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와 파니르

by 호접몽


갑자기 두부가 먹고 싶다.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서 애호박 넣고 밥에 쓱싹 비벼서 먹고 싶다. 김치볶음밥에 계란후라이까지 올려야 완성되는 것처럼, 된장찌개에는 두부가 들어가 줘야 제맛이다. 아니, 이것저것 다 귀찮으면 그냥 양념장에 찍어서 먹어도 된다. 그래도 맛있는 반찬이 되고 한 끼 그럴듯하게 해치울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두부 먹는 것을 잊고 있었다.



예전에 살던 곳에는 오후에 두부 장수가 가끔 왔다. 종을 딸랑딸랑 울리면 얼른 나가서 구입해야 했다. 자칫 미적대다가는 금세 다른 곳으로 가버리니 말이다. 날마다 오거나 같은 시간에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소리를 들으면 무척 반가워하며 일단 달려 나갔다. 나가보면 나만 그 소리를 듣고 나간 것이 아니라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인기가 대단했다. 그렇게 사 가지고 온 뜨끈뜨끈한 두부를 양념장에 콕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다른 반찬 다 필요 없이 든든하고 포만감이 있었다.



두부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자다가도 두부 생각에 벌떡 일어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두부가 간절히 그리웠던 때도 있었다. 그것은 인도에서였다. 당연하겠지만 바로 두부를 구할 수 없었을 때 두부가 무척 그리웠던 것이다. 평소에는 잘 찾아서 먹지도 않는 것이 막상 없으면 무척이나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런 음식들 중 나에게는 '두부'가 기억에 남는다.



인도에는 '파니르'라는 치즈가 있다. 지식백과에 찾아보니 '리코타치즈와 비슷하며, 육식을 금하는 사람이 많은 인도에서 파니르는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라는 설명이 있다. 생김새가 꼭 두부 같다. 그래서 두부 맛을 생각하고 먹었다가 첫맛에 당황했다. 그다음부터는 무엇을 상상하든 각종 커리에 들어있는 직사각형의 네모난 하얀 조각은 치즈 맛을 내는 파니르라는 것을 알고 먹어야 했다. 신기함이 가라앉으면 파니르가 미웠다. 왜 그렇게 생겨놓고 내가 알던 맛이 아닌 다른 맛이 나는 건지. 하지만 그럭저럭 적응할 수 있는 맛이기도 하다.



그렇게 익숙해지다가는 문득 두부를 먹었을 때, 오히려 두부 맛에 실망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그 맛이 겨우 이 맛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밍밍한 느낌도 들고 하여간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닌 듯하다. 그리고 역시 인도에서는 파니르, 한국에서는 두부를 맛봐야 제맛이다. 지금 나는 한국, 두부가 먹고 싶다.



비도 오고 주말에 나가기 싫다고 잔뜩 장을 봐다 놓은 거면서 두부의 부재만 아쉬워하다니! 문득 안도현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에 나왔던 글이 생각난다.




집 안에서 내 눈에 거슬리는 놈 중의 하나가 냉장고다. 날이 갈수록 냉장고가 쓸데없는 욕심으로 덩치를 불려가고 있는 게 나는 못마땅하다. 냉장고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모든 음식은 원래 지니고 있던 맛을 쉽게 잃어버리기 일쑤다. 어느 때는 냉장고가 음식을 잘 보관해 주는 게 아니라, 음식의 맛을 빼앗아 가 버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식의 맛은 음식의 영혼이 아니던가. 영혼 없는 시금치 무침이 나는 싫다. 냉장고의 야채 저장고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 상추와 풋고추의 그 뻔뻔스러움이 나는 싫다. 그들은 자기 영혼을 냉장고에게 다 내주고 야채랍시고 낯짝만 푸르뎅뎅한 것들이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42~43쪽, 「내가 미식가인 까닭」 중에서




없는 두부 그리워할 게 아니라, 오늘 점심에는 냉장고에서 영혼을 잃어가고 있는 시금치를 꺼내 시금칫국을 끓여야겠다. 저녁에는 남은 무 조각을 몽땅 썰어 넣고 황태와 달걀을 넣어 황탯국을 따끈하게 끓여먹어야겠다. 두부와 파니르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문득 오늘의 메뉴까지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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