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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Mar 11. 2022

지금, 도망가는 중입니다.

이혼, 그 참담한 시간의 기록 #5

피 같은 아이들을 남겨놓고 또 떠나는 길

가는 내내 얼마나 속으로 눈물을 삼켰는지 모른다.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쏟고 싶지 않아서

꾹꾹 눌러 담아 삼키는 목소리로,

 지내고, 싸우지 말고, 아빠한테 혼나지 .’

라고는 돌아서서 아직도 어리둥절한 막둥이의 손을 잡아 끌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하…. 3개월 만에 벌써 다섯 번째 비행이라니…

짐 싸고 준비하느라 부산스럽게 구는 모습이 남겨질 아이들에게 남을까 봐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침부터 스키장에 가서 종일 스키를 타고 집에 와서 한상을 차려 로스를 구워 먹고

일주일 내내 기다리던 '싱어게인2'를 봤다.

보통은 /수에 나누어 1시간씩 보는  화욜인 내일은 엄마 가서 없으니까 월욜에 다같이 보자고

두 편을 한꺼번에 보고 나니 10시가 다 되었다.


다 잠들고 혼자 남은 밤.

혼자서 셋을 데리고 다니던 시절에 비할 순 없지만

아무리 막둥이와 나, 둘만의 짐이라고 해도

최소 2개월, 혹은 3개월 계절이 세 번이 바뀌는 짐을 싸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

위층 아래층을 부산스레 오가며 짐을 싸다 보니 비로소 떠남이 실감이 난다.

3개월의 옷을 챙기고 학교 갈 때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코로나 검사 결과와 여권, 면허증, 카드, 서류들을 챙겼다.

1시 반에나 잠들었나.

마지막 짐을 마무리하느라 5시 반에 일어났더니 비행기가 이륙하는 새 깜빡 잠이 들었다.


어느새 허기가 진다.

아이들 떼놓고 온 엄마가 무슨 밥이랴,

식욕이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인간의 생존본능은 모성을 뛰어넘는가.


비빔밥 한 그릇을 꾸역꾸역 다 먹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르다는 의식은...

나 자신을 동물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이어야 할 이 순간에, 동물적인 감각을 느끼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다.


다시 시작되었다.

안 가봐서 모를 길.

다만 선한 길로 이끌어주시길.

코로나는 10만을 껑충 뛰어넘어 16만이라는 최대치를 경신한 아침이었다.

(정점이라는 35만을 찍은 지금은 저 숫자도 미미하게 느껴지지만 하루하루 확진자가 두배로 뛰는 걸 지켜보는 당시에는 남편의 반대에 극구 아이를 데려가는게 맘에 걸려서 전전날까지 표를 사지 못하고 망설였었다)

이혼 위기의 감정의 지옥을 떠나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창궐한 또 다른 지옥으로 도망가는 느낌.




뜬금없이 영화 '신세계'에서의 황정민의 대사가 떠오른다.

드루와, 드루와...

다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오기로 버티던 그 손짓이 말이다.

(영화의  장면은 너무 끔찍해서 차마 메인 화면으로   없어서 비슷한 손짓의 다른 장면으로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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