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 도. 아.(차가운 도시 아줌마)인가
대학교 때 패밀리맨(The family man, 2000)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뉴욕 맨하탄, 최고의 비즈니스맨들이 모여 있는 월스트리스의 잘 나가는 사업가인 잭(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화려한 싱글로 맨하탄 한복판의 펜트하우스에서 세. 젤. 잘.(세상 제일 잘 나가)로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뉴저지의 시골 마을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사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 과정을 지나며 잭은 조금씩 변화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리뷰를 위한 글이 아니니 영화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31159 참고)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뻔한 클리셰로 도시와 시골(외곽이라는 말이 사실 의미적으로 더 가깝다고 생각함)의 삶을 비교해 보여 주는데 비단 가족 영화가 아니더라도 많은 곳에서 도시는 차갑고 냉정한 곳으로, 시골은 따뜻하고 정감 있는 곳으로 표현되곤 한다.
개인주의 나라에서 갖는 privacy의 가치
미국은 개인주의 나라답게 private 한 걸 엄청 좋아한다. 물론 미국에도 뉴욕, 엘에이 같은 대도시의 다운타운은 세계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빽빽한 아파트 숲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조금만 외각으로 나가면 높아야 3층이 넘지 않은 저층 건물들이 대부분인 지역에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럭셔리한대로 또는 평범한 대로 끝도 없이 펼쳐진 싱글 하우스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좋은 타운엔 종종 문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한없이 먼 집들이 보인다. 내가 사는 타운은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옆집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유독 나무가 많은 지역인데 그런 이유로 도심 외곽에서는 꽤 선호하는 타운이다. 우리 집은 길에서 집이 바로 보일 정도로 드라이브 웨이(driveway=집의 경계로부터 앞마당을 지나 거라지까지 들어가는 아스팔트 길)가 엄청 짧은 편인데 미국 사람이 아닌 우리에겐 그게 이 집을 고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타운에도 어떤 집은 이게 길인가 드라이브웨이인가 길 끝에 세워진 메일 박스가 아니면 그 안쪽에 집이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드라이브 웨이가 긴 집들이 있다. 그걸 보면 안 그래도 충분히 프라이빗한 타운에서 이렇게까지 프라이빗해야 하나, 이 사람들한테는 프라이버시가 침해받는 게 그렇게까지 비참한 일인가 보다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개인의 취향이야 그렇다 쳐도 드라이브 웨이가 길다는 건 사실 엄청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일단 거라지를 통해 나와야 하는 싱글 하우스 특성상, 자기 집 눈은 자기가 치워야 하고 당연히 길수록 일은 많아진다.(우리같이 겨울이 긴 지역에서는 이건 실질적인 비용과 수고를 요하는 꽤 큰 일이다.) 몇 년에 한 번씩 해줘야 하는 아스팔트 페이빙(드라이브 웨이의 아스팔트는 시간이 지나면 깨지고 주저앉기 때문에 개별로 몇 년에 한 번씩 새로 갈아줘야 한다)할 때 돈도 두 배로 들며
일상에서도 매일 애들이 스쿨버스 탈 때 한참을 걸어 나와야 하고 비 오는 날이나 한겨울에는 차로 길가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부득부득 그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private life의 가치를 높게 매기니 주택 산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에겐 낯선 가치의 세계이긴 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아파트의 삶도 불편한 점을 꼽자면 손가락이 모자란다.
기본적으로 공동생활이라는 건 늘 남을 의식해야 하는 생활이고 그 남의 범주는 나의 상식을 뛰어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아마도 예전엔 당연하게 느꼈을지 몰라도 이젠 나도 프라이빗 라이프 좀 살아봤다고 다시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면 새삼 불편한 것들이 눈에 띈다.
우선 애가 많다 보니 매일 세탁물이 쏟아지는데 세탁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못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비린내 나는 생선 함부로 못 구워 먹어,
바비큐 공간 따위는 애시당초 없고,
층간 소음은 조물주도 풀지 못할 영원한 숙제이며,
주차 전쟁은 또 어떤가,
옷 갈아입을 때마다 창문을 가려야 하고,,,
쓰다 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단점을 꼽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지만
그 모든 불편함은 결국 더불어 살아간다는 데에서 오는 감정이 아닌가.
그리고 그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 반대로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가장 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번잡한 삶의 문제들로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된 지가 꽤 되었다.
어떤 날은 초저녁에 뻗었다가 밤 11시에,
어떤 날은 다시 자려고 해도 죽어도 잠이 안 오는 새벽 2, 3 시에,
어떤 날은 포기하긴 좀 이르고 일어나자니 애매한 새벽 4, 5 시에 잠이 깨면
대책이 없다.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답답한 마음에 마루에 나왔는데
마루 통창을 통해 보이는 뒷 동에 몇 집이 불을 비추고 있었다.
이후로 새벽 어느 시간에 깨도 나와보면 어느 누군가는 일어나 있었고 처음엔 우연이었지만 어떤 날은 일부러 창밖부터 확인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밤들...노랗고 하얀 각양 각색의 불빛들이 나도 모르게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당신도 잠이 깼군요..
홀로 곱씹을 삶의 고민과 번민으로 잠 못 이루고 있는 건가요.
나는 그를 모르고 그도 나를 모르지만 그저 우연히 이 밤 같은 시간 일어나 있는 것 뿐인데, 누군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것 말이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간에도 또다른 누군가의 떠도는 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꽤 오랜시간, 아파트 숲을 벗어나 private life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똑같이 생긴 깍두기 조각 안에 갇혀 사는 듯한 삭막함 속에서 외려,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의 온기를 느낀다.
종종 도시가 그리운 나에게 아파트는….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