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았을 때 더 매력적이었던 여행지

by 호접몽


"여행은 되돌아보았을 때에만 매력적이다."라고 폴 서룩스는 말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여행 중에 항상 즐겁고 낭만적이며 가슴 벅찬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힘들고 지치고 날씨까지 우중충해서, 벼르고 별러서 여행을 갔으면서도 제대로 감상하고 오지 못한 경우도 많다. 여행할 때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 느낌은 상당히 달라진다. "우와! 경치 좋다. 그런데 힘들다. 헥헥" 이랬던 여행지가 어디 한두 군데였겠는가.



그러니 오히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힘들었던 기억이 희석되고 나서야 그 여행은 진가를 발휘한다. 여행은 역시 되돌아보았을 때 더 매력적이고 시간이 흐르고 추억이 되고 나서야 곰삭은 맛이 어우러져 풍미를 자아낸다. 생각해 보면 여행 당시에는 별것 아닌 여행지라 생각하고 가볍게 보아 넘겼지만, 나중에서야 '그곳이 정말 좋았는데…….'라며 한 박자 늦게 그 가치를 깨닫는 여행지가 있다. 베트남의 무이네가 그런 곳이었다.



바다와 사막을 함께 본 적이 있는가? 바다도 보고 싶고 사막도 보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까지 나는 한꺼번에 바다와 사막, 이 두 가지를 본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주로 인도 배낭여행을 하던 내 생각으로는 사막에 가고 싶으면 라자스탄 지방까지 한없이 야간열차를 타고 내리 달려야 했고, 바다를 보고 싶으면 인도 남부까지 끝없는 시간 여행을 해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이네에서는 아니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가 보이고, 조금만 걸어가면 사막 같은 모래언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 무이네에서 모래언덕(sand dune)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의아했다. 분명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 숙박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그 근처에 모래언덕이 있을 수 있지?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즐비하고, 직접 볼 기회를 얻지 못하면 주변에서 아무리 그렇다고 이야기를 들어도 믿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런 광경 속으로 들어가서야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대부분 쉽게 얻을 수 없다고 했던가. 오픈투어버스를 타고 무이네로 향하는 시간은 고행 그 자체였다. 오픈투어버스는 우리나라에서 시내버스였던 것을 수입하여 활용하고 있었는데, 승차 인원까지 많아서 비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한없이 달려갔다. 쪽잠을 자며 몸과 마음이 지쳐 영혼까지 탈탈 털릴 무렵, 무이네에 도착했다. 호찌민에서 무이네까지는 다섯 시간가량 걸리는 거리인데, 이곳저곳 들르고 정차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달렸다.



그래도 즐거운 상상 하나 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시내버스로 쓰였던 그 버스는 봉천동행 버스였다. 다른 외국인들은 알 수 없는 그 글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던지. 예상치 못했던 곳에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쓰인 목적지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비록 봉천동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베트남의 무이네에서는 모래언덕 너머에 바다가 배경처럼 펼쳐진다. 해가 질 무렵, 터덜터덜 모래언덕을 올라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한쪽에는 모래썰매를 빌려주는 아이들이 호객행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작정 모래언덕 아래로 뛰어내리는 청년들이 보였다. 썰매 없이도 번갈아가면서 모래 언덕에서 굴러내려가는데, 본인들도 즐거워하고, 지켜보는 이들도 웃음 가득해진다. 한동안 그들의 놀이를 지켜보다가 나도 살짝 흉내를 내본다. 시간은 흐르고, 하늘을 바라보니 지지 않을 듯한 태양은 어느 순간 꼴깍 넘어가버린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곳은 너무 거대하지 않아서 좋았다. 모래 언덕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황량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다가온 곳이고, 마음만 먹으면 금세라도 바닷가로 갈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향할 수도 있는 곳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여행지가 추억 속에서 미화되어 직접 그곳에 갔을 때보다 되돌아보았을 때 더 매력적으로 기억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특히 그런 여행지를 생각해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무이네'였다. 오늘은 해 질 무렵의 무이네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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