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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Apr 17. 2022

야구장에 간 아줌마

역대급 재미없는 인생 드라마

똑같은 걸 몇번씩이나 그걸 왜봐?

나에게 야구는 여느 스포츠처럼 관심 없는 공놀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니, 공놀이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관람에 통 관심이 없던 나에겐 집에서 스포츠 채널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시간과 삶을 낭비하는 것도 없어 보였다.

사회생활을 하며 두어 번 야구장에 갈 일이 있었다. 내 첫 직장이었던 두산에서는 해마다 큰 행사날이면 야구팀 선수들과의 만남 등의 이벤트가 있었는데 난 그때 홍성흔 선수를 실물로 영접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 무관심했던 지금 와 후회막심한 일인이었다. 두산을 나온 후에도 종종 팀 회식으로 야구장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회식을 왜 야구장으로 가냐며 그 시간에 맥주 한두 잔을 더 마시지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 야구

그런 내가 내가 야구를 보게 된 건 순전히 남편과 딸램 때문이다.

밖으로만 쏘다니던 내가 애 엄마가 되어 졸지에 방콕 육아를 하게 되었을 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야구를 보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2월 생이니 100일이 지나고 한숨 돌릴 즈음이 아마도 개막 시즌이었나 보다.

워낙 드라마나 예능 등에 별 관심이 없어서 멀 꾸준히 보는 편이 아니었는데 야구는 늘 같은 채널을 틀면 같은 시간에 진행되고 있었고 처음부터 보지 않고 끝까지 보지 않아도 이닝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으니 어느 날부터 나도 모르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첨에는 지금이 몇 회인지 아웃은 몇 개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보기 시작했는데 그런 내가 이 스포츠에 눈을 뜨게 된 건 결혼 전 친구들과 야구 모임이 있을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던 (사실 운동보다 술자리를 더 좋아했지만) 남편의 야구론 과외와 밤마다 열시청하던 아이러브 베이스볼 덕분이었다.


오호라…이 야구판에 인생이 있었네.

스포츠가 알고보면 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지만 다른 스포츠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야구는 그야말로 모든 게임이 나의 인생 드라마다. 때로는 지루하기 짝이 없고 마치 포기한 듯 보일 때도 있지만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주저앉으면 어김없이 위기가 오고 ‘야구는 9회 말 2 아웃부터’라는 진부한 표현처럼 다 끝난 줄 알았던 승부가 그때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때로는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고 때로는 치사하고 비열한 술수도 난무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사는 모습이 아니던가. 야구를 인생에 비유한 말은 나뿐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표현한 멋진 표현이 즐비하므로 각설하고 어쨌거나 똑같은 이닝이 9번 진행되는 동안 아웃카운트 세 개를 놓고 치고 던지는 야구는 정말 멋진 스포츠라고 믿는다.


한국의 프로야구던 미국의 MLB 던 직관은 언제나 나의 버킷리스트이다.

비록 야구를 보기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였지만 야구장에 들어서는 순간 난 매번 스무 살처럼 가슴이 뛴다.

stadium에 들어서는 순간, 아줌마의 가슴은 뛴다

역대급 지루~~함

그러나,

지난 주말 두산과 키움의 첫 경기는 내 직관 인생 중 역대 가장 지루~~~ 한 게임 중 하나였다.

(물론 베어스 팬 입장입니다. 히어로즈 입장에서는 기회 때마다 살려주고 건너 건너 이닝마다 야금야금 점수를 냈으니 아주 감질맛 나는 멋진 승부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미 개막전 한화와의 경기를 보며 올해도 변함없는 곰돌이들의 투지를 확인했고

1회 말 2사 1,3루에서 허경민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올렸을 때에는 ‘오늘도 쉽게 가겠군’ 생각했다.

더 이상 점수차를 벌리지 못하고 이어진 2회 초, 히어로즈 공격에서 선두타자 송성문이 동점 솔로 홈런을 날렸을 때도 ‘오~생각보다 쫀쫀하게 가는데?’ 흥미를 더한 정도였다.

또다시 곰돌이 공격.

끈질긴 승부 끝에 결국 삼진, 맥없이 범타, 야심 차게 휘둘렀는데 플라이, 해볼 만하면 병살, 힘 빠지는 모든 상황의 종합세트가 아닌가. 이건 머 일단 경기장에 왔으면 한 번쯤은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해보고 가야 하는데 코로나 상황상 샤우팅 금지, 박수로 대신한다고 하지만 손바닥이 터질 듯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던 개막전과 달리 이닝이 거듭될수록 박수 소리조차 턱턱턱…

심지어 타석에 있던 선수의 응원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웃되어버려 그새 선수가 바뀌어 있으니,

그냥 집에 갈까 싶을 정도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기가 빨린다고 하나, 그런 맥없는 경기였고 실제로 8회 공격이 끝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떴다.


9회 말.

4:1 경기가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히어로즈 마무리 김태훈 선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어? 나갔어?! 또 나갔어! 하더니 어느새 무사 만루를 채웠다. 이어진 오재원 타석에서 밀어내기 볼넷으로 내보내며 분위기 완전 반전된 4:2. 1 아웃, 이미 역전 주자 나간 상태에서 2루 주자를 대주자로 바꾸고 모두가 일어나 정수빈의 적시타를 기다리던 순간,

따악!

너무 잘 맞은 빠른 타구가 유격수 정면 병살로 가면서 그대로 경기 끝.




하…

아직도 뛰는 가슴에 허무함을 끼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의 경기는 역대급으로 재미없었지만 그랬기에 역대급으로 인생과 닮아 있었다.

우리의 인생이 어째 늘 그렇게 Fa이팅이 넘치던가.

해보려다 치면 안되고 풀릴까 싶음 또 고구마 처묵하며 주저앉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건 포기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치고 달리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극적인 순간을 맞게 되지 않던가 말이다.

정수빈의 적시타로 게임을 뒤집었다면 혹은 연장으로 이어졌더라면 그날의 승부는 명승부로 기억되었겠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아니, 그러지 못했기에 정수빈이 방망이를 떨구던 장면은 내 눈엔 더없이 아름다웠다.


마치.. 계속해서 방망이를 떨구고 있지만 여전히 다음 게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오늘의 내 모습 같았거든.

그리고 나에게 말해준다.

playball… 또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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