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거리와 그래피티

by 호접몽


과거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파리에서 유학 중인 동생이 어느 날 편지를 보냈다. 파리 지도에 가본 곳과 느낌을 깨알같이 적어서 보낸 것이다. 전혀 가볼 생각이 없었던 여행지인 파리에 그 이후 여러 번 가게 되었던 것은 순전히 동생의 편지가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뻔한 여행이 아니라 조용히 파리를 감상하고 왔다. 남들 안 가는 곳, 남들 안 보는 것 위주로 다니고 왔지만, 사실 유명하다는 곳에 대한 아쉬움도 있어서 결국 지난 여행에서야 루브르 박물관도 가고 몽쥬 약국도 가고 편집숍도 갔다.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은 가자마자 역시나 깨달았지만 남들 다 간 곳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심리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파리 거리는 길을 잃기 쉽다. 파리 지도가 작은 수첩처럼 생겼는데 보는 게 더 복잡했다. 느낌상 이렇게 가면 될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았다. 엉뚱한 곳이 나온다. 내가 길을 잘 찾는 편은 아니더라도 길치까지는 아닌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는 달랐다. '가다 보면 나오겠지'라고 했다가 그곳이 안 나왔고, 당황스러웠지만 아닌 척하면서 함께 길을 헤매던 엄마 안심하시라고 더 크게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마구 헤맸던 적도 있다.



그래도 역시나 파리는 거리가 매력적이다. 돌바닥을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다 보면 눈앞에 장면이 확확 바뀐다. 파리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런 작품이 있다. 작품 혹은 낙서, 타일 조각 붙여놓은 것, 장난을 쳐놓은 듯한 그림 같은 거다. 루브르 박물관 혹은 여타 미술관 같은 곳에 소장된 그런 '작품'이 아닌, 길거리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예술성을 발휘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데,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자발적으로 발견해내지는 못했다.



"저거 봐!" 나도 동생이 짚어주고야 발견했다. 길을 가다가 동생의 한마디 말에 엄마와 나는 미어캣이 된 듯 멈춰 서서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저런 거 많아!"라고 의기양양하게 소개해 주는 동생의 모습이 꼭 '이런 거 몰랐지?'라며 자랑하는 모양새였다. 도심 속 보물을 캐내는 듯, 보물 찾기를 하듯 하나씩 발견하고는 "오~ 저것도 있어!"라며 한동안 신기하게 그래피티만 발견해냈다.



아주 작고 귀여운 그래피티는 발견하는 재미가 더욱 컸다. 옛날 오락 보글보글의 공룡이라든가 갤럭시 등등이 눈에 뿅 하고 나타난다. 커다란 낙서도 있지만, 조그맣게 무심결에 툭 누군가가 붙이고 혹은 쓱쓱 그리고 사라져버린 듯한 그런 작은 그래피티가 마음에 든다. 그냥 무심코 걸어다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피티를 찾겠다고 마음먹고 유심히 관찰하며 다니다 보면 보물 찾기처럼 툭 하고 눈앞에 나타나니, 그 또한 파리 거리를 걸어 다니는 재미이기도 했다.



'그래피티' 하면 역시 '뱅크시'가 떠오른다.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그래피티로 세상에 저항하다』라는 책은 독특하게도 사진작가이자 거리 아트의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마티 불이 뱅크시의 작품이 그려진 런던 시내 곳곳을 찾아다니며 뱅크시의 작품을 카메라 렌즈에 담고 그 위치와 함께 작품 해설을 곁들인 뱅크시 그래피티 & 투어 가이드라는 것이다. 런던에서는 뱅크시의 그래피티가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서는 뱅크시 투어가 유행이라고 한다.



영국 대영박물관 고대 전시실에 몰래 숨어 들어가서 원시인이 쇼핑카트를 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자신의 작품을 8일 동안 도둑 전시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 거리의 화가, 얼굴 없는 예술가, 게릴라 아티스트, 아트 테러리스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 도시의 싸구려 미술품으로 취급받던 벽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다.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그래피티로 세상에 저항하다』 6쪽




그의 기행에 기가 막히게 감탄한 것은 '어떻게 대영박물관 고대 전시실에 자신의 작품을 도둑 전시할 생각을 한 걸까?'였다. 하긴 마르셸 뒤샹의 <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생각을 먼저 해낸 사람이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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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외장하드를 꺼내들었는지 모른다. 그래피티 사진 찍었던 것을 찾으려고 말이다. 그런데 왜, 그때 찍은 사진들이 사라진 것일까. 날짜별로 저장해두었는데, 어떤 날은 사진이 두 장 밖에 남지 않았다. 두 장만 찍었던 날은 없었는데 말이다. 문득 지금껏 방치해놓고 전혀 몰랐으면서 알고 나니 속상한 내 마음을 바라본다. 사진은 사라져도 마음에는 남아있으니, 그거나 열심히 끄집어내기로 한다. 조금씩 부담 없게. 당황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으면서도 사람이 그게 잘 안되긴 한다. 갖가지 생각으로 뒤덮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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