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by 호접몽


무리를 하면 잇몸부터 붓는다. 왼쪽 위의 잇몸이 부으면 단골 치과에 간다. 끙끙 앓기도 하고 되도록 안 가고 싶어서 기를 쓰다가도 결국 치과에 가는데, 기다리기까지는 정말 싫다. 특히 그 드르륵거리는 소리는 온 신경을 자극하고 긴장시킨다. 하지만 막상 치료가 시작되면 5분 정도면 쉽게 드르륵 끝난다. 이렇게 금세 해결되는 문제를 몇 날 며칠을 앓고 있었다는 게 살짝 아깝기도 하다. 가끔은 지금이 조선시대쯤 되어도 큰 상관이 없겠다고 생각되다가도 특별히 현대인 것이 고마운 때는 치과치료를 받을 때다.



시대를 가로질러 생각해 보았다면 이제 도시와 시골을 짚어봐야겠다. 나는 도시에 살 때 도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시끄럽고 정신 사나웠다. 과감하게 귀촌을 감행하고 정말 이게 사람 사는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족했다. 그동안 잘 지내왔지만 지금껏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벌레, 뱀, 쥐 등등의 생명체다.



지금은 겨울이어서 마주칠 일이 없지만, 여름에는 정말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바퀴벌레는 이~~~따 만해서 막 날아다니고, 나방도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그리마라는 다소 세련된 이름의 다리 많은 벌레도 있고, 그 벌레가 충남 방언으로 '설렝이'라고 불리는 것을 알고는 이름이 너무 귀여워서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거미는 다리가 길게 쭉쭉 뻗어서 성큼성큼 다가온다. 거의 달려오는 듯하다. 거미보다 덩치가 엄청 큰 내가 아무리 큰 소리로 "뒤로 돌아갓!"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이면 민달팽이들이 나타나서 바퀴벌레 약을 훔쳐먹고는 통통하게 늘어져서 똬리를 틀고 있다. 방문을 드륵드륵 긁고 있던 장수풍뎅이라고 추정되던 벌레도 밖으로 내보내주고, 지난여름 보고도 못 본 척하면서 탈출하도록 놔둔 실뱀도 떠오른다.



아이쿠, 여행 이야기는 꺼내기도 전에 벌레 이야기만으로도 수다가 늘어졌다. 이 벌레들 때문에 여름이 지긋지긋할 지경이다. 벌레를 퇴치해준다는 초음파퇴치기도 놓아두었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유유히 잘 다니는 벌레들을 보면 놀라는 것은 나뿐이고, 바퀴벌레 드시라고 놓아둔 약은 민달팽이 왜 자기가 다 퍼먹는지 그 약은 바퀴벌레에게만 효능이 있는 건지 난감하기도 하다.



어쨌든 이제 여행에서 만난 특이한 생명체를 떠올려보아야겠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처음에 엄청 놀라고 나중에는 그 발이 앙증맞아서 귀엽기까지 했던 '도마뱀' 되시겠다. 첫 배낭여행을 인도에 갔는데 숙소에서 도마뱀이 나왔다. 다들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그중에 한 명이 쏜살같이 프런트로 뛰어 내려갔다. 얼핏 든 생각이 '앗, 도마뱀이 영어로 뭐지? 얘는 도마뱀을 뭐라고 하는지 아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little crocodile"이라고 외치며 호들갑을 떨며 달려갔다는 것이다. 하긴, 뜻만 통하면 되는 걸 그 상황에서 사전을 찾고 있을 틈은 없겠다 싶다.



도마뱀은 자세히 보면 발이 엄청 귀엽다. 앙증맞은 그 발로 벽도 타고 한참을 매달려 있기도 하고 휘리릭 사라지기도 한다. 여전히 뱀은 싫지만 도마뱀 정도는 봐줄 만한 느낌은 쥐는 싫어도 다람쥐는 귀엽다는 정도의 마음일까. 특히 도마뱀은 깨끗한 환경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 더욱 안심하며 만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오늘은 여행에서 만난 곤충이나 파충류를 떠올리려다가 여기에서 그만두기로 한다. 도마뱀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온갖 벌레 생각에 진저리 친다. 굳이 이 겨울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생물들인데, 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아직은 먼 듯하면서도 마당에 슬슬 풀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멀지도 않은 듯하다. 겨우내 조용하던 생명력을 떠올리는 시간, 허형만 시인의 「겨울 들판을 거닐며」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해야겠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도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조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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