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짐을 야무지게 싸지 못했다. 여행 중에는 그 짐이 내 소유물의 전부이면서도 준비에 소홀한 것이다. 인도 여행할 때에는 주로 큰 배낭 하나와 작은 가방 하나만 가지고 다녔다. 그곳은 바닥에 지뢰처럼 자리 잡은 소똥을 잘 피해 다녀야 했기 때문에 배낭을 메는 편이 마음이 안정되었다. 다른 지역에 갈 때에는 캐리어 하나와 작은 가방을 챙겨가기도 했다. 물론 유럽 여행할 때에 숙소가 우리나라보다 한 층 더 위에 있는 데다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짐이 짐이 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말이다.
여행 전날에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짐을 싸는 것은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막바지에 몰아서 하곤 했다. 여행 전날 잠을 충분히 자든, 잠을 잘 못 자든, 어차피 비행기 안에서는 꼬질꼬질해지면서 몽롱해질 테니 차라리 여행 전날 짐을 꾸리는 편이 나았다. 이제 다른 일은 다 끝났고 내일부터 여행이 시작된다는 통과의례 같은 거랄까. 여행 전까지는 일상에서 처리해야 할 모든 일을 끝내는데 주력하고, 여행 전날 짐을 꾸리는 것부터 여행 모드로 바뀌는 것이다.
사실 나는 막상 여행을 위해 티켓을 구매한 후에는 급격히 소심해진다. '괜히 간다고 그랬나?' 약간 후회하며, 여행을 안 가면 좋을 이유가 마구 떠오른다. 두근두근한 느낌은 설레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도통 모르겠다. 여행을 결심한 이후에는 오히려 여행 생각을 접어둔다. 어차피 여기에서 아무리 고민해도 모를 일이니 가서 부딪치고 경험하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여행에 대해 그렇게 꼼꼼하게 준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니 짐을 싸면서 실수도 많았다.
여행 짐을 꾸릴 때에는 여행 바로 전 날 밤에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대충 때려 넣는 타입이다. 무게 제한, 부피 제한에 각종 짐들을 가방에 넣었다가 다시 뺐다가 우왕좌왕한다. 그러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한다. 어차피 미리 넣어두었다가도 나중에 다 바꾸기 마련이니 귀찮다는 의미에서 일까. 공부는 벼락치기, 여행도 즉흥적이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은 내 성향에 맞지 않으니 그건 어쩔 수 없다.
어떤 때에는 '왜 이런 걸 가져왔지?'라고 생각되며 버리지도 못하고 가지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어떤 때에는 꼭 필요한 것을 놓고 왔다는 것을 공항쯤 와서 알게 되었다. 물론 아주 중요한 '여권, 지갑' 등을 잊은 적은 없으니 특별히 문제 될 것도 없긴 했다. 하지만 좀 더 알차게 짐을 쌀 필요가 있다. 그것은 여행에서도 인생에서도 필요한 기술이다.
서바이벌 전문가이자 탐험가인 베어 그릴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자기계발서 『야생이 인생에 주는 서바이벌 지혜 75』에 보면 짐에 대한 조언을 한다. '짐은 가볍게 싸라'와 '무겁고 불필요한 짐은 던져 버리라'는 것은 특히 삶과 연결되는 교훈이라는 생각이 든다.
짐을 효율적으로 꾸리는 기술은 탐험의 성패를 가름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야생이 인생에 주는 서바이벌 지혜 75』 (67쪽)
인생에서 어떤 짐을 지고 버리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당신이 짊어진 짐과 세상을 향한 당신의 태도를 현명하게 직시하라. 그것이 당신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짐은 삶의 질을 높이고 꿈을 실현할 가능성을 높이는가, 아니면 당신의 발전을 가로막는가?
『야생이 인생에 주는 서바이벌 지혜 75』 (72쪽)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짐을 바라보고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은 인생을 닮았다. 인생의 축소판이다. 일상에서 무감각해지면 미처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을 여행길에서는 생각할 계기가 된다. 일단 일상과 다른 눈이 생기는 것이 그 이유이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고르고 골라 여행 가방에 담아왔는데 그 물건들이 실제로 필요한지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어떤 짐을 쓸데없이 지고 다니면서 버거워하고, 정작 꼭 필요한 무언가는 놓치고 있었던가.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