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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Mar 11. 2022

신파가 필요한 순간

멋이 중헌디

전쟁 영화 다음으로 선호하는 건 재난 영화다.

전쟁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펙타클한 파괴적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보다는

인재이건 자연재해이건 한계를 넘어서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이야기는 매번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아무리 한국의 CG 기술이 이제는 세계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재난 현장의 생생함은 그 스케일 면에서 아직까지는 헐리웃이 압도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식 재난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이제는 공식처럼 자리 잡은 다소 조악해 보이는 눈물 짜내기식 설정이랄까. 때로는 그 억지스런 설정이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결국 사람 사는 얘기가 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인생사가 아닌가.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삶을 살며 막장 드라마를 보듯, 진부한 줄 알면서도 울라고 만든 장면에 울고 웃자고 만든 장면에 빵빵 터지며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달여간의 한국행 후 미국에 돌아온 지 한 달 반이 조금 지났다.

잠시의 휴전(?)이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정리하고 적정선에서 합의를 진행하기 위한 휴식기가 되어주길 바랬지만 원만한 협상 테이블을 놓기엔 아직도 깨진 파편의 조각이 사방에 가득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아직도 지킬게 남았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여자는 다시 시간을 벌겠다며 평생 처음으로 두 아이를 남겨놓고 막내와 함께 사실상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다.


변명 같지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땐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더 나아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나빠지기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우겨본다.   


그리고 한국행 비행기에서 ‘싱크홀(2021)’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4290)

자, 웃으세요 판 깔아주는 한국식 코메디,

너무나 드러나는 복선,

재난 상황에 몰입하기에는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효과음과 농담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신파.

무대만 싱크홀로 옮겨왔을 뿐 그동안 봐온 ‘해운대’나 ‘감기’, ‘백두산’, 심지어 좀비물인 ‘부산행’까지 떠올리게 되는 더도 덜도 아닌 딱 비슷한 느낌의 가족 영화였다.


하루아침에 가족이 생이별을 하고,

(물론 그들은 원래 화목한 가정도 있었고 깨어진 가정도 있었지만 이 재난을 계기로 회복하게 된다)

생사를 오가는 고비를 겪는 동안 드러나는

가족, 사랑, 우정,,,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

전쟁이든 재난이든 극한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상황과 스케일만 다를 뿐, 사는 게 참...별거 없다.

이 모든 것을 갈아 넣은 에피소드를 보며

아,,, 또 신파,,, 뻔한 신파,,, 냉소적인 감정 뒤로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자, 우세요 라는 장면에서 실컷 눈물을 쏟고 나니,

더 이상 바닥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겐

아직도 더 잃을 것이 남아 있었다.


문득 그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최악이라고 느껴지는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난 그 숭고한 희생을 감당할 수 있을까.


때로 신파보다 더 신파적인 우리 삶은

그렇게 신파가 필요한 순간을 맞기도 한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멋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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