 기운조차 없어

그저 하루하루 적어 나가는 내 마음의 소리가

더디지만 조금씩 회복하게 해주는 빨간약이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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