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로댕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유명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마당에 아무렇게나 툭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보면 민망한 발언을 동생에게 하고 만 것이다. "저거 가짜야! 진짜라면 저렇게 마당에 아무나 만질 수 있게 해놓지 않았을 거야."
그 당시 로댕미술관에서는 카미유 클로델 특별전을 한다고 하여 벼르고 벼르다가 간 것이다.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던 동생이 엄마와 누나가 왔을 때 특별히 보여준다며 함께 기나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입장을 했는데, 미술관 박물관은 안 가겠다며 관심 없어하던 누나가, 그래도 직접 전시를 보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며 데리고 간 것일 텐데,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김빠지게 한 것이다. 그때 난 그런 질문을 하고 말았다. "카미유 클로델이 누구야?"
사실 그 이후에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의 사랑 이야기도 알게 되고 그랬지만, 그때 파리에 갔을 때에는 정말 아무 관심이 없었고, 여행 계획에서 미술 관련된 것은 다 빼자고 했다. 그냥 동생 만나러 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거 하나 꼭 넣자고 해서 포함한 거였는데,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그래서 지금 떠올리면 낯부끄러운 추억들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도 가족이 뭐라고, 현실 남매이긴 하지만 다시는 오지 말라는 소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눈앞의 작품을 직접 보고는 한참을 얼어붙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이후에 예술작품에 슬슬 눈을 뜨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눈앞의 작품을 보면서 과거에서 지금의 나에게로 전해지는 예술혼. 이건 사진으로만 볼 게 아니라 직접 봐야 한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지? <생각하는 사람>이나 <천국의 문>을 보며 예술 문외한이 조금씩 예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관심 없던 예술에 극도의 관심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다음에도 여행 계획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은 넣었다 뺐다 하면서 예술작품은 조금씩 나에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미술작품과 나는 조금씩 노력으로 가까워지는 것일 뿐, 막 관심이 생기고 두근거리고 그런 것과는 거리가 좀 멀다.
설명을 보거나 들으며 작품을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작품을 눈앞에서 보면서 느낌을 전달받는 것도 의미 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가 짚어줘야만 알 수 있는 정보도 있으니, 여전히 나는 예술 문외한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작품에 대해 알아가는 나에게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작품 감상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짚어주고 떠먹여주지 않으면 느낌이 오지 않는 작품들이 더 많으니 애석할 뿐이다.
오늘은 여행 중에 만났던 다양한 작품들 중에 내 마음을 흔들었던 예술작품들을 떠올리려다가 로댕미술관에서 생각이 멈춘다. 어떤 때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작품을 만드는 데에 열정적으로 보내고 후대에 길이 남는 이들의 능력이 부러워진다.