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읽은 책 『인도 상식 사전』에 인도의 영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인도 영화에 대한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도' 하면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에도 나온다.
인도를 이야기하면서 영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인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인도=영화(볼리우드)'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인도 영화는 100년 이상 이 나라의 유일한 오락 산업으로서 번영해왔다. 인도에서는 매년 1,500~2,000편의 영화가 20개 이상의 언어로 제작될 만큼 세계 최다 제작 편수를 자랑한다.
『인도 상식 사전』 235쪽
인도에서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어도 큰 상관은 없다. 장면 만으로 대충 어떤 내용인지 알아차리니 말이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영화를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언어를 배우고자 하면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의식주 등의 문화도 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치맥 관광을 왔다는 중국 관광객들의 일화 등을 비교해 보아도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에서 영화관에 갔을 때,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관객들이 난리가 난다. 노래 따라 부르는 건 기본이고, 영화를 몇 번을 봤는지 배우들의 대사를 한 발짝 먼저 읊어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점점 이들의 분위기에 동조하며 떠들면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한 편이 워낙 길기도 한데, 중간에 쉬는 시간도 준다. 그 시간에는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이 극장 안에 들어오기도 하고, 매점에 가서 구입하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인도 영화에서는 출연자들이 다 같이 군무를 추면서 노래를 하는데, 그 노래를 연기자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가수가 따로 있다. 립싱크다. 그런데 그 노래는 영화와 함께 엄청 인기를 끈다. 때로는 영화보다 더 인기가 있는 듯하다. 노래는 가수가, 배우는 연기를 한다. 배우는 기본적으로 춤이 되어야 한다. 볼리우드 배우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다.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이미 그 음악을 익히고 오나 보다. 영화 중간중간에 배우들이 뜬금없이 군무를 추면서 노래를 하고, 그러면 관객들은 손뼉 치며 떼창을 한다. 스트레스가 확 풀릴 듯하다. 일어나서 통로에서 춤추는 사람도 있었다. 19금 장면은 없고 입술 닿을락 말락 하는 장면에서 엉뚱한 배경으로 카메라 전환한다. 스토리는 상관없이 다 같이 노래하고 손뼉 치는 그 분위기가 좋았던, 어느 날의 인도 영화관 모습이다. (요즘은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생겼다고 하고 분위기는 어떨지 모르니 라떼는 말이야 느낌) 현재 인도에는 9,600개의 영화관이 있고 그중 2,950개가 복합 상영관인데, 매년 150여 개의 단일 상영관이 사라지고 200여 개의 멀티플렉스가 생겨난다고 한다. ( 『인도 상식 사전』 237쪽) 인도 영화관의 현재 모습이다.
이 이야기는 할까 말까 살짝 고민된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야겠다. 인도 영화 엑스트라 출연의 추억이랄까. 인도 영화에서 길가는 외국인 중 한 명으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걸어가는 장면을 찍은 적이 있다. 두 명은 저기서부터 여기로 걸어오고, 두 명은 여기서부터 저기로 걸어가는 것이다. 우와~ 그때 깨달았다. 카메라 돌아가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그냥 걷는 것인데 우리 넷은 엄청 어색했다. 걷고 대사하고 카메라 의식 안 하며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발연기라고 누군가에게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너무 그들 편을 들었나 보다. 감독님들이 뭐라 하겠다 ㅠㅠ)
영화 제목도 내용도 기억 안 나지만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그 영화에 인도의 유명 영화배우 샤룩 칸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샤룩 칸 보겠다고 구경 갔다가 엑스트라로 출연한 것인데, 정작 샤룩 칸은 못 보고 이상한 추억만 만들어온 것이다. 창피해서 어디에 이야기는 못하고 나 혼자 꽁꽁 숨겨둔 인도 영화의 추억이다.
또 하나 있다. 이건 영화 촬영 제의에 거절한 일화다. 이건 사실 더 비밀이다. 민망해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한참 묵혀두었다가 꺼내 든다. 인도 남부 여행 중이었다. 영화 촬영 중인지 카메라 돌고 그런 곳이 있길래 궁금해서 구경하려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말을 걸었다. 자신이 영화감독인데 영화에 잠깐 출연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곳에 여행하는 동양인이 흔치 않았다. 그냥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제안이 어이없었다. 수영복을 입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거절했더니, 그러면 몸은 안 나와도 되니 고개만 나오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플리즈' 해가면서 통사정을 한다. '이게 뭐야?'라는 생각에 단칼에 거절하고 다른 장소로 가버렸다. 수영장에서 얼굴만 내밀고 가만히 있는 장면은 안 할란다. 그렇다고 몸을 드러내는 것은 더 안 할란다. 이래저래 안 할 거였지만 떠올리니 문득 웃음이 쿡 난다.
문득 '가장 최근에 영화관에 간 것이 언제였더라?'라는 생각이 든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텔레비전이나 노트북으로 보아도 부족함이 없으니 영화관에 직접 가서 영화를 본 지도 까마득하다. 사실 영화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관 분위기를 함께 보며 나누는 것인데, 사람들과 한 걸음 멀어진 느낌이 든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사람들 만나고 영화도 볼 수 있는 때가 어서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