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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Mar 30. 2022

술.친.소.

내 술친구를 소개합니다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친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때가 있다.


나에게 친구는 유익을 주는 사람이다.

온/오프라인으로 이어진 관계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워낙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넓히고 쌓는 관계 안에서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성격이라면 모를까,

나같이 관계를 쌓아가는데 품(?)이 많이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데 굳이 관계를 이어가는 건 시간과 감정의 낭비라는 생각이다.


유익이라는 말이 다분히 계산적으로 들린다는 것을 알지만 유익은 말 그대로 benefit이다.

어떤 형태든 나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누구는 맛집의 대가여서 만날 때마다 맛난 음식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누구는 베풀기를 좋아해서 머든 잘 사주고 나눠줘서 좋다.

누구는 정보통이라 얻어가는 정보가 많고

누구는 너무 웃기고 재밌어서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다던가

누구는 정신적 지주 같다고 할까, 늘 들어주고 지지해주고 안도감을 주는 지원자의 역할을 해주고

누군가는 데면데면 딱히 왜 만나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존재만으로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줘서 관계가 이어져 오기도 하니 유익이라는 건 꼭 정의할 수 있는 실체는 아니기도 하다.


나의 친구 관계는…

내 삶의 바운더리처럼 지극히 좁고 작다.

나름 유학생활도 하고 졸업 후에는 직장 생활도 솔찬히 했으며 그 와중에 두어 번 이직도 했기 때문에 그때그때 달라진 삶의 카테고리만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워낙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성향 탓이었을까. 각자의 삶으로 바쁜 중에도 여전히 나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결국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고 지금도 전화 한 통이면 만날 수 있는 (물론 내가 미국 가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동네 친구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고 하는 걸 보면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친구가 주는 유익은 ‘익숙함’이 가장 크지 않나 싶다. 그러다 보니 남아 있는 친구들은 겨우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러기에 더욱 하나하나가 소중한 손가락들이다.


누굴 만날 상황도 아니고 만나서 구구절절 사연을 풀어놓기는 더욱 꺼려지는 요즘,

그중 한 손가락을 만났다.


그녀는 나의 베푸이자 술친구다.

고등학교 내내 등하교를 함께 했던 아파트 뒷동 친구인데

고딩 때는 고시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한잔,

재수 시절 나이트에서 또 한잔,

심지어 유학 가서도 보스턴 옆 동네라 주말이면 또 한잔,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나누며 퇴근 후 한잔,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셨던 그 밤에도 한잔,

결혼과 출산을 겪는 동안 함께 축배를 올렸고,

내가 미국에 간 후로는 종종 나올 때마다 20년이 넘게 한결같은 한강변에 앉아 맥주 한잔을 들이켜곤 했다.


서로 따라주다가 이젠 각자 따라 마시는 어른이 됐고 아줌마가 됐고 엄마가 됐다.

함께 마시는 동안 연애사를, 인생사를 나눴고

여자 친구들이 그렇듯, 종종 감정이 상해 안 보고 지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그 모든 게 지나온 삶의 흔적이다.


유일하게 맘 편하게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그녀와

지친 가운데 어렵게 만나니 아마도 맘이 풀어졌나 보다.

내가 무슨 20 살인 줄 알고 이젠 아무도 강요 안 하는데 신나게 마시다가…

.............................

...........

......

.

다음날,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는데,

과하게 흥분하고 떠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찜찜한 기분??

어제 내가 무슨 실수했냐라고 물어보는 건 이미 안 한 지 오래다.

잊은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잊은 채로

우린 지난 술자리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 편인데,


전화가 왔다.

손가락: 괜찮냐,

나: 안 괜찮지. 어제 좀 취한 거 같애.

손가락: 너 ㅈㄹ취했지. 혼자 계속 웃고 흥분하고ㅋㅋㅋ

나: 그러냐, 기억이 없는데 안타깝네. 내가 요즘 웃을 일이 없는데…

손가락: 너 완전 웃었지.

그럼 된 거야

넌 기억 못 하더라도 니 몸 어딘가에 엔돌핀이 만들어졌다는 거니까.




ㅋㅋㅋㅋ덜 깬 술기운에 박장대소를 하다가 눈물이 날뻔했다.

엔돌핀을 만들어준 유익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친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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