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억 속에서 '노랑'을 꺼내 든 데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소재로 한참 글을 쓰다가 말문이 턱 막혔다. 내 기억의 빈약함에 혀를 내두르고는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 그런데 삶에서도 그렇고 글을 쓸 때에도 그렇다. '이렇게 하면 괜찮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진행해보다가 실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를 쓰고 아주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굳이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꾸역꾸역 해내는 방법과 아예 방향을 틀어서 새로 하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 길을 택했다. 나는 이 길로 가겠'소'(소의 해 기념으루다)! 때로는 바꿔보는 것도 괜찮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노란색을 좋아해왔다. 그런 줄로 알고 커왔다. 내가 딱히 노란색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너무나도 오래 지나버린 후였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처럼 주어지는 색상 말이다. 익숙하게 접하고 그러다 보니 찾게 되고, 그렇게 계속 익숙해지고 주변인들은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걸로 파악해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나에게 노란색은 그랬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그 어떤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마땅치 않다. 나는 어떤 색상 하나가 좋다고 막 그것만 찾는 성향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여행 중 노란색을 보고 두근두근 설렜던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유채꽃밭을 보았을 때였다. 인도 여행을 하며 야간 버스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가던 중 눈앞에 펼쳐진 유채꽃밭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던 순간,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나서는 어찌나 아쉬웠는지. 하지만 4월이면 제주 가시리 녹산로에서도 유채꽃과 벚꽃을 실컷 볼 수 있으니 원하는 풍경이 멀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득 남인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레몬 라이스 lemon rice가 떠올랐다. '레몬'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엄청 시큼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단 맛을 보면 레몬 라이스를 즐겨 주문하게 될 것이다. 요리에는 일가견이 전혀 없는 엄마와 나는 남인도 여행을 하다가 심심풀이로 쿠킹클래스에 참여했다. 주방장이 거의 음식을 다 하는데 요리하는 과정을 알려주고 수업이 끝나면 다들 음식을 나눠먹는다. 요리강좌에서 기본 요리로 쉽고 재미나게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레몬 라이스'였다. 김치볶음밥을 만들 듯 쉽게 만들면서도 색깔도 예쁘고 맛도 있으니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지금껏 보아온 노란색 중 강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나 자이살메르 사막이었다. 1박 2일 낙타 사파리를 떠났는데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모든 색깔이 노랗게 기억된다. 햇살도, 달빛도, 여행할 때의 내 마음도 말이다. 모래언덕에 자리 잡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니 별똥별이 그대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듯했다. 일교차가 큰 곳이어서 너무 추워서 독주를 마시고 누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행의 기억 속 노란색 '찰칵'이다.
『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몰라』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화가 파울 클레는 '색깔은 우리의 뇌와 우주가 만나는 장소다'라고 했습니다. 색깔은 놀라워요. 언어를 초월하여 이야기하고, 우리의 감정과 느낌과 기억을 보여줍니다. 산의 정상, 수영장, 오래된 헛간, 여름 아침, 해 질 녘의 야구장을 모두 표현할 수 있지요.
『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몰라』 188쪽
'색깔은 우리의 뇌와 우주가 만나는 장소다'라는 표현을 보니, 단순한 색깔일 뿐만이 아니라 우주로 연결되는 무언가를 느낀다. 오늘은 노란색과 나의 뇌와 우주를 연결시켜줘야겠다. 기억 속의 노란색이 더 없는지 샅샅이 살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