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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Mar 29. 2022

예수님을 아세요?

알기야 알죠... 친한 건 아니고..

자매님~ 예수님을 아세요?


일대일 만남을 시작하던 날, 집사님으로부터 받은 첫 질문이었다.

예수님.. 알죠.. 당연히 들어봤죠.

그런데 집사님의 질문은 마치 옆집 아무개랑 아는 사이냐고 묻는 것처럼 들려서, ‘글쎄요… 알기야 알지만 그렇다고 잘 안다고 할 순 없고…’ 라며 우물쭈물 했다.


등록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16주간의 과정 중 4주만 마치면 된다고 했지만 그게 말이 쉽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지 않은가.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온전히 나만을 위해 본인의 시간을 내서 봉사하는 것인데, 4주 딱 채우고 ‘등록했으니까 이제 그만하겠어요’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첫날 만남을 갖는 순간, ‘아차.. 난 여기 엮였구나…’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후로 16주 동안...

나의 일대일 양육자였던 집사님은 한마디로 지. 독. 한. 분이었다. (난 지금도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곤쥬는 어려서 지독히도 낯을 가려서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시면 그분 가실 때까지 우는 아이였다. 친정 엄마 외에는 누구에게 맡긴다는 건 엄무도 못 낼 일이라서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지 나의 삶은 집콕 육아 그 자체였다. 친구들을 만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고 취미 생활은 어림 반푼 어치도 없었는데 매주마다 두어 시간의 자유 시간을 낸다는 건 너무 큰 부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원래 알던 분을 소개받아 잠시 곤쥬를 맡길 수 있게 되어 아침 10시에 그분 댁을 찾았다. 두어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커피 한잔 앞에 놓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 2시가 넘어 끝났다. 바쁜 마음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집에 오던 길, ‘머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사람을 몇 시간을 붙잡아 놓는 거야! 내가 다시는 이거 가나 봐.’ 걸음을 재촉하며 씩씩거렸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다음 주에도 난 10시에 가서 2시가 넘어 돌아왔고 넉다운이 된 채 침대에 뻗어 ‘아.. 이거 왜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난 또 그 집 식탁에 앉아 있었고 심지어 집사님 댁은 너무 추워서 냉커피가 된 커피에 손을 비빌 때마다 ‘하.. 불 좀 올려주시지, 정말 지독하시네’ 내심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만남을 이어갔다.

그렇게 16주가 지났다. 

언제부터 그렇게 성실하게 살았다고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숙제를 밀리지 않았다. 또 유아 예배를 간다는 핑계로 성인 예배를 빼먹고 있었는데 본인의 주일 예배는 꼭 지켜야 한다고 하셔서 신랑과 교대로 유아 예배와 성인 예배에 참석하느라 주일은 종일 교회에서 보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도대체 머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을 그 시간 동안 평생 누구 말 그렇게 열심히 들어본 적이 있나 싶게 하라는 대로 다했다.


첫날, 기도 제목을 물어보셨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막연히 어머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실 때마다 나는 예수님 잘 모르는데 안 친한 친구한테 부탁하는 거 같아 못하겠더라며 이참에 나도 예수님이랑 좀 친해져 봤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한주 한 주 하나님을 알아가는 동안, 처음엔 ‘어.. 예수님 참 좋은 분일세’ 싶었던 마음에 조금씩 말씀이 새겨지고 어느새 그분을 향한 믿음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무심하고 이기적이었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지 않고는 그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는 한없이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기쁨인지 회개인지 모를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정말 뻔한 말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앞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으니 세례는 패쓰하겠다며 좋아했던 나는 첫 기도 제목이었던 난 이제 예수님을 압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다. 말씀을 읽고 변화하는 삶을 보며 이미 세례를 받은 남편도 다시 일대일을 시작했고 매일같이 술잔을 나누던 우리 집 식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주일에 고작 하루,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을 내어드렸을 뿐인데 몇 달이 지난 후, 우리 가정엔 생각지도 못했던 큰 축복을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지금처럼 화사한 꽃이 앞다투어 피기 시작하던 봄날, 난 하나님께 헌신을 고백하는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부르심을 외면한 채 방탕하게 떠돌고 있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불러주시고 사랑으로 안아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저와 신랑을 이끌어주신 집사님 부부께 감사드리며 이제 양육자 반에 입학해 양육자로서 일대일을 통해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동안 방황하는 저를 보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셨을 하나님의 사랑만큼 저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 뜨거운 눈물을 전할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지 않는 며느리를 품고 기도하셨을 부모님을 비롯해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 믿음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크고 넓게 자라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베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2011년 4월 세례 간증문에서)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속 해피 엔딩이 현실 속에서는 ‘그때부터 진짜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달콤 살벌 잔혹사인 것 처럼,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던 나의 신앙은 그 후로 수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때로는 내던지고 결국은 다시 주워 담으며 방황과 회개를 반복해왔다.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넘어졌다.

넘어질 때 상처가 너무 커서 어쩌면 일어날 의지조차 없이 널브러져 있는지 모르겠다.

기도하면 견뎌내라고 하실까 봐 기도의 자리로 나가지도 못하는 요즘,

그 뜨거웠던 첫 만남 이후 지금껏 내 삶을 이끌어오신 하나님과 나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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