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의 추억

by 호접몽


제주도에 와서 좋은 것은 해마다 겨울이면 귤을 실컷 먹는 것이다. 먹고 먹고 또 먹는다. 그냥 까서 먹기도 하고 샐러드에 넣어서 먹기도 한다. 어느 해인가에는 귤전도 해 먹어 보고, 갈아서 주스로 마셔보기도 하면서 온갖 창의성을 발휘해보았는데, 역시 귤은 생으로 까먹는 게 제일 낫다. 귤 수확철에 먹는 귤은 일 년 내내 귤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비타민 C를 보충해주며 아쉬울 것 없이 귤의 추억을 나에게 남겨준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 맛집의 추억보다는 숙소에서 맛보던 각종 과일의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입안에 넣으면 달콤한 행복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맛집에서 음식을 더 먹지 못했던 것은 그리 아쉽지 않지만, 과일은 가끔 아쉽다. 그때 더 먹었어도 되었을 텐데…. 문득 떠오르는 추억은 여행의 기억을 풍부하게 해준다.



낯선 음식은 시도하기를 주저하면서도 낯선 과일은 어떻게든 먹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다양한 과일을 맛보게 하는 데에 한몫한다. 문득 기대를 못 미쳤던 과일도 떠오르고, 예상치 못했던 맛의 과일이지만 먹다 보니 이곳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그런 과일도 있었다.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과일도 독특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도 있다. 세 가지 과일을 떠올려보아야겠다.



파파야는 맛있지만 배탈 난 후 다시는 안 먹으리라 결심했던 과일이다. 인도에서 처음 맛본 파파야에 나는 '세상에 이런 과일이 있었다니!'라며 감탄했다. '1일 1파파야'를 하다가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며 하나 더 먹었던 날, 배탈이 나서 호되게 고생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한동안 파파야 금욕주의자로 지냈지만, 사람의 취향이 쉽게 변하지 않는 법. '다시는 파파야 안 먹을래' 결심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몸이 나아지니 파파야를 또 찾았다.



인도 남부 마두라이에서 처음 먹어본 '넬리카'라는 과일도 독특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전혀 그 맛을 짐작할 수 없었다. 겉모습은 청포도 색깔의 커다란 알사탕 같았다. 맛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듬뿍 심어준 과일이다. 마트에서 살까 말까 고민 중에 지나가던 사람이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한 번 먹어보라고 적극 권하는 것 아니겠는가! 주변 사람의 호들갑도 '무조건 사자!'로 마음을 정하게 만들었다. 건강에도 좋고 머리카락도 강하게 해준다나? 청포도맛 알사탕을 상상하며, 맛과 건강을 다 잡은 건강과일이라 기대하며 한 입 베어 물었다가 헉! 그냥 쓰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뿜어져 나오는 그런 과일, 내 생애 처음이었다. 더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하루에 한 알씩 꾸준히 먹었던 것은 건강에 좋을 거라는 기대감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그 맛에 익숙해져버린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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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대추야자. 정말 궁금했다. 책을 읽다 보면 대추야자가 종종 나오는데 그 맛이 도대체 어떤지, 멈출 수 없다는 그 맛이 정말 맞는지 궁금해서 직접 먹어보고 싶었다. 드디어 터키 여행에서 궁금증을 해결해보았다. 말로만 듣던 대추야자를 직접 먹어볼 기회를 잡고 첫 시식의 순간이 왔다.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달아서. 그때껏 먹어본 단맛 중 최상의 단맛이었다. 그냥 달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달아도 너무 단 그 맛을 한 입 먹고 나니 다시는 안 먹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매일매일 대추야자를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행은 끝나가고 살이 피둥피둥 오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당황은 잠깐, '나중에 한국 가서 빼지 뭐'라며 대추야자를 먹어버리고 말았던 '대추야자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번 호되게 배탈이 난 후에 내 평생 다시는 안 먹겠다고 결심했던 그 마음은 생각해 보니 술 마실 때 사람들이 그런다. 숙취로 고생하면서 '다시 술 먹나 봐라.'라며 괴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또 한 잔 기울이고 있는 것 말이다. 아, 이건 사람들 얘기지 절대 내 얘기 아니다. 흠흠. 믿거나 말거나다. 처음 먹어보았을 때에는 충격적인 맛으로 내 평생 다시는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여행 내내 달고 살았던 넬리카와 대추야자도 여행의 추억 속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은 귤 까먹으면서 새록새록 추억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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