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또는 시술 비하/권장 절대 아님
한국에 나올 때면 종종 피부과를 찾는다.
거울 볼 여유도 없고 밖에 나가봐야 맨날 보는 그 얼굴에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삶을 사는 미국의 삶에서는 자연스레 내 얼굴에 대한 관심도 덜해지는 편이다. 물론 젊어서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가꾸는 데 열심이었지만 대부분의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그렇듯이 상대적으로 자신을 꾸미는 데는 좀 소홀해졌달까. 운동과 식단 조절로 건강을 관리하고 세상 돌아가는 트렌드에도 관심을 놓지 않으려고는 노력하지만 아이들이 크는 걸 보면서 세월에 따른 노화와 같은 변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국에 나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다 보면 분명 내 또래인 거 같은데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에 반짝반짝 빛나는 혈색과 팽팽하고 쫀득한 피부를 가진 아가씨 뺨치는 엄마들이 너무 많다. 주변에서, '우리 이제 관리해야 하는 나이야', '시술 말고 수술같은 과감한 도전이 필요해',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나 보다, 오가다 보는 광고판에 눈길이 가고 주사 몇 번 살짝 맞아볼까 혹은 좀 당기거나 멀 집어넣어야 하는 게 아닌가 피부과를 찾게 된다. 그러나 내가 얼굴로 먹고사는 연예인도 아닌데 어차피 몇 달 미룬 들 언젠가 생길 주름과 잡티가 아닌가, 흘러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듯 늘어가는 주름 또한 그 세월의 흔적이려니…솔직히 주름 하나 늘 때마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글타고 크게 연연하거나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다.
40대 중반에 이르고 보니,
이제는 인위적인 시술보다 살아온 삶이 얼굴에 더 드러나는 나이가 되었다. 삶이 지친다고 느껴진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구겨진 얼굴로 구겨진 하루하루를 살아온 내 얼굴을 마주한 어제, 오랜만에 찬찬히 마주한 내 얼굴 구석구석에…. 너무나 구깃구깃 쪼글쪼글 처지고 무기력한 내 삶이 거기에 다 있었다.
그래,
구겨진 삶의 주름은 내가 못 피더라도
내 힘으로(돈으로) 필 수 있는 주름이라도 펴보자.
집 앞 피부과를 예약하고 이마에 보톡스를 두어 방 맞았다.
쭈글쭈글 힘없이 늘어져있던 이마가 시간이 지나면서 빵빵하게 당겨지기 시작한다.
모든 피부과 의사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처럼,
아무리 잡아당기고 펴 놓아도 이미 생긴 주름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더 깊게 패이지 않도록 일시적으로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거면 충분했다.
우리의 삶은 때로 그게 잠시 뿐일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붙잡을 수 있는 게 필요하기도 하다.
그 쉬어감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더라도 다음에 생길 주름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단, 우리의 얼굴은 쓰던 표정, 쓰던 근육을 그대로 쓰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
때문에 근본적인 습관을 교정하는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자주 쓰는 근육을 마비시켜놓은 보톡스의 부작용은 안 쓰던 근육, 즉 없던 곳에 새로운 주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근본적인 습관이 바뀌지 않는 한, 보톡스는 절대 주름에 대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을 닥친 문제부터 해결하거나 혹은 피하면서 돌려막기 식으로 버티고 있는 내 삶과 꼭 닮았다.
주름 폈다고 좋다고 계속 맞다간 내성 생겨서 망하듯이,
언제까지 외면하고 묵혀둘 수 없는 이 삶의 문제도 결국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되기를....바래본다.
그러니 부디.. 이 약효가 좀 오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