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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Sep 03. 2023

Rome... 꿈을 꾸게 하는 도시

기대와 현실의 애매한 만남

나에게 로마는 꿈을 꾸게 하는 도시다.

대학 시절, 마침 베스트셀러였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심취해서 결국 로마사 수업까지 수강하게 되었다. 언젠가 이탈리아  너머의, 고대 로마가 길을 내고 뻗어나갔던 그 길을 모두 걸어보리라 꿈꿨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단. 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20대 중반 어느 즈음 떠난 이탈리아 여행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2주 남짓의 짧은 체류였지만 포로 로마노 앞에 서서, 사진으로만 봤던 몇천 년 전의 삶의 흔적을 눈앞에 마주했을 때의 웅장한 감동은 여전히 뜨겁게 남아있다. 20년 전의 일이다. 나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 보니 ‘꿈’이라는 단어와 멀어진 지 오래다. 얼마나 더 견고해야 만족할까 싶을 정도로 단단하게 삶을 다지는 동안 나도 모르게 굳어버린 마음이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다시금 말랑해지기 시작했다.


뛰는 가슴, 무계획의 계획, 어리버리한 아줌마와 딸이 만난 Rome의 첫(?) 인상은...

너무 뜨거운 날것의 세상.

5월 말까지 히터를 끼고 사는 나는 추위에 취약한 대신 웬만한 더위에는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더위를 타지 않는다. 한국의 무더위를 겪은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일까, 이 더위는 달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의 땀구멍이 열렸다고 느껴질 정도로 너무너무 더웠다.  

숙소는 Campo di’Fiore 바로 뒤편 골목으로 들어가 채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마치 중세로 돌아온 듯한 골목골목에 들떠 요란을 떨며 출발했지만 택시에서 내려 채 100미터로 안 되는 거리를 울퉁불퉁 돌바닥 위에 요란스레 울리는 캐리어를 끌던 우리는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어느덧 침묵 속에 걷고 있었다. 


여기가 무슨 해리포터인가...

한산한 뒷골목 길, 느닷없는 장엄한 대문

숙소 주인을 만나 열쇠를 받았다. 21세기에 열쇠라니… 요즘 아이들은 아마 열쇠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를 것이다. (참고: 미국의 하우스의 현관문은 지역에 따라 전자식 잠금장치를 별도로 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재래식 열쇠로 열고 닫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이라는 개념은 손님용일 뿐 거라지를 통해 드나드는 게  일반적이니 열쇠는 집을 살 때 건네받고, 팔 때 건네주는 거 외에는 쓸 일도, 볼 일도 없다)  골목길에서 들어가는 장엄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컴컴한 복도에서 중문을 만난다. 그 중문 너머엔 마치  책 속의 책처럼 골목 안의 골목과 같은 작은 정원(?)이 나타난다. 정원을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은 7-8개 남짓의 집들 중 하나가 우리가 머물 곳이다. 숙소는 귀엽고 아기자기했다. 모던, 최신 이런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문밖의 풍경과 연장선 상에 있는 것처럼 천장, 벽, 창문 등 모든 곳이 다분히 고대스럽고 중세스럽고 근대스러움까지 죄다 뒤섞여 ‘여기 로마야’라고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하지만 보여주기 위한 조악한 겉멋이 아닌 뒤섞인 시간을 품은 흔적이 좋았다. 어디로 돌리는지 매번 실패했던 열쇠도, 모기 들어올까 봐 서둘러 닫아햐 했던 문도, 오래된 석조 건물 특유의 음습한 냄새도 괜찮았다. 아마도 여행이 주는 너그러움이었을 것이다.

사실 애매했던 첫 젤라토


Overnight 비행기라 시차로 피곤하기도 했고 첫날이니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샤워하고 잠시 쉬었다가 귀가 따갑도록 들은 소매치기에 대비해 최소화한 짐을 챙겨 집 밖을 나섰다. 이곳은 이탈리아,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기 전에 딸내미가 그토록 원했던 젤라토부터 시작했다.

 뭐지?... 무언가… 애매하다? 그리고 이 애매함은 앞으로 여행 내내 기대가 현실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가장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우선 오리지널 젤라토를 맛본다는 기대감이 너무 컸고 이집은 유명한 맛집이 아닌 그냥 가던 길에 들른 동네 가게였으며 너무 흔하고 일반적인 flavor(레몬)를 골랐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아이스크림은 맛있었으나 (아이스크림은 사실 맛없기가 더 어려움) ‘그래, 이 맛이야’ 싶은 황홀함은 없었고 가게 안이 너무 더워서 줄줄 녹아내리기 전에 허겁지겁 먹어야 했으며 서비스로 주는 물도 없어서 먹고 난 후엔 시원함은커녕 더 목이 말랐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이지만 섣불리 단정하기엔 이곳에서의 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에어컨 빵빵 나오는 시원한 방에서 싸악 샤워하고 쾌적하게 누워 있다가 저 문을 나서는 순간 무더위 속에 헉헉 거릴 걸 알면서도 빨리 나가고 싶어 궁뎅이가 들썩거렸던…그 설렘 하나로 충분한 애매함을 향해 내딛는 걸음, 


이것이 Rome과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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