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과 분위기

by 호접몽


드라마에서 보면 꼭 그런 장면이 있다. 일단 주인공이어야 한다. 평소에는 별로였다가 어느 날 변신을 한다. 주로 실장님이 남자 주인공인데, 예쁜 여자 마다하고 이혼녀인 여주인공을 마음에 담고 막 도와주고 그런다. 옷도 골라주고 다 사주고 그러는데, 스타일 변신으로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효과를 누린다.



안경을 쓰고 다니던 주인공이 안경만 벗어도 주변 사람들이 난리가 난다. 헬멧 쓰고 있거나 머리 묶었던 주인공이 풀어헤치면 촤르르 샤방샤방 정말 예쁘게도 나온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안경 쓰다가 벗으면 초점이 안 맞아 보이며 어색하다. 안경 자국도 나고 말이다. 헬멧이나 모자 쓴 사람도 현실에서는 드라마 속 그 장면 아니다. 그거 빼는 순간 떡진 머리 스타일은 지.못.미.다.



그러고 보면 스타일에 관해서도 '내가 안 꾸며서 그렇지 꾸미면 다르다'라는 생각이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실력이 없거나 어설퍼서 '화장 안 하는 게 더 낫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새빨간 립스틱을 발라보았다가 쥐 잡아먹었냐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거나 펭귄 같다는 직언에 마음에 상처를 받으며 갖다 버렸던 기억이 난다. 스타일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거나 어울리지 않으니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경우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스타일과 분위기는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봤을 때 너무 뻔하게 들여다보이면 살짝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런 일이 있었다. "얘 딱 보면 알겠잖아. 책 읽는 거 좋아하고 운동 별로 안 좋아하고, 딱 그렇게 생겼잖아."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뚤어지고 싶었다. 물론 사람 쉽게 안 변하긴 하지만.



흔히들 말한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더라.'라고 말이다. 대부분 맞고 가끔은 틀리다. 무언가 계기가 있으면 스타일은 물론 마음까지 순식간에 변화하기도 하니 말이다. 일상에서 그 계기는 결코 작지 않지만, 여행에서 그 계기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일단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장소에 던져지는 것이니,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충분히 된다.



여행은 나를 변하게 한다. 일단 여기에서는 그냥 혼자서 조용히 책 읽고 인터넷 하며 커피도 한 잔씩 마시며 지내는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 나는 반대로 변한다. 활동적으로 돌아다니고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하며 사 먹는 음식을 즐긴다. 책 안 읽는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여행 가서 안 돌아다니고 가만히 있으려면 왜 가겠는가. 여기에서처럼 다독은 할 수 없고, 가벼운 책 한 권 들고 가긴 해도 읽기는 버겁다.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해서 말이다. 그냥 나중에 집에 가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스크를 꼭 써야 하니 입술에는 립밤만 바르고, 되도록 돌아다니지 않으려고 애쓰며 근처 마트에 가는 것도 주저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책을 더 많이 읽게 되고,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처럼 '바지를 의자에 붙이는 예술'인 글쓰기를 좀 더 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이 시대를 겪어내고 있는데,

"세계는 코로나 이전 (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이런 명언을 먼저 남기지 못한 것은 살짝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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